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상 골프 세상만사] 플레이 강국에서 골프장 강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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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덕상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장) 나의 골프 역사는 북아일랜드에서 시작됐다. 1980년대 D전자의 영국 공장과 거래를 시작하면서 벨파스트를 정기적으로 방문했고, 89년 여름 현지에서 약속이 하루 연기되는 바람에 런던과 벨파스트 지점 동료들과 시간 때우기로 9홀 라운드를 했다. 당시 골프를 해본 적이 없던 나는 갤러리로 골프장을 처음 밟았고, 동료들의 강권에 못 이겨 귀국하자마자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때 나를 골프장으로 데려간 벨파스트 지사장이 3년 후 한국에 출장 왔을 때 그와 라운드 하다가 첫 번째 홀인원을 기록했다.
그리고 매년 1~2차례 북아일랜드를 방문하면서 주말마다 여러 골프장에서 플레이를 했는데, 매년 빠지지 않고 찾아간 곳이 바로 로열 포트러시(Royal Portrush)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자이언트 코즈웨이(Giant Causeway) 주상절리 부근의 120년 된 링크(Links) 코스다. 1888년 개장했고, 1895년 아일랜드에서는 처음으로 프로 시합을 개최했으며, 브리티시 여자 오픈도 열렸다. 내가 태어난 1951년 7월 브리티시 오픈이 이곳에서 열려 내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로열 포트러시 클럽은 인근에 400여 년 전 세운 최초의 위스키 부시밀(Bushmill) 공장이 있고, 최근 세계 랭킹 1위를 넘나드는 로리 맥길로이가 16세 때 61타를 쳤다는 기록으로도 유명하다. 해변가 구릉지에 깃대만 꼽은 것 같이 황량하게 보이는 링크 코스라서, 처음에는 ‘골프장이 뭐 이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연적인 그 모습이 때로는 천사, 또 때로는 악마의 두 얼굴로 한층 더 놀랍고도 재미있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아놀드 파머가 1995년 이곳에서 열린 시니어 오픈에 참석하고 ‘생애 베스트 파이브 코스’라고 평했으며, 나 역시 평생의 베스트 파이브로 꼽는다. 그리고 이 골프장에서 플레이 하면서 인생 공부도 많이 했다.
해외 관광객에 “골프치러 한국 다시 오겠냐” 물으면 “노”.
구조적 문제로 골프 관광 경쟁력 확보 못해 안타까워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홀은 14번 파 3홀로 재앙(Calamity)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이 홀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통상 150 야드에서 플레이를 하는데, 순풍이 불면 8번 아이언으로도 가볍게 온 그린 되지만, 맞바람이 불면 드라이버를 쳐도 그린 앞까지 푹 꺼진 절벽 아래 바닷물로 볼이 떨어진다. 역풍에는 떠 있는 볼이 뒤로 밀려 떨어지는 듯한 장면을 가끔 본다. 짧은 파3홀이라고 우습게 덤볐다가는 큰 코 다치는 홀이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이 클럽의 헤드 프로로 있는 다이 스티븐슨이 ‘포트러시에서 가장 유명한 홀’로 명명했다.
96년 11월 난이도가 높은 12번과 13번 홀에서 연속 파를 잡고 기세등등했던 나는 이 홀에서 더블 보기를 하며 허물어지기도 했다. 핸디캡 16이었던 친구 피터가 90대 스코어만 기록해도 싱글벙글 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30개국 200여 골프장에서 라운드 했다. 한 곳이라도 안 가본 곳을 찾고 싶은 본능적 욕구도 있지만, 여러 차례 갔어도 또 찾아가고 싶은 골프장이 있다. 그 골프장 때문에 그 나라 그 지역을 다시 가보고 싶어 한다면, 이것이 진정한 골프 국제 관광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100대 코스에 뽑혔다고 좋아하고 홍보하는 우리나라 골프장 중, 과연 그 골프장 때문에 한국에 다시 오고, 그 골프장 때문에 그 지방을 방문하겠다는 곳이 있을까?
몇 년 전에 지구상 50여 개국 골프장을 섭렵했다는 싱가포르 골프광 3명으로부터 부탁받고, 프로그램을 짜서 특징 있는 명문 골프장 세 곳에서 라운드 하게 해준 적이 있다. 그들이 무척 고마워하면서 떠나기 전 내게 식사를 샀다. 그러나 다시 오겠냐는 질문에 그들은 “솔직히 한 번으로 족하다”고 답했다. 그 비싼 비용을 들여서 다시 올 정도의 매력은 없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프레지던츠 컵을 주최했고, LPGA를 쥐락펴락하는 막강 한국 골프지만, 아직도 그 관광 경쟁력 확보는 요원하기만 하다. 사실은 그 해결 방안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구조적인 문제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답답하기만 하다. 이제는 플레이만 잘하는 골프 강국에서, 골프 문화 강국, 골프 관광 강국으로 발돋움하도록 노력할 때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덕상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장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