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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전시 - ‘아키토피아의 실험’전]창문없앤 판교 집들은 욕망만 남은 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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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0호 왕진오 기자⁄ 2015.07.23 08:47:17

▲아키토피아 전시장 전경. 사진 = Roh SPACE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세운상가, 파주 출판도시, 헤이리 아트밸리, 판교 단독주택단지는 건축이 도시적 규모로 개입해 인프라가 되거나 마치 건축 전시장 같은 모습이 된 장소들이다.

건축가가 도시를 대상으로 한 작업 중 죽지 않고 살아남아 근대적 이상의 기운을 펼친 건물로 세운상가가 있다. 1966년 제14대 서울시장 김현옥이 당시 윤락업소가 즐비하던 종로와 퇴계로 일대에 대한 정비 사업을 추진했다. 이에 건축가 김수근은 종로 3가와 퇴계로 3가를 공중 보도로 연결하는 주상복합건물인 세운상가를 설계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결국 도시의 흉물로 남게 됐다.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건축의 사회적 실험을 주제로 한 건축 기획전 ‘아키토피아의 실험’전(6월 30일∼9월 27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이러한 한국 건축 실패의 역사를 일부 엿볼 수 있다.
‘아키토피아(Architopia)’는 건축(Architecture)과 유토피아(Utopia)의 결합어로, 건축을 통한 이상향 건설을 말한다.

▲조성욱, ‘동상이몽’. 2011∼2013.

파주 출판도시와 헤이리 아트밸리는 비슷한 건물들을 대규모로 찍어내는 도시개발 방식에 대한 대안으로 출발했다. 공동성을 추구하는 문화 장소로 기획된 이곳들은, 각기 다른 건물들이 소형 단지에 들어선다는, 건축 코디네이터 개념이 도입된 아키토피아 시도였다. 그러나 파주 출판도시는 인적 드문 회색조 단지를 만들어냈고, 헤이리 아트밸리는 ‘건물이 멋있는 곳’이라기보다는 ‘데이트하기 좋은 레스토랑 많은 곳’으로 남아 있다.

판교 단독주택 단지는 2000여 세대의 대규모 단독주택 지구로서, 아파트 단지의 균질성과 폐쇄성을 탈피하고자 계획된 저밀도 신도시다. 많은 건축가들이 개별로 참여했지만 결국은 단지 전체가 주택 전시장 같은 모습이 됐다. 많은 건축가들의 데뷔 무대가 됐지만, 통합적인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제각각 잘난 척 하는 모습만 남은 셈이다. 이를 평론가 이영준은 ‘왜 판교는 창문을 싫어할까’라는 사진 작품으로 비꼬았다. 개인의 욕망이 강조되다 보니 외부 노출을 꺼리는 ‘손바닥만한 창문’만 남은 감옥 같은 모양의 주택들이 됐다는 비판이다.

▲이영준, ‘왜 판교는 창문을 싫어할까’. 2015.

이 장소들은 모두 ‘더 나은 장소’를 향한 욕망의 출발점이었다. 인간은 배가 부르면 더 나은 장소를 원한다. 그러나 한국의 아키토피아 시도들은, 건축가와 건축주가 미묘한 힘겨루기를 하다가 그 의미가 퇴색된 경우가 많다. 국가 주도의 유토피아적 건축 계획은, 당초의 의도가 희미해지면서 개인들의 개별적 욕망을 담는 그릇으로만 남기 십상이었다.

한국인, ‘더 나은’ 공간 향해 달렸지만
멋진 공간은 드물고 욕망만 적나라 노출

세운상가와 파주 출판도시, 헤이리 아트밸리와 같은 대규모 건축 작업의 기회조차 지금은 사라졌다. 저성장 시대에 더 이상 이런 대규모 건축 단지 개발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키토피아를 향한 한국인의 욕망은 남아 있다.

▲김용관, ‘헤이리 2015’. 2015.

이번 전시는 개별 건축물을 소개하기보다는, 건축을 통한 유토피아 추구의 현상을 보여준다. 전시장의 사진, 드로잉, 영상, 그래픽, 텍스트 등은 건축 디자인에 대한 읽기 경험을 배가시킨다. 전시에 참여한 건축가, 사진작가, 비평가, 미디어 아티스트, 만화가,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도시 구조의 일부 혹은 건축 전시장처럼 남은 모습들을 새롭게 바라본다.

이번 전시에는 서울시가 소장하고 있는 김수근(1931∼1986) 설계의 세운상가 청사진 도면이 50여 년만에 공개된다. 파주 출판도시와 헤이리 아트밸리 관련 미발표 자료들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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