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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디자인 - 9x9 실험주택] “물건 아니라 사람이 공간 결정”을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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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3-464호(신년) 안창현 기자⁄ 2015.12.31 08:52:16

▲경기도 양주시에 위치한 ‘9×9 실험주택’ 전경. 사진 = 김재경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안창현 기자) 아파트 공간을 한 번 떠올려보자. 평수가 정해지면 대충 그 구조가 떠오른다. 아파트 구조라는 게 대개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또 안방과 거실, 화장실과 주방 등 공간은 쓰임새에 따라 명확히 구분된다. 주거 공간이 기능적이고 효율적으로 설계됐다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획일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아파트가 살기 편하다고는 해도 종종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한 ‘9x9 실험주택’은 이름처럼 독특한 공간 구조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정영한아키텍츠의 정영한 소장은 이 실험주택을 설계하면서 오늘날 획일화한 주거 공간의 다른 가능성들을 실험했다. 벽으로 공간을 구분하고 공간의 쓰임을 미리 규정하기보다, 실제 이곳에서 살 사람이 공간을 규정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건물에 일정한 모듈로 기하학적인 다공(창문)이 뚫린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 = 김재경

또 이 주택은 각 공간의 구분과 쓰임뿐 아니라 내부와 외부의 경계 또한 모호하게 설계됐다. 정원이 주택 내부에 들어와 있는가 하면, 공간을 구획하는 벽을 유리로 처리하고, 크고 작은 창문을 통해 내·외부 공간이 미묘하게 겹치기도 한다. 안과 밖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공간을 선보이고 있다. 여러 건축적 장치를 통해 획일적인 주거 공간을 탈피하고자 한 실험이 인상적이다.

가로 9m, 세로 9m, 높이 6m의 2층으로 된 실험주택은, 1층과 2층이 서로 다른 구조를 가졌다. 1층이 우리에게 익숙한 전형적 주거 공간 형태라면, 2층은 실험주택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침대가 놓인 침실 공간. 사진 = 김재경

▲큰 창문을 통해 내부 모습과 외부의 풍경이 교차한다. 사진 = 김재경

2층엔 흰 색의 복도와 빈 공간들, 유리문 안쪽으로 흙이 깔린 정원이 보인다. 보통의 집 구조와는 사뭇 다르다. 공간을 구획하는 벽도 없고,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방도 없다. 그냥 복도를 따라 사방으로 죽 연결된 느낌이다.

책상이나 싱크대, 가스레인지 등 생활에 필수적인 가전이나 가구가 보이지 않는다. 정영한 소장은 “거주 공간은 보통 그곳에 놓인 가구에 의해 정의되기 마련이다. 즉, 가구의 기능이 공간을 규정하는 것이다. 소파와 TV가 놓인 곳은 거실, 식탁과 주방기구가 있으면 주방, 양변기와 세면대가 있으면 화장실이 된다”고 설명했다.

획일화된 주거 공간 탈피

9x9 실험주택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정 소장은 이런 생활필수품들을 모두 가장자리를 둘러싼 무빙 월(moving wall) 속에 넣을 수 있도록 했다. 필요에 따라 무빙 월을 열고 그곳에 있는 가구나 가전제품을 이용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때 무빙 월을 닫아 다른 용도로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중정은 유리벽과 공간 구성을 통해 내부와 외부를 연결한다. 사진 = 김재경

정 소장은 이를 ‘퍼니처 코리도(furniture corridor)’라고 불렸다. “공간을 미리 특정하게 정의하는 것에서 탈피해 퍼니처 코리도 장치를 통해 사용자 스스로가 공간을 능동적으로 정의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폭 600~800㎜의 퍼니처 코리도는 주거에 필요한 가구, 위생, 전기와 설비, 환기 및 냉난방 시스템을 수납하고 있다.

원래 이곳은 70대 여류 화가를 위한 살림집과 작업실로 설계됐다. 정 소장은 사용자의 연령을 고려해 많이 이동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공간 크기를 조절해 최적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적용한 것이 공간의 군더더기를 뺀 ‘퍼니처 코리도’ 장치였다.

주방 기구가 수납된 벽을 열고 주방으로 사용하던 공간이라도 벽을 닫으면 쉽게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다. 정 소장은 가구뿐 아니라 배기 및 환기, 냉난방 설치까지 이곳에 수납함으로써 철저히 공간을 비우고자 했다.

공간 변형의 마술사 ‘퍼니처 코리도’,
내부와 외부 잇는 유리벽 등 실험

실험주택의 별남은 퍼니처 코리도에 그치지 않는다. 보통 주택에서 내부와 외부는 물리적인 벽에 의해 분명히 구분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경계가 모호하다. 건물 내부에 정원이 들어와 있는데, 정원 공간은 묘하게 외부로 열려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또 뚫려 있는 천장과, 건물 전면에 뚫린 여러 다공(창문)은 집 안에 있어도 밖과 연결된 느낌을 준다. 다양한 장치로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중정이 보이는 실험건축 내부. 사진 = 김재경

▲주택 내부에 정원 같은 외부 요소를 끌어들이고, 이를 유리로 처리해 창밖의 풍경과 내부 경계가 흐려진다. 사진 = 김재경

정 소장은 “전통적 거주 공간은 물리적 벽을 통해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고 내부의 집과 외부의 정원을 명확히 구분한다. 하지만 실험주택은 1.8x1.8m과 1.2x1.2m 크기의 다공으로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실험주택은 건축가가 마련한 이런 장치들을 통해 거주자의 감각을 새롭게 한다. 획일화된 공간이 일상의 무덤덤함을 지속시킨다면, 실험주택은 새로운 주거 공간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감각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최근 ‘다섯 그루 나무’로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한 정 소장은 전시 프로젝트 ‘최소의 집’을 총괄 기획하기도 했다. 9x9 실험주택은 이 프로젝트의 1회 전시에 소개됐다. ‘최소의 집’은 2013년 시작해 매년 젊은 건축가들이 모여 주거 공간의 대안을 모색하는 전시 프로젝트다.

건축가가 미리 공간과 그 쓰임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그 안의 거주자가 공간의 새로운 쓰임을 만들고, 스스로 공간을 정의해가는, 낯설지만 흥미진진한 실험이 흥미롭다. 


9x9 실험주택

설계: 정영한  
위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상리 77-2  
지역지구: 제1종 일반주거지역, 지구단위계획구역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195.00㎡  
건축면적: 78.32㎡  
연면적: 93.24㎡  
규모: 지상 2층  
주차: 2대  
높이: 6.3m  
건폐율: 40.16%  
용적률: 47.82%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구체위스터코플렉스 마감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도장마감  
구조설계: 티섹구조 엔지니어링 사무소  
시공: 류승환  
사진: 김재경  
설계사무소: 정영한 아키텍츠(www.archihol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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