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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 - 권경엽] 아름다운 몸과 불멸의 멜랑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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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59호 이선영(미술평론)⁄ 2015.12.03 08:55:25

▲권경엽 작가.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이선영(미술평론))

(다음은 이선영 평론가의 권경엽 작가에 대한 평론 글의 축약본입니다.)

권경엽의 그림에는 잡티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의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진주빛 광채까지 감도는 자체발광의 몸은 생물학적으로 전성기에 놓인 이들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작품 속 인물들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유령 같은 존재다. 머리칼과 피부색은 하얗다. 하지만 눈이나 입술 같은 감각기관은 충혈된 실핏줄이 그대로 묘사될 만큼 사실적이라는 점에서, 색이 빠져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도자기 빛 몸은 어디서 왔나

작품의 주조색은 화이트다. 화이트는 청결하고 순수해 보이지만, 새로운 시작이기보다는 지난 시간의 흔적에 가깝다. 작가의 관찰에 의하면, 나이가 들수록 얼굴과 몸이 하예지고 검은 눈동자도 엷은 회색으로 변한다. 인물은 부드럽게 빛나는 대리석 조각이나 백자 인형 같은 분위기가 있다. 진주나 백자가 그러하듯, 아름답긴 하지만 상처의 결과물이며 깨지기도 쉽다. 거기에는 활짝 핀 꽃이 시들어갈 기미가 보일 때의 멜랑콜리가 있다. 

▲권경엽, ‘스프링 바이브(Spring Vibe)’, 캔버스에 오일, 45.5 x 53cm, 2015.

색 바랜 그들은 상처받은 존재임이 확실한 것이다. 권경엽의 인물화는 순진무구의 천사와 상처받은 청춘을 중첩시킨다. 그들은 몸, 또는 마음의 병을 심하게 앓고 있는 환자다. 

환자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허공을 응시하며 무위의 시간, 작가 말대로 그저 ‘시간을 시간이게’ 내버려 둔다. 그들이 만약에 그 시간에 무언가를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일일 것이다. 

작가의 참조 대상은 바로 자신

작가의 특징적 도상의 기원은 미술을 만나기 이전부터 몰입했던 대중문화다. 작가는 초등학교 시절에 반 친구들을 위해 손수 각본을 쓰고, 가녀린 여자 주인공과 악녀, 또는 코믹한 인물 등이 나오는 만화를 밤새도록 그려서 책으로 만들어 돌려 보곤 했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 미술을 전공한 후에도 그 잔재가 남아 전통적인 의미의 인물상과는 거리가 있는 작업을 하게 된다. 

▲권경엽, ‘스트럼(Strum)’, 캔버스에 오일, 45.5 x 53cm, 2015.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그 누구도 아니고 일종의 원형 같은 인물이지만, 참조 대상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 또는 분신이 아닐까. 2007년의 작품 ‘Charon’ 속의 양성적 인물은 자신을 그리기 위해 거울을 비스듬히 내려다본다. 

작가에게는 사춘기 때 실제로 치명적인 사고를 당한 그 육체적, 심리적 흔적이 선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피 흘리는 직접적 현실보다는 환상으로 재탄생한다. 모월 모일에 있었던 어떤 구체적 사건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어가는 과정을 직시하면 퇴화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떨칠 수 없다. 인간의 삶은 불완전함, 또는 죽음과 함께 한다. 기억되고 망각되는 것이 바로 젊음이다. 

▲권경엽, ‘레드문’, 캔버스에 오일, 60.6 x 72.7, 2015.

망각은 겨울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작가는 우리 기억이 인체에 저장된다고 본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퇴색된다. 그러나 더 아름답게 기억된다. 또는 더 아프게 기억된다. 

시간은 고정, 공간은 분리된 우수

권경엽의 작품을 지배하는 우수에 찬 느낌은 시간적으로는 고정, 공간적으로는 분리로부터 야기된다. 시간은 사기질 피부를 가진 그들처럼 흘러가지 않고 어느 시점에 고정되어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해 보이는 작품 속 인물들은 초시간적인 본질의 세계 속에서 영원을 응시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어떤 시간을 되찾고자 한다. 상실된 시간 속 인물은 우울하다.

권경엽의 작품을 온통 물들이는 멜랑콜리는 육체적, 정신적 상처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상실과 죽음의 현실에 대한 부인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광물질적인 단단함으로 조련된다. 그러나 혈색이 도는 눈과 입은 상처처럼 외부를 향해 벌어져 있다. 이 구멍들은 자기 방어적 경계선을 무너뜨릴 수 있다. 

미성숙한, 또는 훼손된 몸을 이리저리 감은 붕대는 짜여지고 있는 텍스트로서의 주체에 내재된 파괴와 결여를 감추면서 드러낸다. 대개 인물은 텅 빈 바탕에 놓이는데, 이는 이 인물의 고독을 더욱 크게 메아리치게 한다. 

▲권경엽, ‘멜랑콜리아(Melancholia)’, 캔버스에 오일, 130.3 x 162.2cm, 2014.

탈색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굳이 욕망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죽음에 대한 욕망이다. 권경엽의 작품에는 멜랑콜리로 향하는 정신의 성향이 존재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작가는 존재의 무의미의 증인이 되고 인간관계와 존재들의 부조리를 드러낸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히스테리의 기원은 더 이상 외상이 아니라, 허구 즉 환상(fantasm)이라는 것이다. 권경엽의 작품 역시 멜랑콜리나 히스테리 같은 정신병적 증상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내는 환상이 중요하다. 

침묵 속에 존재하는 인물의 불안

욕망과 향락이 환상의 범주 속에 기입될 때 갖게 되는 것은 불안이다. 숨 막힐 듯한 침묵 속에 존재하는 인물에는 환상화된 불안이 농후하다. 그리고 그것은 체모나 모공 하나 보이지 않는 무기질적인 피부와 대조되는, 입술과 눈 같은 민감한 지각 기관에 깊이 새겨진다. 

심적 외상은 궁극적으로 사랑이 결핍되어 생기지만, 결핍은 근원적으로 메울 수 없다. 그것이 권경엽의 작품 속에 깊이 아로새겨진, 아물 수 없는 상처의 정체일 것이다. 


권경엽 작가노트

“내가 바라보는 나. 타인이 바라보는 나. 끝없이 마주보는 거울로 된 방이 있다. …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듯이 미술 작품은 어떤 식으로든 작가의 내면을 반영하며 자아가 투영된 심리적 표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나는 내 그림을 통해서 나를 바라보기도 하지만, 작품의 의미는 다양한 감정 상태에 따라 계속해서 변한다. 내 그림 속의 인물은 언제나 침묵하는 멜랑콜리아(Melancholia)이며, 그 침묵 속에는 여러 비밀들이 숨겨져 있다. …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미’의 세계를 향한 승화의 길을 제안하고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듯 멜랑콜리아를 비추고 있는 검은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면 그것이 비추는 의식의 저편에 있는 금단의 영역, 나르시시스트의 샘을 재현하고 ‘미’로 승화시키는 것이 영원성에 이르는 것이리라.

권경엽은 세종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내외에서 6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다양한 국제기획 초대전, 해외 비엔날레와 아트페어에 출품하고 있다. 현재 가나아트 장흥아틀리에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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