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왕진오 기자) 알록달록한 색이 칠해진 커다란 책이 전시장 천장에 매달려 있다. 바로 옆 오래된 타자기에는 조그마한 사람들이 줄을 지어 오르는 장면이 미니어처를 보는 것 같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서 만날 수 있는 거인이 사는 브로딩낵과 소인들이 사는 릴리프트 등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은 모습이 관객의 눈길을 모은다.
이들은 유선태(58) 작가가 상상속이나 현실의 모습을 자신만의 시점으로 해석해 화면과 오브제로 표현한 풍경화의 모습이다. 그가 '말과 글 - 풍경 속에 풍경'이란 타이틀로 10월 30일∼11월 29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4년 만에 개인전을 갖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오브제와 오브제가 결합되고 그림이 오브제로 들어간 상황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작가는 실제 생활에서 사용된 책이나 액자, 타자기, 시계 그리고 에디슨의 축음기 등을 오브제로 사용했다.
유선태 작가는 "저의 모든 그림의 원천이자 시작은 오브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대적인 이미지를 그려서 또 다른 자연 풍경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고 설명한다.
그의 작업에는 동양과 서양, 자연과 건축, 외부와 내부, 순간과 영원, 말과 글, 그리고 오브제와 자연물 등의 이원적 개념들이 동시에 등장한다. 또한 작가의 자화상이기도 한 자전거 타는 사람이 화면 곳곳에 표현된다.
유 작가는 "작품 속 조그만 사람은 저를 모티브로 한 자화상입니다. 작가적 상상력이 발휘된 것이죠. 어린 시절 구입한 자전거를 타고 고향 여기저기를 다니며 눈에 담았던 풍경이 작품으로 그려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림은 지울 수 있고 언제든 새롭게 만들 수 있어서 재밌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최신 이동 장치였던 자전거가 지금은 구시대의 산물로 여겨지는 것도 자연 풍경이 변화하는 이치와 같다고 봅니다"고 설명했다.
붓을 잡은 지 어느덧 30년이 된 작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큰 바위를 짊어진 사람, 중력을 거슬러 공중에 부유하기 위해 날갯짓을 하는 오브제, 끊임없어 페달을 밟아 나아가야만 하는 자전거 타는 사람의 뒷모습은 작가 삶의 대한 은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