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벽을 뚫는 남자’ 고창석-이지훈, 관객마음 뚫었네
▲2012년부터 ‘벽을 뚫는 남자’ 총 세 시즌에 출연해온 고창석은 이번 공연에서도 특유의 존재감을 발휘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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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금영 기자)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유연석이 뜬다. 그만큼 유연석의 출연은 이 공연의 큰 이슈였다. 첫 도전 뮤지컬이기에 그랬고, 또한 여심을 뒤흔드는 대표 청춘 스타였기 때문이다. 제작사는 유연석의 출연을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프레스콜에서 보여준 의외의 가창력 덕분에 언론 매체가 이를 다루기 바빴다. 취재 차 방문하고 싶다고 하자 “유연석을 만나려는 거죠?”라는 질문이 자동으로 나올 정도다.
하지만 이 공연을 빛내는 이가 유연석만은 아니다. 그 중심엔 이지훈과 고창석이 있다. ‘내 마음의 풍금’ ‘에비타’ ‘삼총사’ ‘쓰릴 미’ ‘엘리자벳’ 등으로 벌써 10년차 뮤지컬 배우로 성장한 이지훈, 그리고 2012년 ‘벽을 뚫는 남자’ 이래로 올해까지 세 시즌을 함께 해온 고창석은, 탄탄하고 안정된 연기와 가창력으로 관객의 마음을 저격 중이다. 일부러 이들의 공연 회차를 찾아 공연장을 방문했다.
‘벽을 뚫는 남자’는 프랑스 작가 마르셀 에메의 소설이 원작이다. 1996년 프랑스에서 뮤지컬화 됐다. 1940년대 파리 몽마르트를 배경으로, 평범한 우체국 직원이던 듀티율이 벽을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한국에선 2006년 초연을 시작으로 2007년, 2012년, 2013년 공연됐다.
이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성스루(sung-through) 방식이다. 대사 없이 극의 모든 내용을 노래로 풀어간다. 따라서 가창력과 지구력이 관건이다. 그 어느 하나도 작은 역할이 없다. 부장·죄수·검사 역의 임철형과 정의욱, 야채장사·매춘부 역의 김영주와 이영미, 화가 역의 강연종, 신문팔이 역의 이충주 등을 모두 공연계 베테랑 배우들이 맡았다.
고창석 또한 베테랑 배우의 중심탑답게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알코올 중독 정신과 의사 ‘듀블’, 듀티율을 체포하는 ‘경찰’, 듀티율을 얼떨결에 변호하게 되는 ‘변호사’, 듀티율이 갇힌 감옥의 ‘형무소장’까지 총 1인 4역을 소화한다. 그리고 등장할 때마다 미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일본에서 유행 중인 숙취 메이크업을 한 듯한 분장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깊고 진한 다크서클에 요상한 단발 가발까지 쓴 채로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
총 세 시즌 출연하며 여유까지 갖춘 고창석,
베테랑 배우들 사이서 존재감 잃지 않는 이지훈
성스루 뮤지컬은 노래가 가장 큰 강점이지만 자칫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노래의 선율이 아름답지만, 2시간이 이상 계속 노래만 이어지면 지루할 수 있기 때문. 그럴 때마다 등장해 관객의 웃음과 호응을 유도하는 이가 고창석이다. 이야기의 흐름을 해치는 뜬금없는 웃음코드가 아니라, 연륜의 연기력으로 불어넣는 활력이다. 2012년 첫 출연 때부터 그의 존재감이 두드러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젠 여유까지 갖춘 모습이다. 고창석은 “이 공연만이 가진 아기자기한, 소탈한 느낌이 좋았다. 또한 관객과 눈을 마주치며 호흡하는 과정이 좋아 계속 출연하고 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이지훈(왼쪽)은 극 중 소심하고 찌질한 모습에서 벽을 뚫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진 = 연합뉴스
이지훈은 베테랑 배우들 사이에서 절대로 존재감이 흐려져선 안 되는 듀티율을 명확히 보여준다. 초반엔 안경 쓰고 덥수룩한 수염에 늘 구부정한, 자신감 없는 모습이다. 그러다가 점차 말끔해지고, 사랑에 빠지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1막에서는 이지훈이 아닌 듀티율을 보여주려고 수더분하고 내성적이어야 한다. 계속 어깨를 움츠리고 있어 공연이 끝나면 몸이 아프기도 했다”며 “그러나 2막에선 특별한 능력을 얻고 세상에 눈을 뜨며 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신경 썼다. 하루하루 공연을 하며 계속 듀티율의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캐릭터 연구 과정을 밝혔다.
이지훈은 90년대 발라드 가수로 활동할 당시 꽃미남, 왕자 이미지가 강해 뮤지컬에서도 멋스러운 역할을 많이 맡았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초반 찌질하고 자신감 없는 듀티율로 분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뮤지컬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이다. 데뷔 19년차 관록의 가수로서 성스루도 무리 없이 소화한다. 전체 49곡 중 듀티율의 넘버가 30개에 가까운데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고 가사 전달도 명확하다.
실력파 배우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변화해온 공연을 지켜보는 것 또한 관람 포인트다. 일부 장면과 대사를 보완해 캐릭터에 밀도감을 더했다. 경찰이 타고 이동하는 소품도 두발 자전거로 변하고, 여기에 살짝 웃음 코드를 더 가미하는 등 섬세한 변화가 이뤄졌다. 아름다운 음악 선율과 조명 효과는 유지했다. 무대 양옆의 라이브 밴드 음악은 잔잔하게 흘러가며 마음을 적시고, 극 중 화가가 파스텔 톤으로 무대를 물들이는 장면을 조명으로 동화처럼 표현한다.
극 중 듀티율은 벽을 뚫는 능력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결국엔 사랑까지 얻는다. 이 공연은 동화 같은 사랑, 그리고 소소한 행복 이야기로 관객의 마음을 관통하는 매력이 있다. 여기에 고창석과 이지훈은 관객의 마음을 꿰뚫는 배우로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공연은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2016년 2월 14일까지.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