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미술관 ‘신옥진컬렉션’ 전시장. 사진 = 서울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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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왕진오 기자) 장욱진, 전혁림 등 근현대를 대표하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 이중섭이 시인 구상에게 보낸 편지 등 20세기 미술에 대한 이해 폭을 넓힐 수 있는 특별한 자리가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마련된다.
8월 12일부터 서울대학교 미술관 갤러리 1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에는 화상(畵商)이자 개인 컬렉터가 40년간 모아온 작품이 공개된다. 구본웅, 권진규, 김기창, 김흥수, 문신, 박고석, 박수근, 이우환, 장욱진, 전혁림, 최영림, 황재형 등 한국 작가와 윌렘 드 쿠닝, 로버트 인디애나 등 해외 유명 작가에 이르기까지 48명의 회화, 판화, 사진 64점이다.
이번 전시는 개인 소장가인 신옥진(68) 부산공간화랑 대표가 모아온 작품 중 미술관에 기증한 64점으로 꾸며졌기에 그 의미가 더욱 눈에 띈다.
소장가들이 수집한 미술품들은 그간 자택이나 개인 공간에 격리돼, 일반 관객은 볼 수 없었다. 부정기적으로 개인 소장가들의 용기 있는 결단을 통해 공공 미술관에 전시되거나 또는 때로 기증돼 인류의 재산으로 환원되는 과정이 부분적으로 있었을 뿐이다.
▲김흥수, ‘시대적 사회상’. 캔버스에 유채, 30.5 x 30.5cm.
미술관 소장품으로 기증된 작품들은 △전시나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며 △큐레이터와 전문가들에 의해 작품의 내용이나 시대적 배경, 재료적 측면이 연구 되고 △보수나 수복 전문가들에 의해 정기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도 △3천여 점의 주요 미술 작품들을 기증한 로버트 리만(Robert Lehman, 1891∼1969) △벨라스케스 등 18∼19세기 주요 회화 작품을 1869년 기증한 루이 라 카즈(화가이자 의사) 등 개인 소장가의 존재가 없었다면 오늘날 같은 규모로 성장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미술사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신옥진 부산 공간화랑 대표. 사진 = 서울대미술관
신옥진 부산공간화랑 대표의 소장품 중 일부가 서울대학교 미술관에 기증된 것은 미술사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기증된 64점 중에는 장욱진(1917∼1990)의 익살스러운 선의 매력이 돋보이는 드로잉, 추상화되어가는 연필 선으로 나지막한 수평적 풍경을 담은 박수근(1914∼1965)의 드로잉, 세련된 색조와 절묘하게 짜인 디자인적 구성을 갖는 전혁림(1915∼2010)의 항구 풍경 등 한국 작가 30명의 작품이 포함됐다.
개인 컬렉션 64 작품을 공공 자산으로 기증
“유명 작품을 통한 미술사 완성의 발판 마련”
또한 △일본의 대표적 서양화가 우메하라 류사브로가 근대화의 길목에 일본의 전통과 서양적 감각의 절충을 시도한 4점의 유화 및 삽화 △고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근대 일본의 미인화를 계승한 후지타 츠구지의 판화를 비롯한 8명의 일본인 작가의 작품도 있다.
▲장욱진, ‘마을 풍경’. 한지에 크레용, 25.5 x 18.5cm, 1980.
여기에 2차 대전 이후 미국을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이끄는 데 기여한 윌렘 드 쿠닝(1904∼1997, 미국 추상표현주의 대표 작가)과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 뉴욕 출신의 팝아티스트)의 판화 등 서양 작가 10명의 작품도 함께 기증됐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조안나’. 판화, 43 x 60cm.
서울대미술관 측은 “기증된 신옥진 컬렉션의 다양한 작품 연대, 지역 폭은, 개관 10주년을 준비하는 서울대미술관 소장품의 구성을 보다 알차게, 미술사적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며 “미술 교과서에 이름을 올린 유명 작가들의 작품 전시는 인쇄물을 통한 2차적 경험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율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중섭, ‘시인 구상에게 보내는 편지’. 원고지에 연필, 20 x 31.5cm.
평생 모은 유물과 미술품으로 가득한 자택을 박물관으로 공개한 19세기 영국의 건축가이자 수집가인 존 소안 경(1753∼1837)은 수집의 의미를 “미래 세대의 공익을 위한 것”이라 정의했다. 그런 관점에서 신옥진 대표의 이번 기증은 배움을 갈구하는 학생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전시는 9월 20일까지.
기증자 신 옥진 공간화랑 대표는?
1947년 부산에서 태어난 신옥진 대표는 출생 후 ‘신삼기’라는 이름을 지녔다. 폐결핵 투병을 하며 독학해 서울신문사 편집국에 턱걸이 입사해 3년여 근무를 했지만 병이 도져 낙향했다.
▲우메하라 류사브로, ‘카시와기 슌이치 초상’. 유채, 32.8 x 34.5cm, 1951.
흉곽외과 대수술로 목숨을 부지해 투병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다방을 겸한 ‘부산공간화랑’을 1975년 개관했고, 전국 화랑들의 모임인 ‘한국화랑협회’에 가입했다. 또한 ‘미술품감정위원회’를 창설하고 초대 감정위원장을 역임했다.
이후 서울의 K옥션, 서울옥션, 대구의 M옥션 등에서 미술품 감정 업무를 맡았다. 지방 신진작가들을 육성한다는 취지 아래 ‘부산청년미술상’을 만들고 26년간 열정을 쏟았다.
글쓰기에 천착해 몇 번의 개인전과 산문집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 및 시집 ‘빛난 하루’, ‘잠깐 비움’, ‘점 하나의 예술’등을 출간하기도 했다.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