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온 게 아니다”라는 옛말이 있다. 단순히 작은 조짐을 보고 성급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수동에 등장한 제비 한 마리는 “아닌 것만도 아니지 않냐”라고 옛말에 다시 되묻는 듯하다. 2012년 오픈한 ‘제비다방’은 상수동 거리에 재미있는 분위기를 형성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름부터 익숙하다. 어떤 이는 ‘제비’라는 단어에 “사모님, 제비 한 마리 키워보세요” “제비 한 마리 몰고 가세요” 같은 유흥가 광고를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상호는 1930년대의 종로구 통인동 감성과 연결된다. 당시 소설가 이상(1910~1937)이 직접 오픈해 동료 김기림, 이태준 등과 청춘을 보낸 곳, 당대 예술가들이 모여 온갖 이야기를 나눈 그곳이 바로 ‘제비’ 다방이었다. 이상의 제비 다방은 2년여 만에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그 다방이 80년 세월을 뛰어 넘어 서울 상수동에 ‘제비다방’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공간의 성격도 비슷하다. 상수동 제비다방은 문화예술인의 아지트로 꼽힌다. 오후 6시까지는 각종 도서와 보드게임 등을 즐기며 차를 마시는 다방이다. 그런데 오후 6시가 되면 ‘취한 제비’로 간판이 스~윽 바뀐다. 그리고 인디 뮤지션들의 라이브 공연이 펼쳐진다. 주 4회 공연이 이어지며, 많은 뮤지션이 이곳을 거쳐 갔다.
한경록, 전기성, 김마스타, 김일두, 위댄스, 김간지, 하헌진, 최고은 등이 무대에 올랐다. 제비다방을 아끼는 뮤지션들이 이곳에 대한 단상을 담은 앨범 ‘제비다방 컴필레이션’을 발매하기도 했다. 작년 9월엔 아이유와 혁오가 제비다방에서 함께 노래를 불러 화제가 됐다. 공연뿐 아니라 단편영화 상영, 전시, 낭독회 등도 열린다.
▲제비다방 외부 측면. 공연 일정이 빼곡하게 적힌 벽 옆에 제비다방 간판이 보인다. 사진 = 제비다방
이곳이 특히 ‘문화예술인의 아지트’로 꼽히는 바탕에는 후불제라는 독특한 운영 방식이 있다. 무료로 입장해 자율적으로 공연을 즐기고 난 뒤, 돈을 얼마 낼지는 방문객의 마음에 달려 있다. 뮤지션이 노래를 부르는 도중 모금함을 들고 방문객에 “관심을 보여달라”며 살갑게 다가서는 게 이곳의 익숙한 풍경이다.
1930년대 이상의 아지트 ‘제비’ 다방이
21세기 문화예술인의 핫 플레이스로 부활
운영 초기엔 이런 방식이 낯설어 방문객이 거부감을 느끼거나 하루 종일 1만 원도 걷히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하루 60만 원 이상이 걷히기도 한다. 자율적으로 공연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모금액은 모두 뮤지션에게 전달된다. 제비다방은 상업성보다는 문화예술인과 방문객 사이에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데 주력하기 때문이다.
후불제 운영 방식과 더불어 제비다방이 사랑 받는 데는 또한 독특한 공간 구조와 분위기가 한 몫 단단히 한다. 제비 모양의 설치물과 궁서체의 간판 등이 건물 초입부터 눈길을 잡아당긴다. 그리고 흰 벽돌에 중간 중간 끼어든 목재 하며, 벽면의 그림까지 분명 별난 모습이기는 한데, 그러면서도 주변 건물들과 이질적이지 않게 잘 스며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약 13평 면적의 좁은 공간이 이상하게 넓게 느껴진다. 1층 한가운데의 떡하니 뚫린 구멍 아래로는 뮤지션들이 공연 무대가 보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구멍으로 이상한 나라를 힐끔 엿봤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 듯 싶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또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무대가 정면으로 보이고, 따뜻한 조명 불빛과 함께 양 벽면엔 책장이 설치돼 영화 ‘해리포터’의 마법학교 기숙사에 들어선 것 같다. 책장 사이엔 타자기나 전화기 등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소품들이 아기자기 배치됐다.
