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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몸집커진 창작 뮤지컬, “해외물, 게 섰거라”

춘추전국 시대 맞은 대형 창작 뮤지컬의 명과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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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5호 김금영 기자⁄ 2015.08.27 08:53:16

▲2013년 12월 영화 배급사 NEW가 공연 사업에 뛰어 들며 선보인 뮤지컬 ‘디셈버’의 한 장면. 5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갔고 3000석 규모 극장에서 공연됐다. 사진 = NEW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과거 해외 뮤지컬을 정식 라이선스 받지 않은 채 무단으로 국내 무대에 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국내 뮤지컬 시장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우선 양적 성장이 눈에 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올 4월 발표한 ‘2015 뮤지컬 실태 조사(2014년 기준)’에 따르면 2014년 뮤지컬 공연 전체 매출액은 3259억 원으로, 전년 대비 8% 증가했다.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로, 1000석 이상의 대형 공연장도 속속 등장했다.

이렇게 시장이 커지면서 무대 장치가 화려하고 스케일이 큰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이 인기를 계속 끌고 있다. 이에 해외 뮤지컬을 그대로 갖다 쓰는 것만이 아니라, 국내 고유의 창작 뮤지컬의 대형화 추세도 확실해지고 있다.

2014년 국내 순수 창작 뮤지컬은 전체 뮤지컬 공연의 39.4%를 차지했다. 2007~2014년 국내 창작 뮤지컬 작품에 투자된 금액도 371억 원. 특히 올해는 뮤지컬 ‘신과 함께’ ‘아리랑’ ‘명성황후’ 등이 무대에 오르며 대형 창작 뮤지컬의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격이다. 창작 뮤지컬 꽃이 피고 있지만 그간의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뮤지컬 불모지에 ‘살짜기 옵서예’ 등장

예그린악단이 1966년 선보인 ‘살짜기 옵서예’는 뮤지컬 불모지였던 한국의 첫 창작 뮤지컬이자, 한국 뮤지컬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1966년 10월 초연됐고, 스타 가수 패티김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다. 당시 나흘 동안 7회 공연에 관객 1만 6000명을 동원하는 흥행 성적을 올렸다. 판소리에 뿌리를 둔 고전 소설 ‘배비장전’을 원작으로 삼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서양 음악에 한국적 가락과 발레 안무를 더해 혁신적 무대라는 평을 받았다.

▲1995년 초연된 뮤지컬 ‘명성황후’는 올해 20주년을 맞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기념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초연 당시 총 제작비 12억 원으로 화제가 됐다. 사진 = 에이콤인터내셔날

1980년대 경제 부흥기에는 창작 뮤지컬이 본격 등장했다. ‘님의 침묵’, ‘양반전’ 등 한국 고전 문학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무대에 올랐다. 1990년대엔 소재가 보다 대중적인 방향으로 흘러갔고, 뮤지컬 전문 제작사들도 나타났다.

롱런하는 창작 뮤지컬도 등장했다. 소극장에서 주로 공연되는 ‘사랑은 비를 타고’(1995), ‘빨래’(2005), ‘오 당신이 잠든 사이’(2005), ‘김종욱 찾기’(2006)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공연되며 사랑받는 대표적 창작 뮤지컬이다. ‘빨래’는 2012년 일본 라이선스 공연으로 해외 진출도 이뤘으며, 현지의 뮤지컬 티켓 판매 순위 10위권 안에 드는 저력을 보였다.

이처럼 소규모 창작 뮤지컬이 붐을 이루면서, 몸집을 키운 대형 창작 뮤지컬도 등장하기 시작한다. 획을 그은 것은 1995년 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된 ‘명성황후’다. 창작 뮤지컬의 대형화, 브랜드화를 이끈 작품이었다. 

