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그 소재를 이렇게?”…창작뮤지컬의 소재 경쟁
뮤지컬 ‘살리에르’ ‘에어포트 베이비’ 등 눈길
▲뮤지컬 ‘살리에르’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살리에르의 삶에 주목한다. 사진 = HJ컬쳐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하루가 다르게 관심사가 변하는 세상이다. 실시간 검색어는 분마다 바뀌기 일쑤고, 뉴스거리도 인터넷에서 계속 터져 나온다. 몇 달 동안 음악 방송에서 1위를 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옛날이야기다. 매주 음반 차트가 바뀌고, 1위 가수도 바뀐다. 그만큼 대중은 다양한 볼거리와 소재를 원한다. 공연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식상하다’ ‘진부하다’는 평가를 피하기 위한 소재 발굴 경쟁이 치열하다. 이런 가운데 뮤지컬 ‘살리에르’와 ‘에어포트 베이비’는 신선한 소재로 2016년 상반기 주목받는 창작 뮤지컬로 꼽히고 있다.
무대 뒤의 2인자를 주인공으로
뮤지컬 ‘살리에르’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에 주목한 공연은 수많은 버전으로 쏟아져 나왔다. 뮤지컬 ‘모차르트!’ ‘모차르트 오페라 락’을 비롯해 연극-영화도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중심으로 한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 작품들에는 모차르트와 꼭 함께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다. 영원한 2인자로 꼽히는 살리에르다.
살리에르와 모차르트는 그간 줄곧 앙숙이자 희대의 라이벌로 그려져왔다. 물론 최근 그 둘이 함께 작곡한 곡이 발견됨에 따라 두 사람이 그렇게 앙숙 관계는 아니었다는 평가도 새로 나오고 있지만, ‘성공한 천재 대 끝없이 노력해도 실패하는 범재’의 스토리로서 두 사람의 얘기는 수많은 스토리텔링의 소재가 됐다. 이들 콘텐츠들은 대개 주인공 모차르트에게 악역 살리에르가 시련을 주는 내용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뮤지컬 ‘살리에르’는 살리에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삶에 주목했다는 점이 색다르다. 또한 “과연 두 사람이 그렇게 숙적이기만 했을까”라는 의문을, 최근의 공동 창작곡 발견 이전에 이미 제시한 점도 눈길을 끈다.
뮤지컬 ‘살리에르’는 천재 모차르트의 그늘에 가려져 빛을 못 본 살리에르의 삶과 음악에 조명을 비춘다. 평범한 사람 누구나 느껴봤을, 천재를 바라보는 열등감, 고민을 살리에르의 시선에 담았다. 그래서 더 공감 요소가 크다. 2인자의 서러움은 이미 진부한 소재이지만, ‘살리에르’는 여기에 차별성을 두기 위해 새로운 캐릭터 젤라스를 등장시킨다.
모차르트와의 만남과 동시에 살리에르를 찾아온 의문의 남자 젤라스는 자신을 “당신의 오랜 팬”이라 소개하며, 밤낮없이 돕겠다고 찾아온다. 이 와중에 살리에르는 왕이 개최한 즉위식 책임자 자리를 놓고 모차르트와 경합을 벌이는데, 젤라스의 등장이 빈번해지면서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뮤지컬 ‘살리에르’에서 살리에르 역의 최수형(앞)과 젤라스 역의 조형균이 열연 중이다. 사진 = HJ컬쳐
라스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이 공연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르가 정말 사이가 나쁘기만 했을까’”하는 궁금증도 제시한다. 최근 살리에르와 모차르트의 합작곡 ‘오필리아의 회복된 건강을 위하여’ 악보가 230년 만에 발견돼 화제가 됐다. 1785년 살리에르와 모차르트 등 세 명의 작곡가가 공동 작곡한 성악곡으로, 세기의 라이벌로 꼽히는 그들의 관계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것.
이런 관점들을 극 속에 자연스럽게 풀어내기 위해 뮤지컬 ‘살리에르’는 소재 개발 과정을 거쳐 왔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의 작품을 원작으로 2014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첫 선을 보였다. 2015년엔 ‘살리에르 - 리멤버 콘서트’를 마련해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그리고 올해 앙코르 공연에서는 드라마와 넘버(곡)를 보완했다. 대극장으로 장소도 옮기면서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를 꾀했다. 프레스콜 현장에서 한승원 프로듀서는 “이번 앙코르 공연에서 살리에르가 얼마나 위대한 음악가였는지를 보여주며, 그의 삶을 더 조명하는 데 집중하려 했다. 새로운 곡도 5편 정도를 넣어 보강했다”고 밝혔다.
