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요즘은 ‘걸 크러쉬’가 대세다. 같은 여자가 봐도 반할 정도의 매력을 지닌 여성을 일컫는 신조어다. 과거 청순가련, 또는 섹시미를 콘셉트로 내세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면, 요새는 걸 크러쉬를 주요 콘셉트로 내세우는 연예인이 많다. 뮤지컬 무대 또한 그렇다. 현재 무대에서 매력 대결을 펼치고 있는 뮤지컬계 걸 크러쉬 4인방을 살펴본다.
미친 성량으로 남자 배우들 삼키는 차지연
얼굴을 가린 채 목소리로만 대결하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최근 김연우와 거미의 4연승 기록을 제치고 신기록을 세운 그녀. 차지연은 이 프로그램 첫 등장부터 강렬했다. 특히 걸그룹 소녀시대의 ‘런 데빌 런’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불렀을 때는 객석과 패널석이 동시에 들썩였다. 섹시함을 내세운 원곡 버전과는 달리 허스키하고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분노를 내지르듯 무대를 집어삼켰기 때문.
차지연은 뮤지컬 분야에서도 폭발적인 성량으로 유명하다. 남자 배우에 뒤지지 않는 성량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켜 왔다. ‘서편제’ ‘더 데빌’ ‘아이다’ 등 굵직굵직한 공연 무대에 오르며 실력을 검증 받았고 여성 팬이 많은 편이다. 노래 소화 능력도 탁월해 발라드부터 록, 댄스, 재즈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서편제’에서 한(恨)이 담긴 판소리를 불렀던 그녀의 모습이다. 울부짖듯 포효하는 그녀의 모습에 객석이 숨을 죽였다.
현재는 뮤지컬 ‘레베카’(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오페라 극장에서 3월 6일까지)에서 매력을 발산 중이다. 전 부인인 레베카의 죽음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막심 드 윈터, 죽은 레베카를 숭배하며 맨덜리 저택을 지배하는 집사 댄버스 부인, 사랑하는 막심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댄버스 부인과 맞서는 ‘나(I)’를 중심으로 맨덜리 저택의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해 가는 작품이다.
차지연은 극 중 댄버스 부인 역을 맡았다. 시종일관 굳은 표정에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등장한다. 그래서 눈에 잘 안 보일 법도 하지만, 그녀가 입을 여는 순간 남자 배우들의 존재감을 위축시킬 정도로 폭발적인 성량이 터져 나온다. 그래서 댄버스 부인이 부르는 ‘레베카’는 이 공연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여주인공은 ‘나(I)’이지만 실제론 그녀가 연기하는 댄버스 부인이 주역으로 느껴지는 건 괜한 착각이 아닌 듯하다.
걷는 것조차 섹시한 언니, 아이비
한때 그녀는 남자들의 ‘섹시 드림’이었다. 가요계에 첫 데뷔했을 때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남자를 유혹하는 가사의 ‘아하’를 불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뮤지컬계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원숙미를 쌓은 그녀는 이제 남자들뿐 아니라 ‘걷는 것조차 섹시한 언니’로, 여성 팬까지 많이 거느리게 됐다.
▲과거 ‘남자들만의 섹시한 그녀’였던 아이비는 이제 뮤지컬 무대에서 ‘걷는 것조차 섹시한 언니’로 여성 팬들의 마음도 사로잡는다. 뮤지컬 ‘시카고’에서 공연 중인 아이비(가운데). 사진 = 신시컴퍼니
아이비의 이런 매력을 이끌어낸 작품이 최근 2월 6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된 뮤지컬 ‘시카고’다. 아이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기도 하다. 재즈 열기가 가득했던 미국의 1920년대를 배경으로, 살인 사건을 저지르고 온 배우 벨마 캘리와 코러스걸 록시 하트, 그리고 이들의 변호사 빌리 플린이 교도소에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2000년 국내 초연 이후 시즌 12까지 이어질 정도로 매년 꾸준히 공연돼 왔다. 여기엔 아이비의 기여가 컸다. 그녀는 불륜과 살인을 저지르고 교도소에 왔지만, 스타가 되는 꿈을 멈추지 않는 록시로 열연했다. 과거에 섹시 콘셉트로 남성들의 마음을 홀리는 데 주력했던 그녀는, 록시 역에서는 약간의 푼수끼와 발랄함, 그리고 영악함까지 아우르는 색다른 모습으로 변신했다. 숙련된 노래와 춤 솜씨까지 더하니 여성 관객들도 홀릴 만 했다.