▲2013년 공연된 뮤지컬 ‘아르센 루팡’의 한 장면. 본 공연이 올라간 뒤에도 계속해서 대사와 동선이 바뀌며 혼선을 줘 아쉬움을 남겼다. 사진 = CNB

명성황후 시해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사 에이콤인터내셔날이 만든 이 뮤지컬은 총 제작비 12억 원이 들었다. 서울에서만 21시즌 연속 공연을 기록했다, 지방 공연 428회를 더해 국내 뮤지컬 최초로 1000회 공연 기록을 돌파했으며(2009), 이어 국내 최초 130만 관객 돌파(2010)를 기록했다. 1997~1998년엔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올해는 20주년 기념 공연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9월 10일까지 열린다. 윤호진 연출은 “관객의 지지가 있었기에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를 20년 동안 끌어올 수 있었다”고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대형 제작사의 창작 뮤지컬 도전과 침몰

‘명성황후’의 성과는 눈부셨지만 씁쓸함을 맛본 제작사도 있다. 설앤컴퍼니는 크리에이티브프로덕션과 공동 제작한 첫 대형 창작 뮤지컬 ‘천국의 눈물’을 2011년 2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였다. 1967년 베트남 전쟁 중 꽃핀 남녀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였다. 브로드웨이 진출을 목적으로 한 이 작품엔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등 브로드웨이 스태프가 참여했고, 제작비만 50억 원에 달했다. 여기에 김준수, 이해리(다비치), 정상윤, 전동석 등 스타 배우가 캐스팅됐다.

▲뮤지컬 ‘영웅’은 2009년 초연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올해 4월 공연에서도 1000석 규모 공연장이 가득 차는 매진 행렬을 이었다. 사진 = 에이콤인터내셔날

공연 초반엔 대형 제작사가 만드는 거대 규모의 창작 뮤지컬에 기대감이 높았다. 김준수 출연 회는 온라인 예매 사이트가 오픈되자마자 1차분 1만 5000석이 5분 만에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2차분 1만 3000석 역시 오픈 3분 30초 만에, 3차 예매분 4500석도 2분 30초 만에 매진됐다. 당시 설도윤 대표는 “성공할 자신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스타 김준수의 출연 이외에 ‘천국의 눈물’ 전체 내용은 진부한 스토리 전개 탓에 외면 받았으며, LED 영상 등 당시 국내엔 생소했던 기술이 “이질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이 작품은 설앤컴퍼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보인 대형 창작 뮤지컬로 남아 있다.

오디뮤지컬컴퍼니는 1998년 ‘안녕 비틀즈’를 선보였으나 흥행에 실패했다. 2001년 선보인 ‘리허설’도 결과가 신통치 않아 3년 간 빚을 갚는 상황을 맞았다. 이후 소-중극장 규모의 ‘웨딩펀드’ ‘달콤한 나의 도시’ 등을 선보였지만 역시 큰 반향은 없었다. 오디뮤지컬컴퍼니는 올해 ‘드림걸즈’ ‘맨 오브 라만차’ ‘지킬 앤 하이드’ 등 대규모 라이선스 작품을 선보인 상태로, 대형 창작 뮤지컬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아직 없다.

▲설앤컴퍼니가 야심차게 선보인 첫 대형 창작 뮤지컬 ‘천국의 눈물’(2011)은 브로드웨이 진출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브로드웨이 스태프가 참여하고 50억 원의 제작비로 주목 받았으나 작품 완성도가 아쉽다는 평을 받았다. 사진 = 설앤컴퍼니

2013년 12월 영화 배급사 NEW가 공연 사업에 뛰어 들며 야심차게 선보인 ‘디셈버’도 아쉬운 작품이었다. 제작비 50억 원이 들어간 이 작품은 3000석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고, 김준수와 박건형까지 출연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순수익 10억 이상의 흥행 성적은 좋았지만, 완성도가 아쉽다는 혹평을 들었다.

