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동티모르] 선한 청년들에서 희망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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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5일차 (동티모르 딜리)
거대 예수상
해안 동쪽 끝 작은 언덕 위에 서 있는 예수상(Christo Rei)으로 향한다. 아름다운 해안을 굽이굽이 돌며 가는 길을 따라 레스토랑이 이어진다. 1976년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세운 높이 27m의 거대 예수상까지는 수백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러나 예수상이 서 있는 언덕 정상에 오르니 그 보상은 흘린 땀의 몇 십, 몇 백배다. 언덕 아래 좌우 양쪽으로 펼쳐진 원시 해변, 앞으로는 망망대해, 깨끗한 바다 공기까지….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이런 곳에 몇 번이나 와 볼 수 있을까?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서 하염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프라우드 한국인
물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예수상보다는 작지만 내려다보는 풍광은 뒤지지 않을 것 같다. 초대형 지구본을 기반삼아 그 위에 서 있는 예수는 서쪽 하늘 어딘가를 바라본다. 혼자 보기엔 미안할 만큼 찬란하게 아름답다. 마침 가족인 듯 보이는 몇 사람이 올라온다. 유니세프(UN 아동기금) 직원으로서 네팔 고향에서 방문한 가족들과 여기 올랐다고 한다. 함께 온 또 다른 유니세프 직원은 한국어가 매우 유창하기에 물어보니 북한에서 8년 근무했다고 한다. 한국인은 아주 프라이드가 강한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북한에서도 늘 그렇게 느꼈다고 한다.
▲여행을 하며 동티모르의 다양한 젊은이를 만났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반갑게 인사한다. 낙천적이고 선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사진 = 김현주
딜리 성당
시내에서 여기 올 때 타고 온 택시가 주차장에서 얌전히 기다린다. 시내 가장 서쪽에 있는 딜리 성당(Catedral de Dili)까지 간다. 2009년에 새로 건립됐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방문했다. 사제를 만나서 잠시 대화를 나눴다.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며 반가워하면서 동티모르 경제가 좀처럼 일어서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 한국에 600~700명 정도의 티모르인이 산업연수생으로 가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일을 잘 배워 와서 이 나라 발전에 힘이 되면 좋겠다고 말을 잊지 않는다.
가슴 메어지는 가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달리 이동할 방법이 없으니 주로 걷는다. 흙탕물이 질척거리는 인도를 조심스레 걷다보니 시내 공터 어딘가에 구제품 의류를 파는 천막 시장이 있다. 천막 시장이라기보다는 상설 의류 시장에 가깝다. 한국에서라면 공짜로 줘도 안 가져갈 초라한 옷과 신발들을 판다. 우리나라 동네 골목마다 있는 헌 의류 수거함을 통해 거둬들인 것이 여기서 상품으로 둔갑한 것이다.
1인당 소득 400달러가 안 되는 가난한 나라다. 내 가슴 또한 그들의 가난만큼이나 찢어진다. 독립한 지 10년 넘은 동티모르가 이런데 최근 독립한 남수단 같은 나라는 어떻단 말인가? 덮어 놓고 애는 낳았는데 정작 태어난 아이는 스스로 먹고 살 방법이 없는 형국이다. 신생 국가에 돈 쓸 일은 많은데 돈 생기는 곳이 없다. 국제사회의 지원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으니 어서 자립해야 하는데, 태평양도 아니고 인도양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자리 잡은 작은 섬나라 동티모르는 아직은 먹고 살 일이 막막하다.
▲27m 높이의 거대한 예수상이 해안 동쪽 끝 작은 언덕 위에 서 있다.
약삭빠른 호주
정부 관청들이 몰려 있는 곳을 지난다. 대개 정부 건물은 식민지 시절부터 사용해 온 콜로니얼풍 건축물인 경우가 많아 겉으로는 멋진 건물들이 종종 눈에 띈다. 조금 더 가니 2중, 3중 철조망으로 삼엄하게 경계를 펼친 UN 콤플렉스(complex)가 나타난다. 이름하여 UNMIT(유엔 동티모르 통합업무단, United Nations Integrated Mission in Timor Leste)다.
철통 보안이 다소 과잉일 수 있겠으나 아직 여기는 치안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경비 용역 업무가 아마도 동티모르에서 가장 돈벌이가 좋은 사업 중 하나라고 한다. 호주인들이 지리적 근접성을 살려 경비 용역을 비롯해서 텔레컴 사업 등 동티모르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다. 호주는 동티모르에 지원금도 월등히 많이 기부하지만 독립, 평화 유지, 복구와 재건 등 모든 단계마다 주도적인 역할을 행사하고 있다.
▲딜리 성당은 2009년 새로 건립됐다. 시내 가장 서쪽에 위치했다. 사진 = 김현주
희망은 있다
서민들의 주거 지역은 참혹하다. 처리 안 된 생활하수가 마구 흐르는 개천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난다. 상수도 보급률은 그나마 수도 딜리는 조금 나아서 75% 정도지만, 아예 없는 곳도 많다. 마침 일본 정부가 동티모르 인프라 부를 도와 상수도 개선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한창 일할 나이의 청년들이지만 일자리가 없으니 가는 곳마다 그늘 아래서 놀고 있다.
그래도 지나가는 나를 보고 반가운 인사를 전하는 마음이 갸륵하다. 원래 낙천적이고 선한 사람들 아닌가? 다행스러운 것은 이 나라가 젊다는 것이다. 연평균 인구증가율도 3%를 넘는다고 동티모르 정부는 없는 살림에 ‘밑 빠진 독’이라고 한숨을 쉬지만 그래도 희망은 이 나라의 젊은이들 아니겠는가? 나라를 제대로 일군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은 기적이다.