김규종 연출은 살리에르 캐릭터에 강한 애정을 드러내며, “살리에르의 질투가 어떻게 성장하고, 바닥까지 내려가는지, 또 음악적으로 위대하던 사람이 모차르트를 만나고 어떻게 변하고 흔들리는지 인물에 대한 방점을 찍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살리에르 역을 맡은 배우 정상윤은 “얼마 전 만난 초등학생들이 모차르트는 아는데, 살리에르는 아무도 모르더라. 그 점이 우리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라며 살리에르의 삶을 그리는 데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무대 아래, 혹은 뒤에서 서포트 하던 역할에 그치던 2인자의 반란이 ‘살리에르’의 가장 큰 매력이다. 공연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3월 13일까지.
민감한 입양 이야기를 희극으로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
다큐멘터리로도 풀기 민감한 소재가 뮤지컬에 등장했다. 창작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는 입양아 이야기를 다룬다. 생모를 찾기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22살의 입양 청년 조씨 코헨이 한국에 와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어느 날 배고파서 우연히 들어간 음식점에서 게이 할아버지 딜리아와 그 친구들을 만나고, 이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생모의 흔적을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이 공연은 전수양 작가와 장희선 작곡가가 머리를 맞대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프레스콜 현장에서 박칼린 연출은 “작가와 작곡가 두 명에게 각자 실제로 입양아 친구가 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다가 입양인의 삶 중 공통되는 요소를 발견했고, 이를 뮤지컬로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극 중 조씨 코헨은 미국 유태인 집안에 입양되는데, 이것도 실존 인물의 이야기가 바탕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는 입양아 소재를 경쾌하게 풀어낸다. 사진 = 신시컴퍼니
전수양 작가는 ‘작가의 글’을 통해 “2009년 파트너 장희선이 입양아를 소재로 뮤지컬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을 때, 굉장히 끌리는 소재였지만 염려도 많았다”며 “7년의 작업 기간 동안 뿌리를 찾는 입양인들은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산다는 걸 느꼈다.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당연히 있는 것들을 이들은 직접 찾아야 한다. 비록 그것이 차가운 진실이라도 그들은 그 진실을 알기 위해 고국을 찾는다. 삶에 대한 그들의 에너지는 그 어떤 뮤지컬 주인공보다 크고 강렬했다”고 전했다.
입양아 이야기라 하면 안쓰러운 눈빛으로, 눈물을 흘려야 할 것 같은 반응이 거의 자동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이 뮤지컬은 오히려 희극에 가까운 느낌이다. 경쾌한 노래를 중심으로 웃음이 터지는 부분이 많다. 박 연출은 “어려운 소재였다. 뮤지컬 창작에서 가장 기본적인 룰 중 하나가 만드는 사람들이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인데, 작가와 작곡가 모두 이 이야기에 열의를 가졌고, 합도 잘 맞았다. 대본이 잘 나왔기에, 나는 그것을 무대 위에 구현하는 데 주력했다. 슬픈 소재를 담백하게 구성한 게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입양 이야기를 신파가 아닌, 뮤지컬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접근했다. 최근 어떤 브로드웨이 평론을 읽었는데, 뮤지컬을 창작할 때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빼면 안 된다고 하더라. 이 말에 공감한다. 그렇다고 억지스럽게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넣으려 하진 않았다. 인물의 삶이 언어적인 유머와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신경 썼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의 한 장면. (왼쪽부터)게이바를 운영하는 딜리아(강윤석 분), 입양아 조씨 코헨(최재림 분), 딜리아의 친구 레이디스(지새롬, 김바다 분)는 이태원 딜리댈리바에서 첫 만남을 가진다. 사진 = 신시컴퍼니
출연 배우인 이미라는 “작품의 소재가 동시대 문제를 다루는 게 좋았다. 너무 오래된 과거나 아주 먼 미래가 아니라, 현 시대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라며 “입양아를 무조건 불쌍하게 보는 편견이 내게도 있었다는 걸 이번 작품을 하며 느꼈다. 그만큼 접근이 어려운 소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연을 하면서 단순히 입양아 문제가 아니라,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따뜻하게 가족 이야기를 풀어낸 공연”이라고 설명했다.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는 본공연에 오르기 전 2004년 CJ엔터테인먼트, 킥뮤지컬이 주최하고 박칼린이 수퍼바이저로 참여했던 창작 뮤지컬 개발 프로그램 ‘창작뮤지컬 쇼케이스’를 거쳤다. 그리고 꾸준한 개발 과정을 거쳐 올해 드디어 본공연으로 관객맞이에 나섰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가득한 대학로에 간만에 눈길을 끄는 공연이다. 공연은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3월 6일까지.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