제비다방을 찾은 한 방문객은 “프랜차이즈 카페가 많은 요즘, 어디를 들어가도 대개 비슷한 느낌인데, 제비다방은 별난 개성이 있어 좋다. 안락한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며 “오후 6시 이전과 이후에 각각 방문해 봤는데, 각각의 매력이 있더라. 6시의 앞뒤로 분위기는 달라지지만 문화를 자유롭게 즐긴다는 특징은 같다. 재미있어서 자주 방문하는 편”이라고 경험을 말했다.
인터뷰 때마다 30분 정도 시간 여유를 더 갖고 출발하는 게 본 기자의 버릇이다. 엄청난 길치라서 헤맬 시간을 포함해 두기 때문이다. 혹시 몰라 지도까지 출력해 갔는데, 상수동 제비다방은 멀리서도 한 눈에 띄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지하철 6호선 상수역 3번 출구 뒤편으로 조금 걸어가면 보이는 3층 건물. 옆면에 크게 ‘CTR’이라 쓰인 이 건물은 앞에서 보면 얼굴이 또 달라진다. 제비다방이라는 간판과 전면에 설치된 큰 창이 내부를 언뜻 보여주며 또 다른 구조를 상상하게끔 한다. 또 다른 측면엔 그림이 크게 그려졌고, 그 아래쪽엔 평상이 설치됐다. 보는 각도에 따라 얼굴이 마구 달라지는 흥미로운 건물이다.
▲제비다방을 설계한 오상훈 건축가. 사진 = 김금영 기자
제비다방에서 오상훈(39) 교수를 만났다. 그의 직함은 다양하다. 제비다방의 건축주이자, 이 건물을 설계한 씨티알폼 건축 스튜디오의 건축가이며, 또 단국대 건축학과 교수다. 그는 이렇게 다양한 직함들을 즐기는 듯 했다. 자신을 움직이는 주요 원동력은 ‘즐거움(enjoy)’이요, 제비다방도 즐기려고 시작했다는 것이다.
제비다방 이전에 그는 2005년 서교동에서 ‘레몬쌀롱’을 운영했다. 수익 사업이 아니라, 편하게 술 마시고 노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오 교수와 그의 친구들이 함께 운영했다.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소였다. 음악 하는 친구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 그리는 친구는 붓을 들었다. 공연도 열고 단발성 전시도 열고, 여러 아티스트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마음껏 놀았다. 하지만 여러 여건상 문을 닫게 됐고, 그 자신도 영국 유학과 회사 생활 등으로 바빠지며 이 공간을 잊어갔다.
영국에 있는 그에게 2011년 동생 오창훈이 연락을 해 왔다. 상수동에서 한 건물을 발견했는데 잘 꾸미면 아주 재밌을 것 같다는 얘기였다. 이메일로 사진과 정보를 주고받은 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동생과 함께 건물을 사들였다. 지금의 제비다방 건물이다.
▲서울 상수동에 자리한 제비다방의 외관. 사진 = 제비다방
“원래 건물은 1988년에 지어졌다고 해요. 처음엔 가정집이었다가 용도변경으로 근린생활 시설이 되면서 학원과 사무실로 쓰였다고 하더라구요. 저희는 2012년 이 건물로 들어왔는데, 그땐 큰 철문과 구조물이 건물을 감싸고 있었어요. 건물에 무언가를 덧대기보다는, 반대로 그 구조물을 다 뜯어내 숨겨져 있던 88년도 옛날 벽돌 건물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걸 목표로 삼았죠.”
덧댄 구조물 뜯어내 88년도 벽돌 건물을 꺼내놔.
옛것의 형태 살리며 새 생명 불어넣는 데 주력
외관뿐 아니라 내부에도 옛것의 형태를 살려 새 생명을 불어넣는 데 주력했다. 건물의 큰 철문을 떼어낸 뒤 버리지 않고, 지하 1층 무대 위에 장식했다. 형형색색 전구를 달아 세련된 매력을 줬다. 과거 이 철문에 붙어 있던 ‘부재중’ 스티커 등은 그대로 남겨뒀다. 다른 빨간색 문은 출입구 쪽에 세웠다.
이밖에 공사하다 남은 나무판자를 이용해 제비다방 간판을 만들어 붙이고, 동네 주민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쉴 수 있도록 나무 평상도 건물 밖에 만들어 놨다. 새것을 들이기보다는 기존에 있던 걸 활용한 게 대부분이다. 내부에 책이나 소품 등도 과거 레몬쌀롱에서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옮겨왔다. 그래서 2012년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기보다는, 1988년부터 쭉 이어져온 것 같은 느낌이다.
