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디맨션은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저희 부부의 바람에 한 발 더 가까이 가게 해준 존재죠. 아내에게 이 모든 게 꿈이었고, 다시 예전에 기디맨션이 생기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어떨 것 같냐고 물어보니, 똑같은 선택을 할 거라고 말하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예요(웃음).”
“집 리노베이션은 집주인에 맞춰요”기디맨션을 처음 방문했을 때 매력 있는 건물의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앞에서, 옆에서 보는 모습이 달랐고, 빨간 벽돌과 하얀 벽은 동화책에서 본 듯한 친근함이 느껴졌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두 개의 길도 특이했다. 한쪽은 반지층과 1층의 기디펍, 다른 쪽은 생활공간으로 향하는 입구였다. 기디펍의 경우 바깥에서 반지층과 1층이 연결되는 구조를 감추지 않고 모두 훤히 들여다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그 옆으로 작고 하얀 철문 뒤에 펼쳐지는 계단이 쭉 깔려 있는데, 이 계단을 올라가면 또 새로운 공간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절로 갖게 된다.
▲조현진 건축가 겸 조앤파트너스 대표.(사진=조앤파트너스)
그 계단을 올라가 차례차례 마주친 공간들은 이런 기대감을 충족시켰다. 2층은 좁은 복도를 중심으로 일렬로 늘어선 방에 침실과 화장실, 옷방이 심플하게 마련됐다.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벽 아래 부분엔 은은한 조명이 켜져 하얀 벽과 조화를 이뤘다. 탁 트인 구성이 특징인 3층은 쿠킹 클래스를 할 수 있는 큰 식탁을 중심으로 허브를 기르는 테라스까지 이어졌다. 공간 자체는 넓지 않았지만 넓게 느껴지는 건, 4층과 복층 구조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계단을 올라가 마주한 4층 서재엔 벽 한가운데 뚫린 창문이 인상적이었다. 네모난 모양의 틀엔 커튼을 달지 않았는데, 멀리 산 모습이 비쳐 마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좁다란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이렇게 기디맨션의 각 층은 새로운 재미를 준다.
이 건물은 조현진 건축가가 설계했다. 조 건축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합정동 한적한 골목길에 위치한 잭슨 빌딩이 있다. 이 건물 또한 사무-주거 공간이 결합된 건물로, 건축면적 42㎡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주목받았다. 방성곤·임이랑 부부를 아는 잭슨 빌딩의 건축주가 조 건축가를 소개시켜줬고, 연남동 지역에 살 공간을 고민하던 부부에게 조 건축가가 지금 기디맨션의 본래 건물을 소개했다.
“당시 부부가 아파트에 살다가 자신들의 인생 터닝 포인트를 찾고 싶어 했어요. 지방으로 내려갈까도 고민 중이라고 했는데, 연남동에서 마침 이들 부부에게 잘 맞을 것 같은 건물을 발견했죠. 한 40년 정도로 오래됐고, 전체 대지 면적이 20평 정도로 넓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건축비를 부담하기 힘든 신혼부부의 사정에 맞출 수 있는 액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건물은 보수해서 사용할 생각을 했고요.”
▲조현진 건축가는 연남동에 기디맨션을 비롯해, 게스트하우스 ‘마이홍대’와 ‘더 헤밀’, 카페 ‘루이’ 등을 작업했다. 사진은 더 헤밀의 전경.(사진=조앤파트너스)
부부와 조 건축가는 상의 끝에 신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결정했다. 이 또한 상황에 맞춘 선택이었다. 조 건축가는 “건축주 입장에서는 신축보다 리모델링이 비용 측면에서 효율적”이라며 “특히 연남동과 합정동에 리모델링이 많다. 건축주 입장에서 접근하자면,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으면 현행법상 1층 공간에 상가를 만들지 못하고 주차장으로 빼앗길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리모델링을 하면 1층을 상가로 빼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부수고 새로 지으면 1층 임대료 날아가요”
건축가 입장에서 리모델링을 마다않고 재미있어 하는 이유는 한국을 더 재미있게 만들고 싶어서다. 조 건축가는 “과거 한국 전쟁 시 많은 건물이 부서지고 새로 지을 때 건축가가 아니라 업자들이 똑같은 집을 박스 올리듯 지었고, 그 결정체가 아파트였다”며 “어려운 경제 상황 탓에 내 집이 있다는 사실 자체도 만족하던 시대에 디자인은 사치이자 부자들의 전유물로 느껴졌다. 건축가가 나설 상황이 아니었다. 그 결과 재미없는 건물들이 많아졌고, 특히 인구가 밀집된 서울은 외국인이 매력을 느끼기 힘든 고리타분한 도시가 됐다”고 입을 열었다.
