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왕진오 기자) 도공이 흙을 빚어 수천도가 넘는 불가마에 넣고 인고의 시간을 거쳐 완성된 도자기를 세상에 내놓듯이, 화가 차규선(47)은 캔버스에 흙과 아크릴 물감을 섞어 바른 후 바람과 햇빛에 모든 것을 맡겨놓고 작품의 완성을 기다린다.
불기운이 다한 후의 가마에서 꺼내지는 도자기의 형태는 전적으로 불의 기운에 의해 완성된다. 마치 도자기를 굽는 과정을 거치는 듯한 작가의 작업에선 화려하지 않는 분청 편병의 고졸한 멋이 배어나온다.
"여러 도자기 중에서 자유분방한 미학을 드러내는 분청에 이끌리게 됐죠. 어린 시절 보았던 고향 경주의 풍경을 그리기에 가장 적절한 소재였고, 마치 먹을 묻힌 후 일필휘지로 그려내는 붓끝의 매력을 발산하기에 적합한 재료로 다가오게 됐습니다."
그는 자신의 눈과 마음에 남아 있는 주변의 풍광을 그린 작품 20여 점을 갖고 3년 만에 서울 종로구 율곡로 이화익갤러리 전관에서 관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15년 전 흙을 주요 재료로 사용하며 작업을 펼치던 그의 작업은, 포항에서 열린 분청사기 전시에 출품된 편병을 본 이후 180도로 변신했다. 분청의 거친 질감, 그리고 유약이 자연스럽게 흘러 내려 자연의 움직임을 기록하듯이 작가의 작품에는 도자기 표면을 감싸는 질박함이 강하게 드러난다.
"분청에도 여러 가지 기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그림은 분청에 가까운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청의 형식을 빌어서 물감을 올리고 회화의 형식을 따라 물로 씻어내기도 하는데, 마치 도공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빼어난 것과 미숙한 것, 세련된 것과 우직한 것의 차이를 구별해 그것이 잘되고 못되고를 따지지 않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라는 자세다.
이번 전시를, 작가는 자신의 일상을 온전한 상태에서 분출해 화면에 담아냈는지를 잠시 보여주는 과정으로 여긴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일은 마치 수행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