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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0일차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과 프라하의 봄
호텔을 나와 무스텍 역에 내려 도시 탐방을 시작한다. 여기부터 국립자연사박물관까지 이어지는 살짝 언덕진 길이 바츨라프 광장이다. 길 가운데 맨드라미가 예쁘게 가꿔진 보행자 전용로다. 광장이라기보다는 대로(大路)다.
카페, 갤러리, 극장 등이 늘어선 거리를 조금 올라가니 1968년 두브체크가 주도했던 프라하의 봄 혁명이 일어났을 때, 탱크로 밀어붙이는 소련군에 저항해 분신한 혁명 열사 2위의 추모비가 서 있고, 추모비 앞에는 꽃과 촛불이 놓여 있다. 그 위에는 전설의 체코 수호성인 바츨라프의 기마상이 있다. 언덕 끝에는 신 르네상스 양식의 국립자연사 박물관이 멋진 모습을 자랑하며 서 있다. 바츨라프 광장은 세계 각국 관광객들로 붐빈다. 역시 체코는 관광대국이다.
다양한 고고학 유물을 전시하는 국립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바로 길 건너편 현대식 건물에는 국립박물관(입장료 60코루나 = 약 3000원)이 있다. 고고학 유물을 비롯해 네안데르탈인과 하이델베르크인의 초상이 인상적이다. 8~9세기 모라비아에 기독교가 전파된 유래와 함께 모라비아 법전, 성경책이 눈에 띈다. 모라비아 음악도 특별히 중점을 둬 전시했다. 유전 법칙으로 유명한 멘델 섹션도 있다. 인형극 마리오네트도 한 섹션 차지한다.
바츨라프 광장을 나와 올드타운 광장으로 가는 거리에 각종 기념품 가게가 늘어섰다. 기념품 가게 중간에 있는 한국어 간판이 눈에 금방 들어온다. 한국 포장마차집이다. 프라하를 한국인이 아주 많이 찾는다는 뜻이다. 기념품 가게에 들러 프라하 문양이 새겨진 모자를 하나 저렴하게 구입했다(100코루나 = 약 7000원). 부다페스트 어디에선가 모자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기념품 가게 점원이 날더러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이라고 했더니 정확한 한국 발음으로 “최홍만 선수를 아냐”고 묻는다. K-1 이종격투기 선수 ‘테크노골리앗’ 최홍만이다. 체코에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글로벌 시대가 이런 식으로도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깜짝 놀란다.
어젯밤에 이어 또다시 올드타운 광장으로 들어선다. 어제는 저녁 늦은 시간이라 한산했는데 지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오를로이 천문시계 아래는 인산인해다. 매시 정각 8개의 조각상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말해준다기에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는 힘이 놀랍다.
조각상 회전이 금방 끝나서 아쉬운 사이, 시계탑 옥상에서 울려 퍼지는 트럼펫 연주가 관객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이것이 스토리텔링이고 콘텐츠 파워가 아니고 무엇이랴? 사람들은 아쉬움에 한동안 시계탑 아래를 떠날 줄 모른다. 극도로 화려한 치장을 한 시계탑과 주변 건물, 그리고 광장 건너편 첨탑으로 유명한 틴(Tin) 성당까지 올드타운 광장은 특별한 곳이다.
프라하는 첨탑과 높은 탑들이 많지만 거의 모든 탑이 꼭대기에 오르고 싶은 사람에게 입장료를 받는다. 보통 한화 1만 원은 족히 넘는다. 광장에서 찰스 다리로 나오는 골목길 또한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로 이어진다. 어제 중간까지만 건넜던 찰스 다리를 이번에는 완전히 건넌다. 어김없이 거리 밴드가 눈길을 붙잡는다. 다리 중간 쌍십자가 동판은 수많은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느라 반질반질 윤이 난다. 30인 성자상도 지난다. 체코인은 참 재주도 좋고 상상력도 풍부하다. 이탈리아 로마나 피렌체에도 비슷한 콘셉트가 있긴 하지만 이 도시가 산출해 내는 스토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리를 건너니 경사진 언덕이 프라하성(Prazsky Hrad)으로 이어진다. 보헤미아 시절부터 합스부르크 왕가, 나치 점령, 공산 통치까지 모두 겪은 거대 규모의 성이다. 프라하성 언덕에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밤에 오면 야경이 신비로울 것 같지만 해가 긴 여름날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내일 일정이 부담되어 야경은 포기한다.
성 안으로 들어가니 비투스 성당(St. Vitus Catedral)이 수직으로 높이 솟아 있다.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은 아름다움과 섬세함에 보태어 신비감까지 주니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 헝가리 마차시 성당에서 그랬고 체코 성비투스 성당이 또한 그렇듯이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섬세함에 놀란다. 체코인의 손재주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과거 동구권 국가들에 정밀기계 공업이 발달했던 것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넘겨짚어본다.
프라하가 100탑의 도시라는 것은 이 언덕에 올라오면 확연히 알 수 있다. 백탑 아니 수백탑이다. 둥근 탑, 뾰족한 탑, 외탑, 쌍탑 등 저마다 다양한 모습을 뽐내는 탑들이 즐비하다. 방콕에도 탑이 수백, 수천 개 있지만 방콕은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작은 나라지만 이런 솜씨와 지략을 가진 백성이기에 1000년 넘게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고유의 정체성을 지켜오는 것이리라. 마침 위병 교대식도 열린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덕수궁, 광화문 수문장 교대 행사도 의상으로 보나 위병의 용모나 체격으로 보나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상품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