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죽음은 유혹인가, 윤회인가? 뮤지컬 ‘신과 함께’ vs ‘엘리자벳’
▲뮤지컬 ‘신과 함께’는 저승을 향하는 여정에서 만난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왼쪽부터 극 중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덕춘(김건혜 분)과 강림(송용진 분) 그리고 세상을 떠도는 원귀(최석진 분). 사진 = 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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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금영 기자) 죽음을 ‘위대한 평등자(The Great Equalizer)’로 부르기도 한다. 생전 아무리 권세를 누리던 사람도, 죽은 뒤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모든 사람과 똑같다는 말이다. 헌데, 이 ‘위대한 평등자’를 바라보는 동서양의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다. 유럽에는 타나토스(Thanatos)로 통칭되는 ‘죽음에의 충동’ 전통이 있다. ‘죽음에서 달아나려는 삶에의 욕구(에로스)가 강한 만큼, 죽음을 향해 가려는 타나토스 충동도 강하다’는 게 프로이트의 해석이다.
타나토스로서의 죽음이 갈등적인 반면, 동양 전통의 죽음관(觀)은 훨씬 평화롭다. 이생의 적선(積善: 선을 쌓음) 여부에 따라 다음 생에 인간 또는 동물로 태어난다는 이른바 윤회사상이다. 동서양의 이렇게 다른 죽음관을 보여주는 두 뮤지컬이 동시에 공연 중이라 관심을 모은다. 동양적 윤회관의 창작 뮤지컬 ‘신과 함께’, 그리고 서양 전통의 매혹적인 타나토스를 그리는 ‘엘리자벳’이다.
“죽는다고 다 끝난 게 아냐”
49일 간의 저승 재판 ‘신과 함께 - 저승편’
뮤지컬 ‘신과 함께 - 저승편’은 주호민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저승을 배경으로 사후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이 작품에서 표현되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저승편’과 ‘이승편’, ‘신화편’ 총 3부로 이뤄졌는데, 이승과 저승을 막론하고 인간과 함께하는 한국의 민속 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죽음과 동시에 삶을 이야기한다.
공연은 죽어서 저승에 간 김자홍이 저승의 국선 변호사 진기한을 만나 저승 재판을 받는 여정과, 한을 풀지 못해 이승을 떠돌며 원귀가 돼버린 유성연을 무사히 저승으로 인도하는 저승 삼차사 강림과 덕추, 혜원맥의 활약을 그린다.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하게 살다 죽음을 맞은 김자홍의 앞에 저승으로 인도하러 왔다며 강림과 덕추, 혜원맥이 나타난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일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저승행 열차가 나타나고, 다른 망자들과 함께 김자홍은 열차에 오른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저승의 문턱으로, 이승에서 제사 의례가 치러지는 49일 동안 저승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뮤지컬 ‘신과 함께’에서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다. 저승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지옥의 관문을 하나하나 통과하며 심판을 받아야 한다. 국선 변호사까지 존재한다. 사진은 극 중 평범한 죽음을 맞이한 김자홍이 저승으로 향하는 열차를 탄 모습. 사진 = 서울예술단
각각의 살벌한 지옥의 관문이 만만치 않다. 첫 번째 관문인 진광대왕의 도산지옥은 칼로 만들어진 산이 기다리고, 두 번째 초강대왕의 화탕지옥엔 펄펄 끓는 솥이 있다. 다음으로 송제대왕의 한빙지옥엔 불효를 한 망자들이 얼음 감옥에 갇히고, 오관대왕의 검수지옥은 잎사귀가 칼인 숲 속에 있는데 위기에 처한 이를 외면한 죄를 다스린다. 다섯 번째로 염라대왕의 발설지옥에선 입으로 지은 죄를 심판하고, 여섯 번째 변성대왕의 독사지옥은 살인 등 강력한 죄를 심판하며 마지막으로 태산대왕의 거해지옥까지 과정이 만만치 않다. 죽음 뒤의 과정이 삶처럼 치열하다. 김자홍의 이 모든 과정에 초짜 국선 변호사 진기한이 함께 한다.
이 작품에서의 죽음은 동양의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다뤄진다. 인간이 죽은 다음 생전의 업을 바탕으로 저승에서 심판을 받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다. 김자홍 또한 자신이 해왔던 모든 행동들이 저승에서 하나하나 분야별로 평가받고, 그 끝에는 지옥과 또 다른 삶 이렇게 두 갈래의 길이 나눠진다. 생전의 업에 따라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도, 동물 등 다른 존재로 태어날 수도 있다.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다뤄지는 죽음이 이 작품에서 특별한 이유는 죽음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극 중 김자홍은 정작 살아있을 땐 돌아보지 못했던 자신의 삶을 똑바로 직시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신과 함께’에서 죽음은 삶의 반대 의미가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순환 관계로 표현되며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또 무언가 특별할 것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을 것만 같은 평범한 김자홍의 삶과 죽음이기에 더욱 공감이 간다.
