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구 독서경영] ‘일침’, 바늘끝 같은 고전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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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전형구 전박사의 독서경영연구소 소장) ‘일침(一鍼)’은 어지럽고 혼란스러워 달아났던 마음이 사자성어로 화들짝 놀라 다시 돌아오게 하는 정문일침(頂門一鍼)의 교훈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일수록 간명한 통찰이 필요하다”면서 짧은 사자성어 네 글자를 통해 내면의 깊은 성찰과 현실에 대한 비판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모두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25편의 글을 수록했다. 제1장은 ‘마음의 표정’이란 제목으로, 마음이 고요해야 정신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저자는 이를 통해 “우리는 몸이 하도 바빠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은 아닌가?”고 자문한다.
2장은 ‘공부의 칼끝’이란 주제로 선인들의 공부 단련법과 지식 경영법을 소개한다. 특히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을 그때그때 정리해 메모하는 습관을 선인들이 즐겼다는 점에서 모든 위대함의 바탕에는 예외 없이 메모의 힘이 있음을 강조했다.
3장은 ‘진창의 탄식’으로 날로 부패하고 안일한 세태를 비판하는 일갈을 쏟아냈다. 4장 ‘통치의 묘방’은 양극화의 만성화, 불통으로 꽉 막힌 언론, 젊은이들의 분노 등 온갖 갈등이 첨예한 세상을 돌아보게 만드는 일침을 던진다.
▲ 문제는 마음이다. 마음이 여유로워 한갓지면 일거수일투족에 유유자적이 절로 밴다. 걱정할 일은 몸은 한가로운데 마음이 한가롭지 못한 상태다. 갑자기 일에서 놓여나 몸이 근질근질해지면 공연히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진다. 몸뚱이는 편한데 마음은 더없이 불편하다. 관건은 몸을 어디 두느냐가 아니라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은 “마음이 넉넉해 몸도 따라 넉넉해야지”(심족신환족/心足身還足) “몸은 한가한데 마음은 한가롭지 못한”(신한심미한/身閑心未閑) 지경이 되면 안 된다. [‘심한신왕(心閒神旺)’ 중]
▲ 고인 물은 금방 썩는다. 흘러야 썩지 않는다. 정체된 삶. 고여 있는 나날들. 어제와 오늘이 같고, 내일도 어제와 다를 바 없다. 이런 쳇바퀴의 삶에는 발전이 없다. 이제까지 아무 문제 없었으니 앞으로도 잘 되겠지. 몸이 굳어 현 상태에 안주하려는 순간, 조직은 썩기 시작한다. 흐름을 타서 결에 따라 부드럽게 흐르는 것이 중요하다. 움직이지 않고 정체될 때 바로 문제가 생긴다. 좀먹지 않으려면 움직여라. 썩지 않으려거든 흘러라. 툭 터진 생각. 변화를 읽어 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강한 것을 물리치는 힘은 부드럽게 낮추는 데서 나온다. 혀가 이를 이긴다. [‘호추불두(戶樞不蠹)’ 중]
▲ 곁가지가 많으면 큰 나무가 못 된다. 열매도 적다. 중심이 곧추서야 나무가 잘 크고 열매가 많다. 곁가지를 잘라내면 속이 썩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제 중심을 세우기 전에 오지랖만 넓히면 이룬 것이 까불다 제풀에 꺾인다. 작은 성취에 기고만장해서 안하무인이 된다. 자리를 못 가리고 말을 함부로 하다가 결실을 맺기 전에 뽑혀져 버려진다. 곁눈질 않고 중심의 힘을 키워야 큰 시련에 흔들림 없는 거목이 된다. 이리저리 두리번대기보다 뚜벅뚜벅 목표를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어, 열매를 맺고 동량재(棟梁材)가 될 노거수(老巨樹)로 발전한다. 잘생긴 나무는 중심이 제대로 선 나무다. 정신 사납게 이리저리 잔가지를 뻗치면 중심의 힘이 약해져, 농부의 손에 뽑혀 땔감이 되고 만다. [‘피지상심(披枝傷心)’ 중]
▲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못 하는 게 없다. 모두들 선망하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다재다능도 전공이 있어야지 공연히 이것저것 집적대면 마침내 큰일을 이룰 수가 없다. 두루춘풍으로 “못 하는 게 없어”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무능하다는 말과 같다. 이것저것 잘하는 팔방미인보다 한 분야를 제대로 하는 역량이 더 나은 대접을 받는 시대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했다. 한 문으로 들어가 깊이 파면 모든 문이 다 열린다. 공연히 여기저기 이 대문 저 대문 앞을 기웃대기만 해서는 끝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균형 잡힌 안목으로 핵심 역량을 길러야 한다. 깊게 파야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우물을 얻는다. 지금은 바야흐로 전문가 시대다. [‘오서오늘(鼯鼠五能)’ 중]
