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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두 골프 세상만사] “그 거시기를 딸인 제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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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55호 김영두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2015.11.05 09:08:09

김영두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내가 어린 날, 아버지는 공직에 있었는데 임지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었다. 어느 해인가 여름 방학을 맞아 동생과 아버지가 있는 관사에 내려갔다. 뒷마당에는 텃밭이 있고 개장, 닭장도 있었다. 텃밭에는 토마토며 가지 등이 자라고 있었고, 높고 튼튼한 울타리를 친 개장 안에는 황소만한 셰퍼드도 있었다.

그리고 닭장 안에는 달걀이 제법 많이 땅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닭은 없었고 늘 아버지가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애초에 닭장이었는데 아버지가 작대기로 공을 쳐서 과녁에 맞추는 놀이를 하는 공간으로 바꿨다는 의심을 끝까지 버리지 못할 만큼 그 공간은 닭장과 닮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 쪽 면은 열려 있었고, 열린 면과 마주보는 면엔 동심원의 과녁을 그린 흰 광목천이 그물에 걸려 있다는 점이었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 흰 달걀로, 아니 달걀처럼 생긴 흰 공으로 과녁 맞추기를 했다. 공이 과녁에 정통으로 맞으면 광목천이 찢어질 듯이 펄럭였다. 나는 깃발이 몸부림치며 펄럭이는 소리에 아침잠에서 깨어났다.

아버지가 출근한 뒤, 동생과 나는 공 바구니를 집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방바닥에 펼쳐놓은 담요 위에서 “거시기”로 공을 치며 혹은 굴리며 놀았다. 나는 그날까지 골프가 무엇인지 몰랐다. 골프장이나 골프채를 본 적도 없었고, 라운드를 하려면 그런 그물망 안에서 공을 바르고 멀리 날려 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은 더욱 몰랐다. 그래서 이름이 무엇인지 몰랐던 퍼터를 거시기라고 명명했다.

며칠 전 어머니가 아버지 유품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며 나를 불렀다. 아버지는 올 봄에 93세의 일기로 영면했다. 나는 형제가 다섯이나 되고 더욱이 출가한 딸이므로 아버지의 유품에 대해 탐을 낼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도 연세가 90세라, 건강에 나쁜 소식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해 달려갔다. 어머니는 아주 온화한 미소의 평화로운 표정으로 고요하게 앉아 있었다.

퍼렇게 녹슨 아버지 퍼터에 담긴 추억

“저기 구석에 세워진 거시기를 이리 가져오너라.” 친정집 안방의 장롱과 벽 사이에는 혹시 도둑이나 강도가 들 경우를 대비해 야구 방망이와 지팡이 비슷한 것이 숨겨져 있었는데, 그것을 지칭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장롱과 벽 틈새에서 손에 잡히는 물건을 꺼냈다. 희한하게도 그것은 퍼터였다. 퍼터는 너무도 늙고 낡아서 고무 재질의 그립은 삭아서 헤지고, 금속헤드는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다.

“이거 아버지가 쓰시던 퍼터 아니에요?” 어머니는 이렇다 저렇다 말씀을 아끼더니, 그대로 엎드려서 퍼터 헤드 쪽을 장롱 밑으로 밀어 넣어 휘저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오리의 목처럼 생긴 퍼터의 헤드에 장롱 밑의 온갖 잡동사니, 한 뭉치의 먼지와 머리카락과 동전 몇 개, 세탁하려고 두 짝의 목을 잡아 뒤집어 뭉쳐 놓은 양말 등이 걸려 나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 양말에서 먼지를 떼어내고 목을 뒤집었다. 양말짝 안에서 나온 것은 어머니가 평소 아끼던, 그리고 내가 탐내던 루비 반지 한 쌍이었다. 

“이걸 널 주려고 이 밑에 숨겨 놓았다. 그리고 아버지 유품도 정리를 하려는데…. 특별히 네가 가지고 싶은 것은 없니?” 나는 아버지가 수집하던 파이프나, 쓰시던 만년필을 비롯한 문방용품 등을, 내게까지 차례가 온다면 챙기리라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거요. 그 거시기를 절 주세요.” 나는 왜 그립도 너덜거리고 퍼렇게 녹이 슨, 퍼터의 용도로는 절대 사용불능인 거시기가 가지고 싶은 것일까.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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