아이비는 뮤지컬에 애정을 보이며 계속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카고’로 새 전성기를 맞은 그녀가 선택할 다음 작품이 무엇일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국민 요정에서 뮤지컬 디바로 변신한 바다
국민대표 걸그룹 계보엔 S.E.S가 빠지지 않는다. 국내 걸그룹의 시초로 꼽히는 S.E.S의 메인 보컬이 바다였다. ‘나를 믿어주길 바라’ 노래를 부르며 순진한 눈망울로 남성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그녀는 지금 공연장에서 무대를 압도하는 뮤지컬 디바로 여성 관객의 마음까지 흔든다.
▲국민 요정으로 활동했던 바다는 현재 뮤지컬 디바로 활약 중이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혼자 꿋꿋하게 삶을 개척하는 센 여자 스칼렛 오하라 역을 열연했다. 사진 = 클립서비스
데뷔 초엔 여성 팬은커녕 안티만 많았다. 같은 SM 소속의 H.O.T을 추종하는 소녀 팬들이 “혹시 우리 오빠를 건드리는 거 아냐?”라는 우려와 질시의 시선을 보냈기 때문이다. 또한 신비주의를 고수하다보니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기회도 없었다. 그랬던 그녀가 몇 년 전 ‘무한도전’에서 “아임 소 매드(I’m So Mad)” 노래 가사를 외치며 박명수를 당황시켰을 때 여성 팬들이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남자들의 국민요정이 한순간에 친근한 언니로 다가온 것이다.
이런 이미지는 뮤지컬 무대로 이어졌다. 관객과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소통하며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뮤지컬 무대다. 예뻐 보이려 노력해야 했던 걸그룹 때와는 달리, 연기와 노래를 위해서는 망가지는 모습도 불사해야 하는 무대에서 바다는 새롭게 태어났다.
가장 최근엔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무대에 올랐다. 초연에 이어 재연에도 출연한 그녀는 미국 남북전쟁 배경의 극에서 어떤 고난에도 쓰러지지 않고 일어서는 강인한 여인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았다. 남자에 기대지 않고, 도움을 받을 바엔 차라리 남자를 이용해버리는 당찬 여자 캐릭터와 높은 싱크로율을 보였다. 여성 팬들은 “역시 언니야”라는 환호를 보내줬다.
카리스마 눈빛과 반달 웃음의 반전 매력 박칼린
박칼린의 수제자 중 한 명인 아이비는 예전에 한 방송에서 “박칼린에게 잘못 보이면 그 다음 공연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 배경에는 박칼린의 카리스마가 자리한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 출연 당시에도 수많은 단원을 단 한 마디로 제압하는 카리스마를 보인 바 있다.
▲박칼린(왼쪽)은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에서 배우로서의 매력을 보여준다. 음악감독으로서 보여준 카리스마는 무대에서도 여전하다. 사진 = 프레인글로벌
강압적으로도 보일 수도 있는 이런 면모가 오히려 여성 팬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자기 일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이 당당한 여성 리더상과 부합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카리스마를 내뿜을 땐 한없이 무서워 보이지만, 살짝 웃어주는 순간 편한 언니로 돌아온다.
현재는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3월 13일까지)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한 가정이 품은 상처를 그리는 내용이다. 박칼린은 극 중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엄마 다이애나 역을 맡았다.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로 우울증을 겪으며 정신적인 아픔과 싸우는 인물이다.
‘시카고’ ‘렌트’ ‘헤어스프레이’ ‘미스 사이공’ ‘미녀와 야수’ 등 대형 공연들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해온 박칼린의 또 다른 매력을 볼 수 있는 게 이 공연의 특징이다. 배우로 연기할 때도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는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