▲연남동 기디맨션 조감도. 리모델링을 적극 활용한 형태로, 기존 건물과 새로 증축한 건물의 조화를 강조했다.(사진=조앤파트너스)
“유럽에서는 200년 이상 된 건물을 유지하는 데 힘쓰죠. 또한 건물을 증축하거나 새로 지을 때도 기존 건물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려고 리모델링을 많이 해요.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각 건물이 간직한 역사와 개성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옛날 것과 현대적인 게 모였을 때 생기는 결과물은 상당히 재미있어요.
그래서 모든 것이 부서지고 비슷비슷하게 새로 지어진 건물로 가득 찬 서울이, 역사 없이 새로 시작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솔직히 진행 과정은 신축이 더 수월해요.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삶의 역사가 반영된 건축물을 조금이라도 지켜나가자는 의도로 리모델링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건축가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조 건축가는 “연남동이 참 흥미로운 지역”이라고 짚었다. 리모델링의 취지를 제일 잘 이해하고 있는 동네로, 이 동네만의 감수성을 특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기디맨션의 경우 기존 1층의 벽돌을 보여주려는 욕구가 컸다. 못생긴 벽돌 하나도 그 건물의 역사를 보여줄 오브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본래는 증축까지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부부와 상의하는 과정에서 좀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건폐율을 맞추기 위해 건물 속내를 잘라낸 뒤 목조로 2개 층을 증축하고 콘크리트를 얹었다. 기존 건물의 벽돌과 여기에 새로 덮인 목재, 그리고 콘크리트까지 3개의 구조가 만나 재밌는 모습을 연출했다. 2층은 11.7평, 3층은 8.9평, 4층은 7.01평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구조다. 하지만 3층과 4층의 복층 구조로 답답한 느낌을 없앴다.
“저 주택 조현진이 지었네” 알아보면 실패
기디맨션 건축주 부부는 “건축가와의 소통이 정말 중요했다”고 연신 말했다. 조 건축가도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짚었다. 건축가로서의 창의성 발휘가 중요하지 않냐고 묻자 “주택을 지을 때는 건축주의 이야기가 가장 중요시돼야 한다”고 답했다.
“갤러리나 원룸, 또는 상업용 건물을 지을 땐 이슈를 던지고 싶어 강하게 의견을 어필합니다. 건축가로서의 개성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주택을 설계할 땐 이야기가 다릅니다. 전 어떤 주택을 본 사람이 ‘저거 조현진이 지은 거네’라고 말하면 그 건물은 실패했다고 봐요. 건축가가 아닌, 그곳에 사는 사람의 이미지가 풍겨 나오는 건물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옷으로 비교하자면 클래식 수트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모던한 수트를 입으라고 강요한 뒤 ‘잘 어울리시네요’ 하면 안 된다는 거죠. 건축주와 최대한 대화를 많이 해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건축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현진 건축가는 합정동의 잭슨빌딩으로 주목받았다. 사진은 시공 전(왼쪽)과 시공 후 모습.(사진=조앤파트너스)
기디맨션 건축주 부부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꼭 건물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나이는 얼마고, 취미는 무엇이며, 성격은 어떻냐, 무엇을 좋아하느냐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이야기가 건축과 무슨 상관이냐 할 수도 있지만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예컨대 나이가 많을 경우 계단이 너무 많으면 생활하기 불편할 수 있고, 아이스하키가 취미인데 그 부분을 모르면 하키 채를 둘 공간을 만들어주지 못한다. 또는 강아지를 배려한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기 힘들기 때문.