▲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는지라 적응이 쉽지 않다.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바꿔야 할 것과 바꿔서는 안 될 것을 자주 혼동하니 문제다. 바꿀 것은 바꾸고, 바꿔서 안 될 것은 지켜야 한다. 사람들은 반대다. 바꿀 것은 안 바꾸고, 바꾸지 말아야 할 것만 바꾼다. 바꿨으니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 하다가 엉뚱한 곳에 도착해서 고개를 기웃댄다. 덩달아 남 따라 하지 말라. 제대로 똑바로 나름대로 해야 한다. [‘북원적월(北轅適越)’ 중]
▲ 씹지 않고 삼키기만 계속 하면 결국 소화불량에 걸린다. 되새김질만 하고 있으면 편협해지기 쉽다. 소의 ‘되새김질’과 고래의 ‘한 입에 삼키기’는 서로 보완의 관계다. 책 읽기만 그렇겠는가? 주식 투자도 다를 게 없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 마냥 궁리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생각 없이 덮어놓고 저지르기만 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정독과 다독, 궁리와 결단의 줄타기가 바로 인생이다. [‘우작경탄(牛嚼鯨呑)’ 중]
▲ 세상이 온통 진흙탕이다.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하자고 씻는 물이 또 구정물이다. 씻어본들 뭣하나. 금세 더 더러워진다. 머리를 빗은들 무슨 소용인가. 이가 그대로 버글댄다. 그 꼴을 보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준엄하게 나무란다. 같은 국에 만 밥이다. 바랄 걸 바라야지. 백년하청(百年河淸)! [‘체구망욕(體垢忘浴)’ 중]
▲ 비방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말을 줄이는 것이 좋다. 그런데 사람의 감정이 어디 그런가? 말꼬리를 잡고 가지를 쳐서 끝까지 간다. 다 피를 흘려야 끝이 난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 다음 처리 과정에서 그 그릇이 드러난다. 가장 못난 소인은 제 잘못을 알고도 과감히 인정하여 정면 돌파하지 않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미봉(彌縫)으로 넘어가려는 자다. 두 손으로야 어이 하늘을 가리겠는가? [‘방유일순(謗由一脣)’ 중]
▲ 문제는 늘 “설마”와 “괜찮겠지” 사이에서 생긴다. 몇 해 전 구제역이 처음 발생했을 때 일이 그렇게 커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뒤늦게 부리가 헐도록 띠풀을 모아 봐도 비가 줄줄 새는 둥지는 손볼 수가 없다. 대책이 세워지는 것은 늘 상황이 끝난 다음이다. 문제를 알았을 땐 너무 늦었다. 공자께서는 이 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시를 지은 사람은 도리를 아는구나. 능히 나라를 다스리게 한다면 누가 감히 그를 업신여기겠는가?” [‘상두보소(桑土補巢)’ 중]
▲ 지반이 무너지거나 구들장이 꺼지면, 지붕마저 내려앉아 기왓장이 산산조각 난다. 지반이 탄탄한데 지붕이 주저앉는 경우는 드물다. 근본과 기강이 서고 백성이 제자리를 잡고 있다면 와해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바닥이 통째로 주저앉는 토붕의 경우는 손쓸 방법이 없다. 집이 무너져 가는데 문패나 바꿔 다는 미봉책(彌縫策)이나, 위기의 본질을 외면한 채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고식지계(姑息之計)로는 상황을 돌이킬 수가 없다. [‘토붕와해(土崩瓦解)’ 중]
전 박사의 핵심 메시지
‘일침’은 여타의 인문학 책처럼 죽 읽어가는 책이 아니다. 하루 한 문장을 읽고 온 종일 가슴 속에 담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지도록 노력해봐야 하는 책이다. ‘마음의 표정’ ‘공부의 칼끝’ ‘진창의 탄식’ ‘통치의 묘방’ 등 4개 장에서 100개의 사자성어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올바른 시각으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볼 시야를 넓히도록 도와준다.
결국 저자는 옛것을 빌어 지금에 대해 말한다. 이를 사자성어로 ‘차고술금(借古述今)’이라 한다. 많은 옛 성현들이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을 향해 참 지혜를 사자성어로 담아내 던졌다. 촌철살인의 일침이 읽는 이의 가슴을 찌른다.
옛 성현의 가르침은 시대를 뛰어넘고 공간을 초월해 이 시대에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사회 갈등이 팽배하고, 무엇이 잘못된 건지도 모를 어지러운 세상에서 잃어버린 나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달아난 나와 어디서 어떻게 만나야 할지를, 네 글자의 ‘정문일침(頂門一鍼 )’으로 찾아보기를 바란다.
(정리 = 안창현 기자)
전형구 전박사의 독서경영연구소 소장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