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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유라시아 끝까지 누빈 23일 질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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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52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10.15 08:57:34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2일차 (헬싱키 → 모스크바 경유 → 서울)

헬싱키 공항 오후 5시 풍경

헬싱키 공항으로 나가 모스크바행 항공기를 기다린다. 모스크바행이 떠난 지 한 시간 뒤, 서울행 핀에어가 떠나는 36번 게이트에서 한국인 단체 관광객과 섞여 항공기 출발을 기다린다. 한국 휴가 피크 시즌을 유럽 어디선가 보내고 귀국하는 사람들이다. 팔도 사투리가 다 들리니 벌써 집에 와 있는 것 같다.

그 옆 게이트는 홍콩행, 또 그 옆은 일본행, 중국행 이런 식이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아예 신발까지 벗어 던지고 카드놀이에 열중하며 떠드니 보기가 민망하다. 아시아 3국 여행자들이 어쩌면 이렇게 국적별로 차이가 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는 사이 아시아 도시에서 출발한 항공기들이 분주히 들어오기 시작한다. 영국으로 단기 어학연수 가는 일본 어린이 단체가 유니온잭 깃발을 따라 종종 걸음으로 지나간다. ‘아시아로 가는 가장 빠른 하늘 길’을 표방하며 승객 유치에 힘을 쏟는 핀에어는 헬싱키 공항에 매일 이런 풍경을 만들어낸다. 

▲다양한 곳에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여행의 묘미였다. 사진은 몽마르트르 언덕을 가득 채운 관광객들. 사진 = 김현주

헬싱키에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특히 많다. 단체보다는 개인 단위 관광객들이 많다. 핀에어는 일본 도쿄, 나고야, 오사카 세 도시로 각각 직항 노선을 갖고 있다. 수요가 많아서 노선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노선이 열려서 관광객이 늘어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번잡한 서유럽 도시와는 달리 고즈넉한 헬싱키가 그들의 취향에 잘 맞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끝물인 것 같다. 이 도시에도 중국인, 한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나기 시작했으니 일본인들은 더 고즈넉한 곳을 찾아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시작할 것이다.

모스크바 공항 풍경

헬싱키에서 모스크바까지는 1시간 40분 걸렸다. 여행을 시작했던 바로 그 지점에 다시 오니 반갑다. 이번 여행길에 모스크바 공항에 벌써 세 번째 들른다. 밤 9시 35분 출발하는 서울행 게이트 부근은 한국인으로 가득하다. 요금이 저렴한 아에로플로트 러시아항공을 이용해 유럽 다른 지역을 떠나 모스크바에서 환승해 서울로 가는 승객들이다. 서울행 항공기는 만석이다. 여기서 서울까지는 8시간 걸리니 질끈 눈 감고 참으면 집이다.

23일차 (서울 도착)

힘들었던 여행

모스크바 출발 뒤 5시간이 지나니 이르쿠츠크 상공이다. 험준한 산악이 끝나는 지점에 지구상에서 가장 큰 담수호, 거대한 바이칼 호수가 맞닿아 있다. 앞으로 서울까지 3시간 15분…. 1450마일 남긴 지점이다. 발해만을 지나자 항공기는 착륙 준비에 들어간다.

▲헬싱키 공항 풍경. 한국인을 비롯해 일본인, 중국인 등 아시아 관광객은 물론 세계 각지의 여행객이 오간다. 사진 = 김현주

23일간의 여정이 끝나간다. 쉽게 생각하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솔직히 이번 여행은 힘들었다. 예측할 수 없는 여름 날씨를 달래가며, 또한 여름 휴가철이라서 가는 곳마다 인파에 뒤섞여 다닌 여행이었다. 그래도 당초 계획했던 그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기쁘다. 기상 이변도, 화산 폭발도, 교통 대란도 없이 부드럽게 이어진 여정이 고마울 뿐이다.

이번 여행이 힘들었던 데는 생각해 보니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유럽의 여러 다른 나라들을 연이어 지나다보니 매번 언어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언어뿐 아니라 문자까지 다른 러시아와 불가리아의 경우가 특히 그랬다.