“공사 때 신경 쓴 건, 건물이 완성됐을 때 ‘새 건물이 들어섰구나’ 하는 낯선 느낌이 아니라 ‘어, 이 건물 옛날에 있었는데!’ 하는 익숙한 느낌을 동네 주민들이 받았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짧은 역사지만 이 건물이 거쳐 온 세월을 존중하고 싶었거든요. 버리고 새롭게 만드는 게 아니라 재활용할 수 있다면 최대한 살려 동네 사람들과 감성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동네 분위기를 이해해야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으니까요.”
▲지하 1층 공연장은 ‘정겨운 다락방’을 콘셉트로 했다. 책장을 중심으로 빈티지 소품들이 배치됐다. 사진 = 제비다방
다 부수고 새로 지으면 편했을 텐데, 굳이 과거로의 회귀를 선택하며 어려운 작업에 나선 또 다른 이유는 이 건물에서 옛 레몬쌀롱 거리의 모습이 회상됐기 때문이었다. 과거 홍대 앞 거리 가운데 ‘주차장 골목’은, 오 교수가 학생 시절 밤샘 뒤 추리닝 차림으로 슬리퍼를 끌며 나와 아침밥을 먹던 편한 장소였다.
지금은 거대 자본이 들어와 홍대앞 곳곳이 고층 빌딩이다. 아침에 편의점을 가더라도 차려입고 나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오 교수는 홍대 거리의 예전 느낌이 그리웠다. 그 시절 함께 어울렸던 아티스트들도 높아진 월세에 있을 곳을 찾지 못하고 홍대 앞에서 떠밀려 나왔다. 밀려 나간 그들이 주목한 장소가 연남동과 상수동 일대다. ‘개발 폭탄’을 맞지 않은 두 지역은 독특한 옛 골목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골목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 제2의 레몬쌀롱을 만들고 싶었다.
“상수동에서 예전 홍대 앞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이곳에 새로 자리를 잡았죠. 처음엔 그냥 월세 내고 들어갈 공간을 찾았어요. 그런데 세입자로서는 공간 활용에 제약이 있어, 아예 직접 공간을 꾸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힘을 모아 매입했어요.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미래를 멀리 내다보면 더 좋을 거라 판단했거든요. 그리고 건물 설계 기간을 길게 가졌습니다. 영국에 있을 때부터 설계에 들어갔죠. 동생이 계속해 이메일로 피드백을 줬고요. 제 이름으로는 처음 선보인 리모델링 작업이기도 해요. 공간이 워낙 작아 mm와의 싸움이었어요. 디테일에 신경을 썼죠.”
건축주이자 건축가이기에 구현할 수 있던 형태가 있다. 1층 메인 홀에 떡하니 뚫어 놓은 구멍이다. 수용인원 80명밖에 되지 않는 공간에 구멍까지 뚫다니….
“다른 건축주에 제안했다면 미쳤냐고 했을지 몰라요(웃음). 왜냐면 일반적으로 카페를 차릴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테이블 숫자거든요. 테이블 수가 바로 수익과 연결되기 때문에,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어떻게 해서든 더 많은 테이블을 들여 놓으려 하죠. 하지만 상업적인 공간보다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형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공사할 때 이 의견에 모두 동의했고, 덕분에 재미있는 공간이 완성된 것 같습니다.”
구멍을 뚫은 건, 애초 죽어 있던 지하 공간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 전엔 드러내지 않던, 숨겨진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이 지하 공간이 제비다방의 앙꼬 같은 역할을 한다. 1층과의 단절이 아닌 연결을 택했고, 그 결과 1층의 큰 창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지하 공간까지 내려온다. 덕분에 원래 지하 1층의 천장이 낮은데, 구멍 덕분에 넓은 공간 같은 쾌적함이 더해졌다. 지하는 밝아지고, 1층에선 아래층을 훔쳐보는 듯한 묘한 재미가 있다. 공연이 열릴 땐 1층까지 음악 소리가 생생하게 울려 퍼진다.
