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그래, 조승우도 로맨티스트였지”
뮤지컬 ‘베르테르’서 애절한 사랑 연기
▲창작 뮤지컬 ‘베르테르’의 한 장면. 2002년 이후 13년 만에 베르테르로 돌아온 조승우가 열연 중이다. 사진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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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금영 기자) 영화 ‘내부자들’을 봤다. 촌스러운 파마머리의 건달로 분한 이병헌의 변신에 많은 관심이 쏠렸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병헌에 “야 이 깡패야” 하며 전혀 기죽지 않고 맞서는 검사 조승우가 인상 깊었다. 꼭 이 영화 때문이 아니더라도 ‘타짜’에서의 배짱 두둑한 고니 등 배우 조승우 하면 부드럽기보다는 강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역할로서뿐 아니라 인간 조승우 자체도 강한, 어떻게 보면 쌈닭(?) 같은 이미지도 있었다. 간담회에서 항상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답변으로 오히려 팬들이 그를 걱정했고, 그런 팬들과 논쟁도 벌일 줄 아는 그였다. 그런데 뮤지컬 ‘베르테르’에서 가슴 속 넘치는 사랑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조승우를 봤다. 그리고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조승우도 로맨티스트였지!”
‘베르테르’는 올해 15주년을 맞은 창작 뮤지컬이다. 이번 무대는 규현(슈퍼주니어)과, 다섯 시즌에 걸쳐 베르테르의 상징이 된 엄기준의 출연으로 화제 몰이를 했지만, 조승우도 만만치 않게 관심을 받았다. 2002년 이후 무려 13년 만에 ‘베르테르’로 돌아왔다. 알베르트의 약혼자 롯데를 사랑하며, 깊어만 가는 사랑에 가슴 아파 하는 베르테르로 다시 열연한다.
조승우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베르테르는 잘못 표현하면 현 시대에 스토커처럼 보일 수 있는 인물이다. 첫눈에 반한 롯데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몸이다. 하지만 롯데가 구연한 ‘자석섬’ 동화 속 부서질 걸 알면서도 매혹돼 자석섬에 이끌려 가는 배처럼 베르테르는 롯데에 끌린다.
간신히 이성을 찾고 발하임을 떠나지만, 1년 만에 그녀를 잊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다. 그런데 이미 롯데는 결혼한 상태. 여기까지겠지 싶었지만 베르테르는 유부녀인 그녀를 사랑하면서 자꾸 찾아가고, 권총까지 빌려 달라 한다. 독일 문호 괴테의 원작은 높은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이를 현 시대 무대 위에 올릴 땐 표현 방식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13년 만에 베르테르로 돌아온 조승우
안정된 연기와 가창력 단연 발군
그런데 조승우의 베르테르는 절절했다. 사랑에도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조건을 따지기 바쁜 이 시대에, 베르테르는 롯데에게 “아무 것도 바라는 게 없다”며 진실한 사랑만을 고백한다. 그 순수한 열정이 자칫하면 막장으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애달픈 사랑 이야기로 만든다.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과거 영화 ‘말아톤’에서 달리기에 대한 열정으로 보여준 살인미소도 볼 수 있고, ‘도마뱀’에서 20년 동안 한 여자를 사랑하는 순정파 남자로 분했던 조승우도 문득 떠오르게 한다.
▲롯데 역의 전미도(왼쪽)와 그녀를 사랑하는 베르테르 역의 조승우가 호흡을 맞추고 있다. 조승우는 사랑의 수줍음부터 절망까지 다채로운 모습을 연기한다. 사진 = CJ E&M
조승우는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항상 뮤지컬에 대한 애정으로, 시간이 될 때마다 쉬지 않고 꾸준히 무대에 올라왔다. 올해도 ‘베르테르’ 외에 ‘맨 오브 라만차’에도 출연했다. 본인은 싫어하는 눈치지만 ‘흥행 보증 수표’라는 꼬리표도 붙었다. 그런데 그의 무대를 보면 왜 그런지 알 만하다. 풍부한 성량에서 비롯되는 안정된 가창력, 이미 입증된 연기력이 관람객을 공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베르테르’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15년이라는 세월은 강점이자 약점이 될 수 있다. 장기간 공연을 끌어온 것은 그 공연 자체의 중심이 탄탄하다는 의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늘 신선하고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관객에겐 다소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에 ‘베르테르’는 공연의 기본 토대는 유지하되 약간의 연출적인 변화를 주고 있다. 2012년 유니버설 아트센터 무대와 비교해도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일단 공연이 열리는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의 무대 공간을 잘 활용했다. 앞좌석과의 높이 차이가 다른 극장보다 더 있어 관객이 무대를 내려다보는 구조인데, 실내악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모습도 볼 수 있도록 배치했다. 그리고 이 공간에도 베르테르의 사랑을 닮은 해바라기를 배치해 마치 무대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느낌을 살렸다.
마지막 권총 자살 장면도 미묘한 변화를 거쳤다. 2012년 공연에서는 베르테르가 아주 높은 곳까지 올라가 관객과의 거리를 뒀는데, 이번엔 무대 한 중앙에 위치했고 해바라기를 죽음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활용했다.
공연 커튼콜에 이르자 관객의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특히 조승우가 등장할 때 팬들의 환호성이 공연장을 울렸다. 이 대열에 함께 합류했다. 찬바람이 가뜩이나 텅 빈 가슴을 서늘하게 때리는 겨울, 조승우의 베르테르는 애절한 사랑으로 가슴 한켠을 잠시나마 따뜻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공연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2016년 1월 10일까지.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