조 건축가는 “좋은 건축주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건축가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만들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도 같다. 건축물 하나를 잘 만들려면 건축주와의 관계를 잘 풀어야 하고, 시공할 땐 시공사와, 공사할 때 주변의 주민과의 관계를 잘 풀어야 한다. 총괄적 관리를 잘 지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조 건축가는 조앤파트너스의 대표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조 건축가가 차린 조앤파트너스는 올해로 만 3년 된 건축 사무소다. 디자인만 담당하는 게 아니라 설계와 시공 및 인테리어까지 모두 맡아 진행하기 때문에 그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조현진과 파트너들이 함께 간다는 의미에서 ‘조앤파트너스’다. 부족한 점을 서로 채우고 도우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건축가는 건축주-시공자 아우르는 지휘자 돼야
연남동엔 조앤파트너스의 작품이 많다. 기디맨션은 물론 게스트하우스 ‘마이홍대’와 ‘더 헤밀’, 카페 ‘루이’도 맡았다. 현재 카페 루이 맞은편에 새 건물이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 또한 조앤파트너스가 맡았다.
“홍대 출신으로 10년 넘게 이 부근에 살았기에, 익숙한 연남동과 인연이 많이 이어지는 것 같네요. 건물을 지을 때 그 동네를 먼저 이해하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한국 디자인플라자(DDP)의 경우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를 초청해 건립했지만 한국, 그리고 서울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혹평이 있었죠. 단순히 멋진 건물만을 생각하기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감수성을 갖고 어떤 생활을 하며, 어떤 사고패턴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건축가로서의 꿈을 묻자 그는 학창 시절 이야기를 했다. 본래는 주위에선 의대 입학을 기대했고, 수능 점수도 좋게 나왔지만 창조 작업에 대한 갈증으로 건축과에만 지원해 부모님이 말렸다고.
그는 “과거보다 나아졌지만 한국에서는 건축가라는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태”라며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건축가는 연예인과 동급으로 꼽힐 정도로 인지도가 높지만, 한국은 아직 건축가와 시공사에 대한 개념이 정확히 정립돼 있지 않다. 아파트 인테리어엔 관심이 많지만 주택은 불편하다는 인식도 여기에 한 몫 한다. 그래서 건축가의 위치가 더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건축가의 길을 걷겠다고 하니 주위 반응은 ‘왜 그러냐’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홍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파리 유학을 다녀왔다. 유학 생활은 건축에 대한 갈증을 더욱 크게 했다.
“파리 중심지엔 아파트는 거의 없고 빌라가 많아요. 건물의 개성을 중요시하죠. 그런데 한국에는 주거 공간을 투자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측면이 있어 안타까워요. 전 어릴 때 마당이 있는 친할머니 집에 자주 갔어요. 마당에서 뛰어 놀고 농구도 하면서 그 공간은 제 유년 시절의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죠.
그런데 지금은 아파트에서 ‘절대 뛰지 마라’고 합니다. 추억의 다락방도 없죠. 비슷비슷한 건물들처럼 그 안의 사람들도 각자의 색 없이 회색빛을 띠고 있어요.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잭슨빌딩이나 기디맨션처럼 협소한 주택에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색깔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이 과거와 비교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거예요. 전 그 사람들이 자신의 색깔을 제대로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대형 건물 또는 유명 갤러리 건축 공모가 나오면 난리가 난다. 나도 당연히 욕심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내공을 닦고, 겸손하게 건축주가 원하는 꿈의 집을 지어주는 데 집중할 때라고 생각한다”며 “건축주가 밝게 웃으며 자신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과정까지 잘 이끌어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