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인도차이나] 인도도 차이나도 아니어 슬픈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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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8일차(라오스 루앙프라방→비엔티안)
열악한 라오스 도로 사정
아침 9시 버스를 타고 비엔티안을 향해 출발한다(요금 13만 낍, 한화 약 2만 원). 출발은 정시에 하더라도 몇 시간 걸릴지는 도착해봐야 아는 것이 이곳의 시간 법칙이다. 예측할 수 없는 도로 상황 때문이다. 그래도 전 구간이 포장된 비엔티안-루앙프라방 구간은 라오스에서는 가장 양호한 도로다. 오지 노선 비포장도로는 장마철이면 차량들이 고전을 면치 못한다. 승객들이 모두 내려 버스를 밀어야 하는 일이 다반사다. 남한의 2.5배, 한반도의 1.1배로 국토가 방대하니 구석구석 도로를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루앙프라방-비엔티안 국도는 심한 굴곡은 말할 것도 없고 군데군데 패이고 잘려 나간 곳이 많아 차량 진행을 더디게 한다. 중장비가 부족해 인력으로 도로를 복구 중인 곳도 많다. 비엔티안 같은 도시에는 최고급 수입 승용차 딜러가 늘어섰지만 농촌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어쩌다가 인도차이나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 됐을까?
라오스는 인구 650만 명에 1인당 소득 940달러로, 캄보디아(인구 1400만 명에 1인당 소득 700달러)나 미얀마(인구 6000만 명에 1인당 소득 500달러)보다는 낫다지만, 가난에 찌든 농촌을 보니 가슴이 저민다.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가 인도차이나에 왔더라면 ‘슬픈 열대’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을 것 같다.
▲서민의 소박한 삶을 느끼게 해주는 거리 장터. 사진 = 김현주
지루하지 않은 11시간 버스 여행
버스는 안 달리는 것인지 못 달리는 것인지 언덕길을 숨 가쁘게 오른다. 어느 세월에 400km 먼 길을 간단 말인가? 버스는 높디높은 고개를 수없이 오르내리며 산간 마을들을 지난다. 첩첩산중 아름다운 길이기에 지루하지는 않다. 중국 계림 산수화에 등장하는 것 같은 기묘한 절벽과 산봉우리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맨 앞자리 표를 달라고 하길 잘했다. 열 시간 넘게 걸리는 긴 버스 여행이지만, 항공기 대신 버스를 선택한 것에 대한 보상은 충분하고도 넘친다.
관광 인프라가 부족해 아직 한국이나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본격적으로 진출하지 않은 라오스에서는 서양인 여행자들이 활개를 치고 다닌다. 특히 서양인 중에서도 이 나라에 특별한 향수를 가진 프랑스인의 방문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당연하다. 가난하지만 찬란했던 과거가 있어 볼 것이 많으면서도 원시적인 삶을 간직한 곳이기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바로 그 원시성과 낙후성이 잠깐 머물다 떠날 관광객에게는 매력 포인트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그로 인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지 않은가?
▲비엔티안에서 루앙프라방으로 향하는 산악 도로. 라오스에서 가장 양호한 도로다. 오지 노선은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다. 사진 = 김현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모순
비엔티안과 루앙프라방 두 곳이 모두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됐다는 점도 여행자들에게는 매력일 것이다. 그런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제도에 문제가 없지 않다. 현재 전 세계 745곳에 분포됐으니 남발한 측면도 있다. 문화유산 보존 대신 상업화만 촉진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해본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불국사와 석굴암,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창덕궁, 수원 화성, 경주 역사유적지, 고인돌 유적,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 조선왕조 왕릉, 남한산성, 그리고 백제유적지 이렇게 무려 11곳이 있다. 울퉁불퉁한 도로는 비엔티안 거의 다 들어올 때까지 계속된다. 도로에 대한 투자 없이는 근대화도 없다는 것을 이 나라 정부가 모를 리 없을 텐데 말이다.
라오스 국영 TV
드디어 저녁 8시 버스는 비엔티안에 닿았다. 루앙프라방 갈 때와 마찬가지로 11시간 걸렸다. 애매한 위치에 있는 호텔을 겨우 찾아 들어오니 의외로 최신식 훌륭한 시설이다. TV를 켜니 마침 라오스 국영 TV의 뉴스 시간이다. 오늘 내무부 직원 채용 시험이 진행됐다는 것이 오늘 뉴스 아이템 중 하나다.
라오스어 본 방송에 이어 영어와 프랑스어로 각각 뉴스를 요약해 전달해주는 것이 특이하다. 작은 나라 백성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은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비어라오를 들이키며 라오스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한다.
