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미안해, 엄마 아빠도 몰랐어’ 쓴 엄도경 “7포세대에 사과 메시지”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TV 프로그램이 최근 화제다. 과거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은 어른이 청소년의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주는 식이었다면, 이 프로그램은 자녀와 부모가 눈을 마주보고 서로의 생각과 주장을 공유하며 소통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일방에서 쌍방으로 소통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책 ‘미안해, 엄마 아빠도 몰랐어’의 저자 엄도경도 이와 비슷하다. 일단 책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성숙한 부모가 미숙한 자녀를 훈육하는 게 아니라 부모의 “미안하다”는 고백부터 시작한다.
“제 나이가 어느덧 60이 넘었어요. 참 바쁘게 살아왔죠. 우리 세대가 젊었을 때는 먹고 살기 바빴어요. 빨리 일해서 가정과 나라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런데 지금 나이가 들어서 보니 젊은 세대가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3포 세대부터 시작해 이젠 7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주택구입, 꿈, 희망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까지 나왔어요. 10대 땐 학업과 친구관계, 20대엔 취업, 30대엔 결혼 등으로 모든 세대가 자신의 삶을 성찰하기보다는 경쟁에 치여 있어요.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이 곧 내가 발전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경쟁만을 가르쳐온 거죠. 그래서 현재 이런 사회를 만든 것에 대해 솔직하게 미안하다고 고백하고 싶었어요.”
어른들은 뭐든 다 잘할 것 같고, 정답을 아는 능력자 같지만, 부모 또한 처음 살아보는 삶이었기에 모르는 게 많고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이 책은 담담하게 고백한다. 그리고 많은 세월을 살아오면서야 느낀, 가슴에서 우러난 진정한 조언과 위로를 현 세대의 자녀에게 전한다.
단순 자녀 교육서로만 이 책을 보긴 힘들다. 저자는 ‘성인이 읽기 원하는 동화책’ 형식으로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미안해, 엄마 아빠도 몰랐어’ 이전에도 저자는 태초의 인간 등장부터 현재까지, 인간의 존재 이유와 삶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이어왔다. 그 결과를 ‘나는 별이다’와 ‘강강수월래’ 책에 담았는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게 접할 수 있도록, 다정하게 말을 거는 식으로 바꿨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는 ‘직립’과 ‘상향 의지’다. 저자는 “자고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윗사람이 바뀌어야 미래를 꾸릴 젊은이들이 바로 설 수 있다”며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평생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직립하는 존재인데, 신체뿐 아니라 정신도 직립해야 한다. 우리가 앞으로 달리는 법만 강요해왔는데, 이젠 위로 향하는 상향 의지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독특하다. 네모, 세모, 동그라미, 더하기, 곱하기, 빼기, 나누기 등 익숙한 도형과 사칙연산에 삶을 대입한다. 도형은 사람을 상징한다. 네모난 몸통 위에 동그란 머리가 올라가 있고, 그 사이 가슴은 세모꼴이다. 각 부위가 언제 가장 많이 성숙해지는지에 따라서 네모난 몸통은 성장기, 세모꼴 가슴은 중년기, 동그란 머리는 노년기로 봤다. 여기에 셈법이 등장한다.
“성장기는 자신을 채워야 하는 시간이라 ‘더하기’와 ‘곱하기’가 박동합니다. 성장기에 더하고 채워야 진정으로 커갈 수 있죠. 그런데 성장기를 비롯해 중년기, 노년기까지 가슴에 유념해야 할 것이 바로 ‘나누기’와 ‘빼기’예요. 자신이 가진 것을 빼고 나눠줄 줄 알아야 하죠. 특히 우리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나누고 빼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만 잘 살아라’ ‘다른 사람을 밟고 네가 올라가야 한다’는 식의 경쟁은 결국엔 나 자신뿐 아니라 이 사회도 제대로 직립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협력해야 해요. 이걸 잘 보여주는 게 ‘사람 인(人)’자 인 것 같아요. 서로 버틸 수 있도록 기대고 있잖아요?”
또 눈길을 끄는 것이 이 책의 4장이다. 저자가 가장 추천하는 이 장은, 빌딩을 짓는 과정에 삶을 비유했다. 건축가는 건물을 지을 때 형태미와 기능성 등을 고려한다. 저자는 삶에 있어서 이 요소들은 가치, 지혜, 관계, 감성, 소통, 창조라고 강조한다. “빌딩이 지어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우리의 삶 또한 빌딩 하나를 짓는 것과 다를 게 없더라고요” 하고 그는 설명했다.
네모-세모-동그라미-더하기-곱하기-빼기-나누기
간단한 일곱 기호에 담은 진솔한 인생 이야기
첫 번째로, 줄이 끊어져도 안전한 엘리베이터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이 높은 빌딩 짓기를 시작했는데, 저자는 이 첫 시작, 즉 ‘가치’를 올바르게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거운 골조와 석벽이 지반을 무너뜨리자 사람들이 고민 뒤 탄생시킨 철근 구조와 얇은 석벽에서 ‘지혜’를 발견했다. 빌딩을 세운 후 투명 유리로 건물 외관을 장식하자 쏟아지는 직사광선의 열기를 순환시키는 에어컨 시스템을 통해 저자는 타인과의 ‘순환 관계’를 이야기한다.
이어 더 좋은 건물을 짓기 위한 ‘감성과 협업’, 빌딩이 무너지지 않게 충격을 흡수하는 지지대를 만드는 데서 돌파구를 여는 ‘소통’, 마지막으로 독특한 디자인의 건축물에서 저자는 ‘창조’를 말한다. 이 모든 요소를 삶에 대입했을 때 무너지지 않고 당당히 직립하는 건축처럼 각자의 삶도 세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이 무엇이냐고 묻자 저자는 “하나만 고르기 힘들어 눈을 감고 아무 페이지나 펼쳤는데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운명처럼 나오더라”며 108쪽 페이지를 보여줬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란 제목을 단 이야기는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사랑하고, 미움 받고 싶지 않다면 미워하지 말라’며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기에 그 무엇도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인간은 먹고 살기 위해 성장기에 네모를 더하고 곱해야 하죠. 매일 밥을 먹고 움직여야 하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동물과 달리 사회 공동체를 형성하는 존재이자, 남의 자식을 입양해 키울 수 있다는 의식을 가진 유일한 존재예요. 나 혼자만 생각하지 않고, 혈연을 넘어 모두 하나라는 생각을 갖고, 이 생각이 나로부터 시작돼 많은 사람들에게 번져 가면 이 세상의 물과 공기뿐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도 맑아지지 않을까요? 사람이 사람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는 미래가 없습니다. 저는 자발적으로 서로 빼고 나눠주는 사회가 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앞으로도 글을 쓰고 싶습니다.”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