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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법 이야기] 이혼 후 6달간 재혼 금지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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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2호(송년)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2015.12.24 08:5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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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최근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내려진 두 가지 판결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여성에게 이혼 후 6개월 동안 재혼을 금지하는 현행 민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다만 이혼 후 100일까지 재혼을 금지하는 것은 합헌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의 경우 결혼 시 배우자 중 1명의 성(姓)으로 통일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는데 이 규정 역시 합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혼 후 6개월 재혼 금지 조항은 일본 메이지 시대인 1898년에 제정된 조항입니다. 여성이 바로 재혼해 아이가 태어날 경우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임신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기간을 6개월로 정한 것입니다.

우리 민법은 제정 당시 일본 민법을 많이 참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민법에도 이 조항과 똑같은 조항이 있었습니다. 1958년 제정 당시부터 있었던 아래와 같은 조항입니다.

-민법 제811조 (재혼금지기간)
여자는 혼인관계의 종료한 날로부터 6월을 경과하지 아니하면 혼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혼인관계의 종료 후 해산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 조항은 위헌으로 판단된 일본 민법의 규정과 동일한 조항이었습니다. 태어난 아이가 누구인지 판단하기 위한 취지였기 때문에 바로 출산한 경우에는 재혼이 가능하도록 단서 조항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법 제844조는 부인이 결혼 생활 도중에 임신한 경우, 남편의 자식으로 추정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 조항 역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입니다.

-민법 제844조 (부의 친생자의 추정)
① 처가 혼인 중에 포태한 자는 부의 자로 추정한다.
② 혼인성립의 날로부터 2백일 후 또는 혼인관계 종료의 날로부터 3백일 내에 출생한 자는 혼인 중에 포태한 것으로 추정한다.

사람의 임신 기간이 보통 10개월이고 일반적인 경우 조금 일찍 출산하는 경우를 고려해서 산모가 ‘혼인한 후 200일 후에 출생한 자녀’나 ‘혼인관계 종료(이혼이나 사별) 후 300일 내에 출생한 자녀’는 산모가 혼인 중에 임신한 것으로 추정하고, 산모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산모 남편의 자녀로 추정하게 됩니다.

▲일본 최고재판소 대법정은 여성이 이혼 후 6개월 동안 재혼하지 못하도록 한 일본 민법 733조가 위헌이라고 재판관 15명의 만장일치로 12월 16일 판결했다. 이번 소송 대리인을 맡은 변호사 등이 판결 직후 ‘위헌판결’이라고 쓴 가로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실 위의 두 조항이 문제되기 시작한 것은 과학의 발달 때문입니다. 1948년 출간된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를 학창 시절 한 번쯤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그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친구는 자기 아이의 외모가 자신과 너무 닮지 않았음에도 “이 아이는 나와 발가락이 닮았다”면서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아이 어머니가 누군지는 보통 명백합니다. 특별히 출생 직후에 어머니와 생이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는 출생 사실로 명백히 증명됩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자식의 경우는 어머니처럼 그렇게 명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정확히 누가 아버지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법률에 의해 정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최근 과학의 발달로 ‘유전자 검사’라는 친자 확인 방법이 도입됐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유전자 검사가 대중화됐습니다. 엄청나게 비쌌던 유전자 검사는 이제 단 몇 십만 원의 비용만으로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법원에서도 유전자 검사 방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쉽게 유전자 검사가 가능해지면서 과거 규정들이 개정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양성 평등 위해 꾸준한 개정 이뤄져

민법 제811조의 재혼금지기간 규정이 2005년 민법에서 삭제됩니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먼저 혼인관계가 종료하면 바로 재혼이 가능하도록 됐습니다. 일본 최고재판소가 아직도 100일이 지나야 재혼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현재 재혼금지기간이 아예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헌법재판소는 2015년 4월 30일 민법 제844조 제2항의 “혼인관계 종료의 날로부터 3백일 내에 출생한 자는 혼인 중에 포태한 것으로 추정한다” 부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합니다.

이 조항으로 인해 이혼 후 즉시 재혼해 새 남편의 아이를 출산한 경우 아이의 법적 지위가 불안정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습니다. 혼인관계 종료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한 자식은 전 남편의 친생자로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되기 때문입니다.

▲일본 민법 733조(붉은 테두리)가 “여성은 전혼(前婚, 먼저 한 결혼)이 해소 또는 취소된 날부터 6개월이 경과한 후가 아니면 재혼할 수 없다”고 규정한 부분. 사진 = 연합뉴스

이 추정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야 했습니다. 이 친생부인의 소는 우리 민법에서도 상당히 까다로운 소송이고, 기간 등의 제한도 있습니다. 그래서 법률상 전 남편의 아이로 등록해야 하는 경우, 출생 신고 시기를 늦춰 300일이 지난 후에 아이의 출생 신고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이 조항은 진실한 혈연관계에 부합하지 않고 당사자들이 원하지도 않는 친자관계를 강요하고 있으므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을 제한해 위헌”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유전자 검사 기술의 발달로 과학적 친자 감정이 가능하게 됐는데도 법률상 예외 없이 전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친생부인의 소를 통해서만 해결하도록 하는 것은 입법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 민법은 과거 장자 상속의 관습을 평등 상속으로 개정하는 등 지난 50여 년 동안 양성 평등의 방향으로 변화해왔습니다. 애초 일본 민법을 많이 참고해 만들었지만, 일본 민법보다 더 양성 평등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정리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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