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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 - 송진화]여자 가슴에 묻은 칼, 죽은 나무로 되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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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4호 왕진오 기자⁄ 2015.06.08 10:33:55

▲전시 작품과 함께한 송진화 작가. 사진 = 왕진오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목까지 차오르는 울컥 느낌을 풀어내고 싶은 마음에 식칼을 들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깎아서 선보였는데,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 강하게 오더라고요. 이슈를 담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누구라도 느끼고 있는 마음을 보이는 대로 표현했죠.”

하얀 이빨을 다 드러내며 웃고 있는 여인의 모습, 식칼을 가슴에 들이대고 뒤춤에 숨겨 마치 자살이라도 할 것 같은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모습 등으로 현 시대를 사는 여성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조각품을 선보이고 있는 송진화(52) 작가가 3년 만의 개인전에서 밝힌 자신의 작업관이다.

▲송진화, ‘너에게로 가는 길’ 전시 전경. 사진 = 아트사이드 갤러리

송진화의 작업을 처음 본 관객들은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경험한 나이 많은 여성의 인생역경을 작품으로 풀어낸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송 작가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특정한 경향을 어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함께 겪었던 다양한 일상의 모습이다.

특히 깨진 소주병이나 식칼 등 자극적인 오브제를 사용한 것에 대해 그는 “단호하잖아요! 칼은 확실한 감성을 자아내는 도구라 생각합니다. 섬뜩하지만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뜨거움과 냉정함을 가진 대상으로서 매혹적인 것 같아 작품에 자주 등장시키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비를 맞아요 몸이 타버릴까봐’, 소나무, 50 x 23 x 15cm, 2014. 사진 = 아트사이드 갤러리

또한 “작업 초기 힘들 때마다 그 칼이 나에게 사용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죠. 마음이 답답하고 너무 힘들 때 가졌던 마음을 해소시켜준 소재인 것 같아 당분간 작업에 등장시키려고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한때는 집이었고, 벤치였지만 버려진 나무들”

송진화는 원래 동양화를 전공했다. 입시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신이 무슨 작업을 하면서 살아야 되는지 의문과 갈증으로 고민하던 2002년 우연히 접한 나무를 깎으면서 나무 조각가로서의 새로운 길에 눈떴고, 이후 지금까지 자신을 닮은 여인을 주인공으로 작업 세계를 펼쳐왔다.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나뭇조각 여인은 때로는 삶에 힘겨워하고 분노하고 차갑게 돌아서버릴 것 같다가도 질긴 삶의 끈을 다시 이어가며 하얀 이를 다 보이며 깔깔 웃는다. 뜨거운 열정과 사랑, 기다림과 차가운 성찰의 시간을 돌아 돌아 자기 안에 숨겨왔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고 직시하는 것은 단지 작가만의 과제는 아닐 것이다.

▲송진화, ‘세상에 무서울 게 없어’ 전시 작품. 사진 = 왕진오 기자

2002년 전시 이후 3년여 만에 자신의 감정을 살피고 드러내는 것에서 발전해 다른 이의 마음까지 토닥토닥 만지는 작품을 갖고 ‘너에게로 가는 길’이란 개인전을 6월 4일∼7월 8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 전관에 펼쳐놓는다.

그녀의 지난 작품에서 우리는 유머러스하고 위트 있는 모습, 때론 격한 감정을 표현하거나 차분하게 사색하는 삶의 여러 모습들을 발견했다. 힘들어하고 분노하고 차갑게 돌아서다가 다시 애써 웃어버리는 여성의 모습은 묘한 연민마저 자아냈다.

나무로 조각된 그녀들이 우리에게 다양한 시선과 몸짓으로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우리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공감시킨다.

▲‘나는 우산이 없어요’, 소나무, 124 x 38 x 33cm, 2014. 사진 = 아트사이드 갤러리

몸짓과 손과 발에 미세하게 드러나는 삶의 기복들은 작품을 가까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에너지를 부여한다. 또 나뭇결에 따라 자연스럽게 잉태된 듯한 조각의 몸체 역시 재료로서 나무에 의지하고 그에 따라 손을 놀리는 조각가의 자세를 보여준다.

송 작가에게 인생의 방향을 틀게 해준 나무는 어떤 의미일까 “길가에 버려진 나무를 바라보자면 한때는 누구의 집이었고, 벤치였고…. 쓸모가 다해 썩어 없어져도 그만이지만 새롭게 태어났죠. 나이테가 조밀할수록, 옹이가 질수록 아름다고 대견하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모양이 떠오른 것을 깎아내고 다듬어내면 원래 갖던 모양을 드러내죠”라고 말한다.

스토리가 있는 제목의 여자 목조각들

이번 전시에는 기존의 성숙한 여성의 모습에 더해, 그동안 등장하지 않았던 아이의 얼굴과 몸짓의 작품들이 새롭게 등장한다. 동그란 얼굴과 새초롬한 표정을 한 아이의 모습에서, 숨겨져 있던, 자라지 않은 자신의 자아와 만나게 되고 그 시간을 통해 힘들었던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게 된다.

▲송진화, ‘화창한 날’ 전시 작품.사진 = 왕진오 기자

송 작가의 작품에선 제목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바람 불면 설레어 가만히 집에 있을 수 없었지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않아’, ‘엄마의 청춘’, ‘우린 정말 사랑했을까’, ‘나는 우산이 없어요’, ‘비를 맞아요 몸이 타버릴 까봐’ 등 저마다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꾸밀 수 있는, 마치 무대를 걸어 다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제목들이다.

송 작가의 ‘나무 그녀들’을 보면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바로 “아, 너였구나”라는 자조적이면서 차분한 깨달음이다.

누구나 행복을 꿈꿀 수 있는 용기와 삶에 대한 넉살좋은 자신감.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우리의 삶을 위로했고, 누군가를 위로하며 살고 있었는지. 그 동안 돌보지 못했던 자신의 작은 일상에서 소중함이 재발견 되는 순간이 세상 모든 이들과 만나는 순간이 된다.

전시장에서 송 작가는 “제가 살아온 삶이 세상 여성분들의 이야기와 많이 닮아 있나 봅니다. 말 못하고 울컥하지만, 상처받기 쉬운 여성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을 자신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였는지, 여성 관객들이 저의 작품을 많이 좋아해주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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