▲헬싱키 공항.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사진 = 김현주

그러나 언어보다 더 성가셨던 것은 매번 화폐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프랑스, 독일, 핀란드를 제외하고는 저마다 고유의 화폐를 사용하니 얼마나 헷갈리는가? 동전의 액면 단위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리고, 환율 계산도 매번 달라져야 하니 솔로 여행자의 애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의 보통 여행 방식이기는 하지만 이동이 많았던 것도 또 하나의 이유로 보탠다. 모든 교통수단을 다 활용한 여행이었다.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 버스 여행 14시간, 베를린에서 폴란드 가는 심야 버스에 마지막 남은 맨 뒤 한 자리,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돌아다닌 베를린, 몸을 겨우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좁았던 런던의 호텔방…. 이런 것들이 새삼 생각난다.

▲날씨도 여행의 변수였다. 베를린에서는 비 오는 거리를 하루 종일 걸어 다니기도 했다. 사진 = 김현주

가깝고도 먼 유럽

모든 여행이 끝났다. 많은 크고 작은 도시를 오로지 대중교통과 두 다리로 누볐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현지인과 부딪치며 하는 것이 옳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다니다 보니 많은 유럽 도시의 동서남북을 머릿속 지도에 입력할 수 있었다. 평소 이상하게도 멀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유럽이 가슴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래도 아직 유럽은 가깝고도 먼 곳이라는 생각은 떠나지 않는다.

▲여행할 때 언어보다 어려웠던 건 매번 달라지는 화폐와 환율이었다. 런던 거리에서 마주한 환율 표. 사진 = 김현주

EU와 유럽

종교, 인종, 언어, 역사적 경험이 서로 다르면서 EU라는 단일 체제에 묶인 EU의 현재와 미래…. 많은 것들이 의문과 고민으로 남는다. 물가는 비싸고 이민자는 넘쳐나고 인구는 고령화하고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없는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한 채 과거의 영광만을 머금고 사는 것 같은 모습에서 유럽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본다.

런던발 헬싱키행 항공기에서 읽은 파이낸셜 타임즈 기사가 생각난다. PIGS(포르투갈-Portugal, 이탈리아-Italy, 그리스-Greece, 스페인-Spain)에 이어 벨기에가 추가됐다며 유럽 국가들의 재정 적자를 개탄하는 내용이다. 훤칠한 사람들, 기품 있는 사람들이 사는 EU가 어떻게 하면 컴백할 수 있을까? 지난 겨울과 이번 여름 여행을 통해 유럽을 거의 다 돌아봤지만 나로서는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우리나라만이라도 유럽 국가들이 걷는 길을 되풀이하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뿐이다.

▲이번 동유럽-서유럽 여행엔 다양한 교통편을 오갔다. 비행기는 물론, 버스와 열차도 이용했고 두 발로도 걸어 다녔다. 사진은 루마니아와 소피아를 오갈 때 이용한 열차에서 찍은 풍경. 사진 = 김현주

다시 대륙의 동쪽 끝에 서다

상념에 잠긴 사이 에어로플로트 항공기는 마침 한반도 서해안에 불어 닥친 태풍 구름을 뚫고 사뿐히 인천공항에 내려 승객들의 박수갈채를 받는다. 다시 대륙의 동쪽 끝에 돌아왔다. 더는 갈 곳이 없다. 

집으로 가는 공항버스가 올림픽 대로를 지난다. 대륙의 동쪽 끝에 수천 년 살아온 사람들이 역사의 질곡을 딛고 건설한 도시가 새삼 소중하게 다가온다. 유럽 전역의 도시를 뒤덮은 우리 기업들의 전광판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 부족한 아주 중요한 무엇이 남아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세계 각국에서 한국 기업 전광판을 확인하며 다시금 우리나라의 높아진 위상을 느꼈다. 사진은 프라하 거리를 채운 한국 기업의 전광판. 사진 = 김현주

프랑스의 콧대, 영국의 자존심 이런 것들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런던을 떠난 며칠 후 런던 북부 저소득층 지역인 해크니(Hackney)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중요한 뉴스로 등장했고, 시사 주간지 타임 커버스토리는 이것을 ‘유럽 몰락의 조짐’이라고 진단한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 또래의 핀란드 백인 청년이 헬싱키 공항에서 화장실을 청소하던 모습이 머릿속을 맴돈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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