9일차(비엔티안→쿠알라룸푸르 환승→서울)
중국과 일본의 격돌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먼 길을 앞두고 있다. 공항에 도착해 오전 9시 45분 쿠알라룸푸르행 에어아시아 항공기를 기다린다. 비엔티안 와타이 공항 국제선 청사는 일본 정부의 원조로 1998년 건설됐다. 그 옆 국내선 청사는 중국 건설회사가 신축 중이다. 메콩강의 전략적 가치를 노린 중국이 자본력을 앞세워 인도양까지 남진(南進)해 내려가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은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공들이며 미얀마를 지나 벵골만까지 서진(西進)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조용한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태국 아유타야 유적은 웅장했던 과거 영화를 상상하게끔 했다. 사진은 시암 왕궁터 전경. 사진 = 김현주
국제공항이라고 해봐야 달랑 게이트 두 개고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중국 쿤밍,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인근 국가로 가는 노선 몇 개가 전부다(지금은 한국 인천공항 직항 노선이 여러 편 개설돼 있다). 공항 대기실 TV에서는 슈퍼주니어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온다. 동남아 오지에도 한류는 예외 없이 들어와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저가항공
이륙 후 2시간 40분이 지나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해 서울행 항공기로 환승한다. 항공기는 완전히 만석이다. 아시아 최대 저가항공사 에어아시아의 쿠알라룸푸르-서울 노선은 개설한지 2년 남짓 만에 황금 노선이 됐다. 당초 귀국편은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활용하려 했으나 동남아 편도 2만 마일 소진과 함께 별도 부담해야 하는 세금과 유류 할증료가 에어아시아의 프로모션 요금과 같으니 굳이 대한항공을 이용할 이유가 없었다.
▲최고급 수입 승용차 딜러가 늘어선 비엔티안과 달리, 인도차이나의 농촌은 열악한 상황이다. 허름한 집들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좌석별 개인 모니터가 없다는 점, 기내 식사와 음료, 담요 등은 각자 별도 구입해야 한다는 점, 기내 휴대 화물 부피와 무게에 제한이 있다는 점, 기내 좌석 앞뒤와 좌우 공간이 다소 좁아 장거리 여행에 불편하다는 점을 제외하고 일단 하늘에 오르면 똑같다. 두 지점을 이동하는 데 있어서 저가항공과 메이저 항공은 소요시간이 같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이륙하자 야자나무인지 고무나무인지 구분이 잘 안가는 광활한 농장이 발아래 잠시 펼쳐지더니 항공기는 말레이반도를 가로 질러 남중국해에 접어든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세 나라
늘 하늘 위로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인도차이나의 재발견, 메콩강의 재발견이라고 해야 하나? 제국주의 팽창 시절 서구인에게 유린당하면서 근대화의 기회를 놓쳤고,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다시 한 번 국토가 황폐해져 세계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으로 전락해 버린 곳이다. 이름 그대로 인도차이나…. 인도도 아니고 차이나도 아닌, 인도와 차이나 사이에 낀 세 나라, 즉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를 일컫는 말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 조용한 전쟁이 펼쳐지고 있는 메콩강. 중국은 자본력을 앞세워 인도양까지 남진(南進), 일본은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공들이며 미얀마를 지나 벵골만까지 서진(西進) 중이다. 사진 = 김현주
그랬으면서도 또 다시 서구인이 흘리고 가는 관광 달러에 의존해 삶을 꾸려야 하는 인도차이나를 둘러 본 이번 여행이 결코 마음 편하진 않았다. 크메르 제국 영화의 흔적을 봤고 동서 교역의 교차로인 시암 아유타야 왕조의 흔적을 봤지만, 가난도 함께 봤기 때문이다.
가슴 저민 인도차이나 여행
동그란 선한 눈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땅을 떠난다. 자본주의를 아직 모르기에 순수함이 남아 있어서 더욱 애잔하다. 선한 눈망울이 조금은 사나워지더라도 인도차이나는 좀 더 잘 살아야 한다. 때로는 자기들끼리 다투고, 또 때로는 외세에 짓밟힌 역사가 전부다. 정의로운 세계 질서가 지구 곳곳에 펼쳐지기를 바란다.
▲인도차이나의 아픈 역사의 현장도 목격했다. 사진은 1957년 정권을 장악한 크메르 루주의 폴포트 정권의 만행을 증언하는 투올슬랭 학살박물관. 투신자살 방지를 위해 철망이 촘촘하게 쳐져 있다. 사진 = 김현주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항공기는 북동쪽으로 6시간을 날아 아직 추위가 남아 있는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었던 인도차이나를 육로로 횡단, 종단한 성취감은 크지만 허전함 또한 동시에 느껴야만 했던 묘한 여행이었다. 아시아의 슬픈 기억을 안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