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 ‘오케피’] 황정민의 “뮤지컬 진짜 싫어”로 더 재밌어진 뮤지컬
▲뮤지컬 ‘오케피’는 뮤지컬 장르에 대한 자체 디스를 끊임없이 한다. 유명 뮤지컬을 희화화하는가 하면, 주요 장면을 패러디하기도 한다. 사진 = 샘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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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금영 기자) “우리 배우님이 음이 너무 높아 부르기 힘들다고 한 옥타브 낮춰서 연주하라네요.” 공연 시작을 바로 몇 분 앞두고 전달된 사항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뒷목을 잡는다. “지가 배우면 다냐”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냐” “뮤지컬은 어차피 1막 끝나고 가도 된다. 2막은 별 거 없으니까” 왁자지껄한 가운데 이들은 이내 바로 연주를 소화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스타 배우님’은 계속 무대 감독을 통해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항의를 하고, 단원들은 술을 먹고, 잠이 들거나, 한 여자를 두고 엉킨 여러 남자들의 사생활 문제까지…. 난장판이 따로 없다.
뮤지컬은 무대 위 배우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하기 일쑤다. 그런데 뮤지컬 ‘오케피’(오케스트라 피트의 줄임말)는 무대 아래에서 묵묵히 공연을 이끌어가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뭔가 프로페셔널하고 장엄할 것 같지만, 들여다본 그 속내엔 신랄한 뮤지컬 풍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별다를 것 없는 소소한 일상들이 존재한다.
‘오케피’는 연극 ‘웃음의 대학’ 등 냉소적인 웃음 코드로 알려진 일본 작가 미타니 고키의 작품이다. 그 힘이 ‘오케피’에서도 발휘된다. 뮤지컬의 중심인 음악을 책임지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어쩐지 뮤지컬을 싫어하는 눈치다. 자신들이 연주하는 뮤지컬에 대해 “재미없다”고 독설을 하는가 하면 “나 뮤지컬 완전 싫어! 간단하게 말로 하면 30분이면 끝날 걸 뭘 그리 질질 끌어?” 하는 자체 디스는 뭔가 모를 공감대로 웃음을 자아낸다.
신랄한 풍자는 자칫하면 무거워질 수 있는데 ‘오케피’는 재미있는 가사와 어우러지면서 그 힘을 적절히 발휘한다. 기존 유명 뮤지컬에 대해서도 “고양이가 두 발로 걷냐?”(‘캣츠’에 대해) “가면 쓰고 여자한테 노래시킨다”(‘오페라의 유령’) “주사 맞고 성격이 바뀐다”(‘지킬 앤 하이드’)는 대사로 거침없이 희화화시킨다.
이런 상황을 모두 설명할 만큼 ‘오케피’는 대사 양이 유독 많은 편인데, 이에 대한 자체 디스도 잊지 않는다. “대사가 너무 많아. 연극이야, 뮤지컬이야?” 그리고 이런 풍자는 ‘레미제라블’ 속 혁명 주요 장면을 패러디하는 부분에서 정점을 찍는다.
▲뮤지컬 ‘오케피’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 역을 맡은 배우 황정민이 열연 중이다. 사진 = 샘컴퍼니
‘오케피’가 연말 뮤지컬 전쟁 속에서 개막 전 주목을 받은 이유는 수많은 재연 작품들 속에서 유일한 초연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막 이후엔 신선한 소재로 눈길을 끌고 있다. 자체 디스라는 소재도 재미있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오케스트라의 일면도 흥미롭다. 이들은 인터미션 쉬는 시간에도 이야기한다. “이게 배우들을 위한 시간인 것 같지? 우리를 위한 거야.” 계속해서 이어지는 스타 배우와의 신경전, 공연 중간에 발생하는 돌발 상황 등을 보면 “진짜 저런 상황이 많은가?” 하는 궁금증까지 불러일으킨다.
“30분이면 끝날 걸 질질” 뮤지컬 자체 디스
유명 뮤지컬 희화화로 유쾌한 웃음 선사
그리고 역시 황정민이다. 영화 ‘베테랑’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그는 ‘오케피’에서 또 다시 관객 몰이에 나서고 있다. 극 중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이끄는 지휘자 역으로 열연한다. 트럼펫 연주자에 아내를 빼앗기고도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이 와중에 하프 연주 단원에게 끌리는 등 여기저기서 흔들리는 캐릭터다. 하지만 그 가운데 어떻게든 중심을 잡아보려고 고군분투 애쓴다. ‘베테랑’에서 터프하고 거침없는 상남자 캐릭터를 보여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순박한 표정의 지휘자로 완전 변신해 있다. 대사 전달이 정확하고, 노래 또한 듣기 좋으며,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극 중 황정민은 “오케스트라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없네”라고 이야기한다. 뮤지컬 리뷰에 배우 이야기만 가득한 걸 풍자하는 대사다. 이에 기자가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하겠다. ‘오케피’는 신랄한 풍자만큼이나 음악이 매력적인 뮤지컬이라고.
주로 무대 아래에 있거나, 보이지 않게 가려져 있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무대 상단으로 끌어올리며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무대 위에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오케스트라가 펼쳐지고, 진짜 오케스트라는 또 그 위 공간에 자리해 관객들에게 모습을 보인다. 클래식, 재즈, 힙합, 발라드까지 다양한 선율을 선사하며 라이브 연주의 묘미를 확실히 보여준다. 대사가 많아 지루해질 수 있는 시점에 공연에 다시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데도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의 힘이 크다.
신랄한 뮤지컬 풍자가 계속되는 이 뮤지컬을 보고나면 뮤지컬 보기가 시들해질까? 아니다. 이 작품을 본 뒤엔 뮤지컬의 매력에 더 빠져들게 된다. 공연은 LG아트센터에서 2016년 2월 28일까지.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