많은 제작비를 들였는데 왜 명암이 갈렸을까? 대형 스케일에 치중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스토리 라인이 부실해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한 예로 블루스퀘어에서 공연된 ‘아르센 루팡’(2013)은 프레스콜에서부터 불안한 기운이 감지됐다. 당시 출연 배우 김다현은 “솔직히 말하면 힘들다. 연습 과정부터 계속해서 가사와 장면들이 바뀌는데 수정된 부분들을 받아들일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드라마에는 쪽대본이 많다지만 뮤지컬에서 쪽대본으로 연습하기는 처음”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래도 이 또한 더 좋은 작품을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라며 의지를 다지던 그의 바람과는 달리 ‘아르센 루팡’은 본 공연 시작 뒤에도 대사와 동선이 계속 바뀌며 관객에게 혼선을 줬다. 대규모 스케일의 무대에 화려한 무대 장치가 풍부했지만 스토리 라인이 부족해 관객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빨래’ ‘김종욱 찾기’ 등이 소규모라도 스토리와 음악에서 호평을 받으며 관객들을 끌어들인 것과 반대의 행보였다.

▲뮤지컬 ‘그날들’은 창작 뮤지컬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2013년 초연 이후 흥행에 힘입어 전국 투어 공연을 진행했고, ‘제4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에서 흥행상을 받았다. 사진 =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이처럼 아쉬운 작품 완성도 뒤에는 국내 창작 뮤지컬 제작의 어려운 상황이 자리한다. 2014년 창작 뮤지컬 ‘완전보험주식회사’를 선보인 최재광 광뮤지컬컴퍼니 대표는 “공연은 어떤 한 분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음악과 연기, 무대 연출, 스토리까지 다양한 파트가 한 데 어우러져야 한다. 그래서 상대의 분야를 서로 이해하는 시간이 정말 중요한데, 국내 공연계는 그 과정을 기다려줄만큼 관대하지 않다. 투자자 및 극장이 빠른 시간 안에 투자 자금을 회수하려 들기 때문”이라고 어려움을 전했다.

전문 인력의 부족함도 지적했다. “전문적으로 창작 과정을 가르칠 기관, 전문가가 부족하다. 뮤지컬 입문을 꿈꾸는 학생들이 ‘도통 어디서 무엇을 배워야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뮤지컬 전문 인력 양성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신시컴퍼니가 3년간 50억 원을 들여 만든 뮤지컬 ‘아리랑’의 한 장면. 극 중 수익 역의 서범석(오른쪽)과 옥비 역의 이소연이 열연 중이다. 개막 이래 꾸준히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 10위권을 유지하며 관심받고 있다. 사진 = 신시컴퍼니

이러다 보니 해외에서 이미 성공해 상대적으로 안정적 흥행이 보장되는 된 라이선스 뮤지컬을 선호하는 풍토가 생겼다. 창작 뮤지컬 ‘한여름밤을꿈’ 제작사 베터리즘 측은 “창작 뮤지컬의 경우 유명 라이선스 공연에 비해 투자 유치가 힘들고 유명 연예인이 출연하지 않으면 투자사에 기획서조차 넣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성공적으로 안착한 대형 창작 뮤지컬들에 ‘눈길’

그렇다면 창작 뮤지컬의 앞날은 불투명하기만 할까. 꼭 그렇지도 않다. 성공적으로 안착한 대형 창작 뮤지컬 사례도 있다. 故 김광석의 노래를 바탕으로 만든 ‘그날들’은 2013년 초연 이후 탄탄한 스토리와 음악의 힘으로 호평 받았다. 이에 힘입어 전국 투어 공연을 진행했고, 1년 동안 창작 뮤지컬을 가장 빛낸 주역을 뽑는 ‘제4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2015)에서‘흥행상’을 받았다. 흥행상은 관객의 호응을 받은 작품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충무아트홀이 세계 시장을 겨냥해 총 제작비 40억 원을 들여 만든 ‘프랑켄슈타인’(2014)에도 관객이 몰렸다. 동명 원작 소설을 창작 뮤지컬로 만들었는데,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연장 공연을 했고, 오는 11월에 다시 재연 예정이다. 이밖에 ‘영웅’ ‘광화문 연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도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아 성공적으로 안착해 꾸준히 재연되는 창작 뮤지컬이다.