건축주이면서 건축가라서 가능했던
1층의 큰 구멍. 이게 제비다방의 ‘앙꼬’
제비다방은 이 건물의 상징 같은 존재다. 이런 공간을 가능하게 한 건 건물 2~3층의 씨티알폼 건축 스튜디오(이하 씨티알)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동생 오창훈 씨와 오 교수가 함께 만든 문화지형연구소다. 출판, 건축, 음악, 미술, 공연 등 제한을 두지 않고 각종 문화 사업을 연구한다는 의미에서 ‘문화지형연구소’라 이름 붙였다.
▲하얀 벽돌이 특징인 제비다방의 외관. 사진 = 제비다방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 창작 활동을 해 나가는 유기적인 형태로 운영된다. 시작은 동생과 함께였지만, 지금은 건축팀, 출판팀, 공연을 기획하는 씨티알 사운드팀, 제비다방을 관리하는 팀까지 범위가 확대됐다. 과거엔 패션팀도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고, 뜻 맞는 이들과 문화 사업 구상을 할 예정이다. 오 교수는 “살아가는 원동력이 즐거움인데, 씨티알이야말로 그 원동력의 중심”이라고 말했다.
“씨티알은 2005년 9월부터 있었어요. 여러 문화 프로젝트를 수행했는데, 영국에 있던 10년 동안에도 방학 때마다 와서 씨티알 기획 회의를 했죠. 그러던 중 2011년 동생이 ‘내년엔 씨티알이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했어요. 문화 사업만으로는 유지가 힘들었기 때문이죠. 그때 결단을 내려야 했어요. 당시 영국에 정착할 수도 있었지만, 씨티알이 사라지면 제 삶의 원동력이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한국행을 결정했고 씨티알이 새로 시작할 건물을 매입한 거죠. 지금의 건물은 씨티알의 제2 단계라 할 수 있어요. 수익은 씨티알 사무실에서 내고, 제비다방은 놀이터 개념으로 꾸렸습니다.”
처음엔 딱 2년만 버티자는 생각이었다. 그 뒤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 사라질 수도 있겠다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굳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로 벌써 4년째를 맞았다. 오 교수는 “예전 놀던 대로 똑같이 노는데, 이런 문화를 함께 향유하고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 덕분인 것 같다”고 했다. 방문객의 층도 다양하다. 주로 젊은 세대가 많지만 중년층의 발길도 이어진다. 이 건물이 주는 친숙함 덕분에 다가오는 동네 주민, 그리고 제비다방이라는 이름이 주는 향수 덕분이다. 그 결과 다양한 세대가 즐겁게 어우러지는 장이 형성된다.
“제비다방이 이 동네의 문화 플랫폼이 돼가는 것 같아 기뻐요. 2012년 완공 때와 비교하면 조금씩 세밀하게 달라졌어요. 동네와 함께 숨 쉬고 시간을 쌓아가고 있는 거죠. 그런 여지를 만들어주는 게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건축가가 뭐든 전지전능한 입장에서 시작하는 건 위험합니다. 뼈대와 기본 콘셉트는 잡을지라도, 사용자들에 맞게 변해가고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죠. 상수동을 살펴보면 각자의 철학을 가진 재미있는 건물들이 많아요. 건물을 단순 구조물로 보지 않고, 동네의 캐릭터를 형성하는 대상으로 접근하는 거죠. 획일화되지 않은 점이 흥미롭고 매력적이에요.”
▲제비다방 1층에서 지하 1층을 내려다본 모습. 구멍으로 빛이 드나들고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진 = 제비다방
오 교수는 앞으로도 이런 재미있는 건물이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웃었다. 그는 “건물을 설계할 때 안 보이는 가치에 대해 설득하는데, 요즘엔 그걸 알아주는 분이 많아졌다”며 “디자인 과정을 함께 즐기고, 재미있게 뭔가 만들고 싶어하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짚었다.
제비다방을 시작으로 더 재미있는 공간들이 상수동에 많이 생기길, 또 만들어보길 고대하는 그다. 하지만 제비다방 2호점에 대해선 고개를 젓는다. 현재 공간의 정체성을 지키고 잘 꾸리는 데 주력하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에 “2년만”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지금도 “앞으로의 일은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은 똑같다.
“재미있는 문화 플랫폼이 될 공간을 또 꾸리고 싶어요. 공간에 숨을 불어넣는 일은 참 재미있어요. 그 건물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죠. 그 과정에 건축가로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즐겁고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재미있게 놀아야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