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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법 이야기] 이태원 살인사건과 일사부재리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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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9-470호(설날)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2016.02.11 11:25:24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1997년 4월 3일 밤 10시경, 22살의 대학생 조 씨는 여자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이태원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조 씨는 소변이 마려워 근처 햄버거 가게로 들어갔고, 거기서 갑자기 살해됐습니다.

누군가 조 씨를 칼로 찔러 살해했는데 왼쪽 목에 4개, 오른쪽 목에 3개 등 수차례 칼에 찔린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 있던 용의자 2명을 지목했습니다. 주한미군의 아들인 아더 패터슨과 교포인 에드워드 리였습니다. 두 사람은 당시 한국 나이로 18세, 미성년자였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두 용의자의 진술은 엇갈렸습니다. 아더 패터슨은 “에드워드 리가 조 씨를 죽였다”고 진술했습니다. 반면 에드워드 리는 “아더 패터슨이 죽였다”고 말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둘 중 한 명이 조 씨를 죽인 것은 확실했습니다. 검찰은 결국 에드워드 리를 살인범으로, 아더 패터슨을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패터슨은 살인범으로 지목되지 않았지만, 당시 입었던 옷을 태우고 칼을 버린 행위가 범죄로 인정된 것이었습니다.

극적으로 다시 소환된 사건 용의자

아더 패터슨은 수감됐지만, 1998년 8월 광복절 특사로 곧 석방됐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9월 에드워드 리는 대법원으로부터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1993년 11월, 피해자 조 씨의 가족은 풀려난 패터슨을 살인범으로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검찰은 고소장을 접수한 이후 패터슨에 대해 출국 금지 조치를 취한 후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결정적인 실수가 발생합니다.

출국 금지는 3개월에 1회씩 연장해야 하는데, 검찰이 재연장 신청을 하지 않아 1999년 8월 23일 일시적으로 출국 금지 조치가 해제됐습니다. 패터슨은 이를 놓치지 않고 24일 한국을 떠났고, 검찰은 26일 다시 출국 금지 조치를 취했지만 이미 늦었던 것입니다.

▲피살된 조 씨의 어머니 이복수 씨가 1월 2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아더 패터슨(미국)의 1심 공판을 지켜본 뒤 법원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건의 진범으로 기소된 패터슨은 이날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사진 = 연합뉴스

이때부터 사건은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검찰을 비판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가 됐습니다. 그러던 중 2009년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했습니다. 배우 정진영이 검사로, 장근석이 살인범으로 나왔습니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왔습니다. 결국 검찰은 본격적으로 재수사에 나서게 됐고, 2011년 아더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한국을 떠난 패터슨을 한국으로 소환하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한국 정부는 미국에 패터슨을 인도해달라고 요청했고, 2015년 9월에야 한국으로 소환됐습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의 재판에서 패터슨은 자신이 조 씨를 살해한 것이 아니며, 진범은 에드워드 리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에드워드 리는 법정에서 다시 패터슨이 조 씨를 살해했다는 증언을 했습니다.

일사부재리 원칙이 재판의 핵심 될 것

이태원 살인사건은 형사소송법이나 형사정책학을 배울 때 종종 언급되곤 했던 사례였습니다. 몇 가지 법적인 쟁점이 숨어 있습니다. 법정에서 검찰과 패터슨의 변호인은 치열하게 다퉜는데, 가장 큰 쟁점은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이었습니다.

‘일사부재리 원칙’이란 “어떤 사건에 대해 일단 판결이 나오고 확정되면 그 사건을 다시 소송으로 심리·재판하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우리 헌법 제13조 1항에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규정된 헌법상 원칙입니다. 만일 확정 판결이 있는 사건에 대해 다시 공소가 제기될 때에는 실체적 소송 조건의 흠결을 이유로 면소 판결을 합니다.

이 사건의 경우, 18년 전에 아더 패터슨은 증거 인멸 등의 혐의로 이미 판결을 받았고, 에드워드 리의 경우에도 살인죄에 대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두 사람을 다시 법정에 세워 조 씨의 살인범이 누구인지 재판하는 것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반하는 것인지 문제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에드워드 리의 경우, 이미 살인죄로 무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적용돼 처벌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더 패터슨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아더 패터슨이 도주 16년 만에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되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일사부재리의 원칙은 ‘완전히 동일한’ 사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사실 관계’가 동일한 경우에도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패터슨 측 변호인은 패터슨이 증거 인멸 등의 혐의로 확정 판결을 받고 복역을 한 만큼, 기본적인 사실 관계가 동일한 사건으로 다시 재판을 받는 것은 일사부재리 원칙에 반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검찰은 패터슨이 조 씨를 살해했다는 기본적 사실 관계가 달라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맞섰습니다. 즉 기본적 사실 관계가 동일한지 여부가 이 재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판부가 동일한 사건이라고 판단하면 아더 패터슨을 처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패터슨에게 일사부재리 원칙 적용을 하지 않고 20년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물론 에드워드 리는 일사부재리 원칙이 적용돼 처벌 받지 않았습니다.

피고인 패터슨은 바로 항소했습니다. 그리고 1심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언제든 존재합니다. 솔직히 상당히 높은 확률로 1심이 번복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감정으로는 살인범을 처벌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법률을 위반한 판결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필자 생각으로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 판결을 받아야 끝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사건의 진행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정리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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