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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바둑 선진국’ 한국이 절대 알파고 못 만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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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5호 이상면 문화예술 편집위원(연극영화학 박사)⁄ 2016.03.24 08: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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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이상면 문화예술 편집위원(연극영화학 박사)) 지난 3월 9일부터 14일까지 최고의 바둑 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Google)의 알파고 프로그램의 다섯 번 대국은 알파고의 4승 1패로 끝났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인간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국내외로 큰 관심을 끌었던 이번 대국이 한국 사회에 남겨준 것은 미래 사회에 인공지능의 필요성만이 아니었다. 필자는 이에 대해 문화비평적인 관점에서 몇 가지를 지적해본다. 

먼저 이번 대국에서 승리한 것이 과연 알파고인지 다시 생각해보자. ‘알파고’(Alpha Go)란 영국에서 2010년 결성된 인공지능 개발업체 딥마인드 테크놀로지스(Deep Mind Technologies)의 3명 연구원들이 바둑을 대상으로 만든 인공지능 시스템이다. 이를 구글이 2014년에 구입했고 이후 ‘구글 딥마인드’로 불린다. 그러면, 일단 세계 최고수 이세돌 9단에게 4:1로 승리를 거둔 것은 알파고 연구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위의 상급 승자는 구글이다. 구글은 이 프로그램을 4억 유로(약 4200억 원)에 사들여 ‘세기의 바둑 대결’ 이벤트를 벌이며 상금 100만 달러(약 12억 원)을 내걸었다. 그리고 인공지능에 관해 전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라 무인자동차 시스템을 비롯해 구글이 개발 중인 여러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더욱 탄력을 받고,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전세계적으로 더욱 주목받게 될 것이다. 

연구보다 돈만 따지는 한국 대학에선 절대 알파고 못 나와

이렇게 알파고와 구글이 승리를 챙겼지만, 그렇다고 이세돌 9단이 패자는 아닌 것 같다. 그는 전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서 사람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과 대결했고, 황야의 총잡이처럼 외롭게 인간계의 대표로 홀로 ‘보이지 않는 적’과 게임을 했다. 그는 패배 후 “인간이 진 것이 아니라 이세돌이 졌다”고 했지만, 어느 누구도 알파고를 두 번 이상 이길 것 같지는 않다. 그렇기에 그의 패배는 무겁게 느껴지고, 1승조차 위대한 승리 같아 보인다. 

▲3월 13일 이세돌 9단이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구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제4국에서 첫 수를 두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인간 이세돌은 기계와 대결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알파고 역시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이번 대결은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 아니라고 보고 싶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은 19세기 산업혁명 때 있었던 일이고, 지금은 그와 유사한 양상이 아니다. 인간들은 기계를 이미 잘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9단은 상대방의 현존성이 없는 부존재(不存在)의 적과 싸웠다는 점이 그를 더욱더 외롭고 어색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더욱이 최고 강자가 컴퓨터 프로그램에게 지는 것을 상상하고 싶지 않고 받아들이기도 힘들었을 것이므로, 여기서 중압감과 부담이 생겨났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도 앞으로는 인간이 아닌 물체를 일상생활에서 상대하고, 같이 일하며 같이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상황이 오는 것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즉, 인공지능 기계가 해주는 행정 처리, 질병 진단, 보험 및 금융 상담 등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같이 살아가야 할지가 더 큰 과제일 것 같다. 이런 약간 중요한 생활문제들은 현재 인공지능이 인터넷에서 우리에게 해주는 검색이나 책 안내, 물품 소개 같은 정보 제공과는 차원이 다른 유형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공지능이 나쁜 인간들처럼 우리를 속이지 않고 사기 치지 않을 것이라는 장점은 위안이 된다. 

▲키프로스-싱가포르 출신의 부모 아래 런던에서 태어난 데미스 허사비스. 4000년 역사의 동양 바둑 전통은, 영국 출신의 젊은 연구자들이 개발한 인공지능에 패배를 당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번 바둑 이벤트가 우리에게 큰 메시지를 던져준 이유는 바둑이 아니라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때문이다. 미래 사회에서 인공지능은 얼마나 많은 영역에서 우리 생활에 침투하여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인가? 또 이와 관련되는 미래의 직업은 무엇이고, 윤리적 문제는 없는가 등등의 문제가 곧바로 떠오른다. 

인공지능 연구, 우리는 어디까지 왔나?