▲서울예술단이 30주년 기념으로 선보인 창작 가무극 ‘신과 함께’의 한 장면. 동명의 원작 웹툰과 차별화된 매력으로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사진 = 서울예술단

그리고 특히 올해는 기존 흥행작의 재연뿐 아니라 대형 창작 뮤지컬 신작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웹툰을 원작으로 저승 이야기를 그리는 ‘신과 함께’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됐고, 신시컴퍼니가 준비 기간 3년에 제작비 50억 원을 들여 만든 ‘아리랑’이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서울예술단이 30주년 기념으로 선보인 ‘신과 함께’엔 지름 17m짜리 거대한 원형 바퀴 세트가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지옥에서 형벌이 이뤄지는 과정을 담은 초대형 세트도 화려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스토리 라인이 호평 받았다. 윤회 사상을 중심으로 삼은 스토리에 서울예술단만의 독창적인 춤사위가 녹아들어 원작 웹툰(주호민 작가)과 차별화되는 매력이 있다는 평을 받았고,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조정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리랑’은 7월 개막 이후 인터파크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 꾸준히 10위권 안에 들며 관심을 받고 있다. 내년엔 서태지의 음악을 기반으로 한 ‘페스트’, EMK뮤지컬컴퍼니의 첫 대형 창작 뮤지컬 ‘마타하리’ 등 기대작이 개막 준비 중이다.

창작 뮤지컬 프레스콜에서는 항상 “어렵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최재광 광뮤지컬컴퍼니 대표는 “창작 뮤지컬을 만드는 일은 가시밭길”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는 “반대로 보면 블루오션이기도 하다. 시각의 차이”라고도 짚었다. 한국 영화도 1980~90년대만 해도 해외 유수의 영화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의아해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지금은 세계 각국에 수출되고 권위있는 상을 받기도 하는 것처럼, 뮤지컬도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신시컴퍼니가 내세운 전략도 눈길을 끌었다. 창작 뮤지컬의 흥행성을 보장받기 어려운 환경 속, 주위에서 ‘손해니 절대 하지 말라’고 붙잡는 상황에서 신시컴퍼니는 대형 창작 뮤지컬인 ‘아리랑’을 선보이기 위해 ‘시카고’와 동시에 개막하는 전략을 취했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는 “창작 뮤지컬, 거기다 초연인 경우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 망할 수도 있기에 투자도 받지 않았다. 대신 배우도 적고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인 ‘시카고’를 함께 내놨다. 지난해 뮤지컬 ‘고스트’의 적자 또한 ‘시카고’가 메웠다”고 밝혔다. 신시컴퍼니의 대표 흥행 작품인 ‘맘마미아’의 수익 또한 창작극 ‘푸르른 날’을 만드는 데 쓰이는 등 흥행 작품의 수익이 꾸준히 창작극에 투자되고 있다.

박 대표는 “우리 이야기를 다루는 창작 뮤지컬에 기존에 없던 새 시스템과 혁신을 도입하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제작비를 투자하고 배우와 스태프 160여 명이 힘을 모았다. 이 작품의 성공 여부에 따라 창작 뮤지컬이 대형으로 발전할지, 아니면 현재 수준에 머물지 여부가 갈릴 것”이라며 “설사 망한다 하더라도 앞으로 창작극을 계속 선보일 것”이라고도 결기를 보였다.

대형 라이선스 공연이 주름잡던 국내 뮤지컬 시장에 우리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이 소규모로 시작해 현재까지 계속 대형으로 발전하는 현상은 반갑고 바람직하다. 그러나 국내 제작 환경은 열악하고, 시행착오가 많고, 부정적인 시각 또한 많은 게 사실이다. 갈 길이 멀다고 가능성을 없애면 안 된다. 창작 뮤지컬에 대한 대중의 애정과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꼭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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