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변호사의 법 이야기] 웨딩사진 망친 스튜디오에 소송 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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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매년 연말이 되면 올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돌이켜보게 됩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도 한 해 동안 있었던 판결을 리뷰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올 한 해도 많은 판결 선고와 조정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웨딩 사진과 관련한 판결인데, 재미있는 사건이어서 TV에 방송되는 등 화제가 됐습니다. 우리는 보통 결혼을 할 때 형식적으로 갖추는 것들이 있습니다. 스튜디오 웨딩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을 합쳐서 ‘스-드-메’라고 하는데, 소위 ‘웨딩 3종 세트’입니다.
결혼 전에 신랑은 신부에 이끌려 이 스-드-메 투어를 하게 되는데,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고통이 매우 큽니다. 다 똑같아 보이는 드레스를 왜 이토록 자주 입어 보는지, 웨딩 촬영 스튜디오도 다 비슷한 것 같은데 얼마나 더 상담을 받아야 하는지 등등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신랑은 신부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겠지만,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신랑 자신이 섣불리 선택을 했다가 결과가 안 좋을 경우, 그 비난은 두고두고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사건은 웨딩 촬영을 할 스튜디오를 신랑이 인터넷을 통해 선택해 발생했습니다. 신랑은 스튜디오 홈페이지에 게시돼 있는 견본 사진의 품질을 확인한 후 일반적인 예식 사진보다 높은 가격으로 계약했습니다.
스튜디오는 홈페이지에서 ‘10년의 본식 전문 스튜디오’라고 광고하며 높은 사진 품질에 대해 홍보했습니다. 또 견본 사진을 제시하며 촬영 이후 이미지 수정과 편집 작업을 거쳐 견본과 동등한 품질의 사진으로 웨딩 앨범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스튜디오와 계약할 때 신랑은 예식 장소가 서울이 아닌 부산이라고 미리 밝혔고, 스튜디오 측은 출장 촬영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랑은 서울 예식 때와 동일한 사진사와 장비로, 동일한 품질의 촬영이 이뤄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부산에서 열린 본 예식 때 서울 스튜디오에서 사진사가 내려오는 대신, 부산에 있는 임시직 사진사가 사진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불완전 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인정
신혼여행을 다녀와 웨딩 앨범을 받고 신랑 신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앨범 속 사진을 보면 일반인이 찍은 것보다도 못했습니다. 신부나 신랑이 눈을 감고 있는 사진은 예사였고, 신랑의 어머니와 함께 등장하는 신부 어머니는 엉뚱한 곳을 쳐다보고 있는 등 사진 상태가 엉망이었습니다.
신랑은 이 사진을 도저히 가족에게 보여줄 수 없었고, 신부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됐습니다. 신랑은 수차례 스튜디오에 수정을 요구했지만, 스튜디오에서는 원본 사진과 RAW 파일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충분하게 사진을 찍어놓지 않아 수정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신랑은 웨딩 스튜디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사실 이 소송을 맡을 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일단 승소 시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금의 액수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는 소송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웨딩 스튜디오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이 간혹 발생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사진 = 연합뉴스
사실 승소해서 받을 수 있는 액수가 변호사 비용보다 적다면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원고인 신랑이 소송을 절실히 원했습니다.
1년간의 공방 끝에 재판부는 “웨딩 스튜디오는 일생의 중대사라 할 수 있는 결혼식 사진을 촬영함에 있어서 촬영할 기사의 선정이나 기사로 하여금 촬영 시에 주의할 사항을 교육해 잘못된 사진이 촬영되지 않도록 할 주의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여 촬영한 사진 중의 일부에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도록 하였으므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물론 손해배상 금액으로 인정된 액수는 촬영 실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원고인 신랑이 겪은 고통에 비해서 승소 금액은 터무니없이 적었습니다. 우리나라 손해배상법의 체계상 손해액수는 원고가 증명해야 하고, 이 사건의 경우 손해액을 증명하기에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스튜디오는 웨딩 앨범의 제작이라는 의무(채무)는 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무를 이행한 결과물이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태를 법률 용어로 ‘불완전 이행’이라고 합니다.
이런 불완전 이행이 소송에서 문제가 되면 피고 측은 항상 자신은 의무를 다했으므로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우리 판례는 이와 같은 불완전 이행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정리 = 안창현 기자)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