특히 이번 이벤트는 그 전시장이 된 한국에게 인공지능에 대해 커다란 메시지를 던지고, 과학정신을 일깨워주었다. 한국은 디지털 기술과 매체에는 관심이 많지만,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초보인 상태다. 그렇기에 그 위력에 대해 전문가나 일반인 모두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사실, 한국이 IT 강국이라지만, 서구에서 개발된 디지털 기술 제품들을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 그치고, 디지털 콘텐츠나 창의적인 프로그램 제작에는 취약하다는 약점이 이번에 다시 드러난 셈이다. 

인공지능의 시초는 영국 케임브릿지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했고, 수학 교수로 제2차 대전 중 암호 해독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54)의 1950년 논문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의 연구 결과는 ‘튜링 테스트’, ‘튜링 기계’라는 유명한 용어로 남아 있다. 그 후 인공지능 연구는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주로 영국과 미국에서 지속되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연구비 지원이 경제 상황에 따라 여러 번 부침을 겪어오다가 90년대 이후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실용화되면서 크게 부각되고 세계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벤츠-BMW는 세계 최대 비영리 인공지능 연구소 확보했는데, 
현대차는 이제 연구원 모집 시작?
  
현재 인공지능 연구소는 영국과 독일, 미국 등에 여러 곳 있다. 미국에는 스탠퍼드 대학과 카네기 멜론 대학, MIT 등에 연구소가 있다. 세계 최대의 비영리 인공지능 연구소는 독일에 있다. 자르뷔르켄에 본부(DFKI)를 두고 세 곳(카이저스라우테른, 베를린, 브레멘)에 분원이 있으며, 자동차 업체인 BMW와 벤츠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면, 한국의 인공지능 연구는 어떠한가? 필자가 알기에, 국내에 인공지능 연구소는 대학이건 기업이건 한 군데도 없다. 알파고-이세돌 대국 뒤 현대자동차는 인공지능 전문연구원을 찾겠다고 하는데, 왜 인공지능연구소를 직접 세우려 하지 않는지 묻고 싶다. 

3월 14일 미래부는 인공지능 개발을 위한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설립키로 했다고 했지만, 정부의 대응과 지원도 뒷북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연구소와 지원금도 필요하지만, 연구에 절실히 필요한 ‘연구 환경’에 대해서는 왜 배려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돈을 투자한다고 결과가 쑥쑥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컴퓨터-인공지능 연구의 첫 발을 디딘 앨런 튜링이 1945~1947년 살았던 런던의 햄턴 구역에 세워진 ‘딥 블루’ 색의 명판(왼쪽 사진)과 앨런 튜링의 16세 때 모습. 사진 = 위키피디아

여기서 연구 환경에 대해 짚어보자. 바둑은 동아시아에서 4000년 이상 성숙된 전통문화다. 헌데, 알파고는 영국에서 아랍계 연구원들이 만들었다. 문화적 관련이 적은 데도 불구하고, 창의적 과학 연구 환경이 있는 영국에서 알파고가 나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수학자 튜링은 1930년대부터 케임브릿지 대학의 작은 연구실에서 컴퓨터의 원리를 연구했고, 그가 1950년에 연구의 단초를 제시한 인공지능 연구는 논란이 일어나고 중단되면서도 지속됐다. 90년대부터 디지털 기술이 발달되면서 결실을 보기 시작했고, 60년이 지난 2010년대 중반에는 이제 실용화를 논하게 된 것이다. 

이런 지속적인 연구에는 믿고 밀어주는 연구 환경과, 서로 논의할 수 있는 동료들이 중요하다. 이런 연구는 한국 대학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 대학들은, 유명 대학조차도 미래를 꿈꾸는 연구원들이 조용히 연구할 수 있는 연구실을 주지 않는다. “그런 연구를 왜 하느냐”고 힐문하기 십상이다. 

연구자들이 어려운 경쟁을 뚫고 연구 과제를 따오면, 연구 아닌 정산 문제로 행정직원들에게 지적받기 십상이다. 게다가 1~2년 안에 성과가 없으면, “방 빼”라는 말을 듣는다. 이게 한국 대학의 연구 환경 현실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노벨상을 기대하고, 창의적 연구 성과가 나오길 기다리는 것은 모래바닥에서 진주를 캐내겠다는 헛된 욕심이나 마찬가지다. 

이번의 바둑 이벤트는 한국 사회에 참으로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이번 이벤트로 구글의 시가 총액이 58조 원 가량 늘어난 배후에는, 엉뚱해 보이는 연구자들이 조용히 몰두하며 연구할 수 있는 환경, 즉 ‘연구를 키워주는 문화’가 있었음을 말하고 싶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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