최종실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은 “그동안 한국적 가무극을 선보이려 다양한 시도를 해왔는데, 이번엔 보다 대중적인 콘텐츠로 관객에게 다가가고 싶었다”며 “우리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죽음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바쁘게 사느라 돌아보지 못했던 자신의 삶과 또한 주변 사람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공연이 많은 울림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연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7월 12일까지.
“죽음으로 자유를 얻으시지 그래?”
치명적 매력의 죽음 캐릭터 만든 ‘엘리자벳’
‘신과 함께’가 죽음을 통해 삶을 돌이켜 보는 기회를 준다면 뮤지컬 ‘엘리자벳’은 죽음과 삶이 상반된 존재로 인식된다. 극 중 죽음은 억압받는 삶에 자유를 주는 존재로, 서양 예술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담는다.
600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실존했던 황후 엘리자벳이 극의 주인공이다.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인물 엘리자벳은 엄격한 왕실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대공비 조피와 갈등을 겪고, 외아들 루돌프가 자살한 뒤 슬픔을 잊기 위해 여행을 하다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뮤지컬 ‘엘리자벳’은 이를 그대로 차용하지 않는다. “엘리자벳이 합스부르크 왕궁에 들어오면서 죽음을 데려왔다”는 오스트리아 민담이 극의 모티브다. 엘리자벳을 살해한 루케니는 그녀가 스스로 죽음을 원하고 사랑했다고 항변하며 엘리자벳의 일생 이야기를 시작한다.
극 중 엘리자벳은 자유분방한 인물이다. 꽉 끼는 드레스를 입기보다 편한 옷을 입는 걸 좋아하고, 조신하게 걷는 것보다 활발하게 뛰어다니며 나무를 오르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황후 자리에 오르면서 이 모든 행위들은 용납되지 않고, 엘리자벳은 삶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때마다 그녀 앞에 ‘죽음’이라는 존재가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죽음은 추상적이고, 미스터리한 존재로 인식되는데 공연에서 인물화해 등장하는 점이 독특하다.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죽음 역을 맡은 신성록(가운데)이 열연 중이다. 극 중 죽음은 삶에 고통을 느끼는 엘리자벳에게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진 = EMK뮤지컬컴퍼니
엘리자벳이 어릴 때 나무에 오르다 떨어지면서 초월적 존재인 죽음과 처음 마주한다. 엘리자벳의 아름다움에 반한 죽음은 그녀를 살려두고 평생을 따라다니면서 자신만이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다고 끊임없이 유혹한다. 죽음 캐릭터는 ‘엘리자벳’에서 가장 인기 많은 캐릭터로 꼽히기도 하는데, 바로 죽음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보다 치명적인 매력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극의 흐름을 살펴보면 엘리자벳의 삶은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주지 않는다. 엘리자벳의 아들이 죽자 그녀가 죽음을 몰고 오는 존재라고 비난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그녀 곁을 지키는 게 죽음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녀를 위로하며 “진정한 자유를 찾아 나와 함께 떠나자”고 달콤하게 유혹하는 죽음에 엘리자벳은 점점 빠진다. 오히려 삶이 부정적, 죽음이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독특한 상황이 극에서 연출된다.
죽음의 유혹에 흔들리는 엘리자벳의 모습을 아름답게 담은 ‘마지막 춤’ 장면은 특히 유명하다. 6명의 죽음의 천사들과 함께 펼치는 환상적인 퍼포먼스와 캐릭터 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음악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관객들 사이에서 ‘다시 보고 싶은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그만큼 극 중 죽음이 얼마나 미화돼 표현되는지, 관객들에게 얼마나 사랑받는지 알 수 있는 결과다.
이번 공연에서 엘리자벳 역을 맡은 옥주현은 과거 인터뷰에서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 그 치명적인 매력에 대해서도 알 거라고 생각한다. 극 중 엘리자벳은 매우 두렵지만 너무 힘든 삶 속에서 편안함을 찾고 싶어서 도피한다. 그 복합적인 감정을 죽음이 이끈다”며 “죽음이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나오진 않는다. 완전히 뿌리치지 못하는 매력, 섹시함, 두려움 등 복합적인 감정이 죽음에 뒤엉켜있다. 뭐라 단정 지어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 더 매력적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고 죽음 캐릭터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그녀의 말처럼 복잡한 특성을 지닌 죽음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공연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9월 6일까지.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