포르투갈어 사용국
이번엔 대학가를 지난다. 인터넷 카페도 있고 복사점, 프린트점도 몇 군데 있다. 동티모르 국립대학(UNTL, Universidade Nacional Timor Leste) 캠퍼스는 작고 강의실은 초라하다. 하지만 토요일 오후 무언가를 놓고 열심히 토론을 벌이는 젊은이들의 열정을 보면서 이 나라의 희망을 읽는다. 너무나 돈쓸 일이 많은 가난한 나라에서 교육에 우선 투자하는 것은 보통 의지와 신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커리큘럼을 보니 유달리 포르투갈어 과목이 많다. 독립하면서 동티모르 정부는 자신들의 고유어인 테툼어(Tetum)와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지정했다. 포르투갈 식민 통치를 451년이나 받았지만 식민 본국 포르투갈에 대한 특별한 감정은 없다고 한다. 오히려 포르투갈의 후예쯤으로 여긴다고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동티모르는 전 세계 10여 국가와 함께 포르투갈어 사용국 연합에 가입돼 있다. 신문을 비롯해 TV, 대학교육, 중등교육 등 일상 언어로 쓰이는 테툼어(Tetum)는 현지 토착어에 포르투갈어, 말레이어(바하사어)가 섞인 혼종어다. 자세히 들어 보면 말레이어 같기도 하고 포르투갈어 같기도 하다.
▲구제품 의류를 파는 천막 시장을 발견했다. 상설 의류 시장에 더 가까워 보이는 이곳에선 초라한 옷과 신발들을 판다. 가슴 메어지는 가난이 느껴진다. 사진 = 김현주
팔라시오(Palacio) 광장
다시 거리를 걷는다. 정부청사 옆에 카사 유로파(Casa Europa)가 나타난다. 현재 EU 대표부가 입주해 있는 이 건물은 노란색으로 단장한 모습이 딜리에서 가장 예쁜 집처럼 느껴진다. 바로 옆 정부청사(Palacio do Goberno) 또한 포르투갈식 건축물이다. 길게 동서로 뻗은 하얀 집과 그 앞 광장은 포르투갈 리스본의 꼬메르시우(Commercio) 광장을 떠올리게 한다. 광장 중앙에는 포르투갈 엔리케 왕자 서거 500주년 기념비가 서 있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1960년 포르투갈 통치 시절 건립됐는데 이후 포르투갈 철수, 인도네시아 점령, 내전 등의 격변기를 어떻게 견디고 이렇듯 온전하게 남았을까 궁금하다.
▲티모르의 대표적 교통수단. 매달려 가는 것이 멋인가 보다. 사진 = 김현주
수입초과 섬나라
정부청사에서 길 건너편 바닷가 딜리항으로 간다. 앞바다를 향해 조준된 대포 4문 너머로 아타우로(Atauro) 섬이 어제보다 더 또렷이 보인다. 시련 많았던 바다가 조용히 거기 있다. 지금도 그 바다 속으로 미 해군 원자력 잠수함이 다니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바로 이 안전 통행로 확보를 위해 1975년 좌경 티모르 독립정부가 들어서는 것 대신, 반공 인도네시아 정부군의 동티모르 침공을 묵인해 주었음은 앞에 기술한 바와 같다.
저 멀리 서쪽 해안에 등대가 보인다. 내친 김에 그곳까지 가볼 작정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항구에는 컨테이너가 높이 쌓여 있다. 재미있는 것은 티모르는 수입은 많지만 수출이 별로 없는 심각한 수입 초과국이다. 화물이 실린 컨테이너가 들어왔다 나갈 때는 빈 채로 나가야 하므로 선박 회사들이 2배 요금을 받는다고 한다. 물가는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다.
아직 불안한 치안
딜리에서 가장 좋다는 호텔 티모르 앞을 지난다. 옆에는 내전 중 부서진 건물들이 방치돼 있다. 한때 아름다웠을 노랗고 파란 콜로니얼 건축물들이다. 마침내 등대가 보인다. 등대 바로 옆에는 독립기념관(Independence Memorial Hall)이 예쁜 모습의 새 건물로 서 있는데, 자세히 보니 2003년 KOICA 지원으로 건축됐다. 현재 동티모르 관광부가 이 건물에 입주해 있다.
등대 주변 주택가를 걸어서 큰 길까지 나온다. 시원한 공원, 널찍한 도로와 구획이 잘 된 주택 지역은 딜리가 계획이 잘된 도시였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제는 공공시설은 물론이고 일반 주택도 부잣집은 철조망으로 이중 삼중 보안을 해 놓은 모습이, 도시가 이전의 평화로운 모습을 되찾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임을 말해 준다.
▲영어 열기는 동티모르에서도 이어진다. 동티모르는 고유어인 테툼어와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지정했다. 하지만 그만큼 영어도 중요해 보인다. 사진 = 김현주
동티모르 통화는 미국 달러화
긴 하루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니 천국이 따로 없다. 호텔 근처 슈퍼마켓에 나가 본다. 별별 상품이 다 있어서 과일과 음료수, 주스, 맥주, 스낵과 간식을 잔뜩 사왔다. 참고로 동티모르 통화는 미국 달러화 지폐를 그대로 사용하니 여행자는 편리하다. 다만 1 달러 미만은 동티모르 동전을 별도 제작해 유통한다. 중국계 싱가포르인 슈퍼마켓 사장은 바로 옆에 패스트푸드 식당도 나란히 차려 딜리의 돈을 긁어모은다.
고유 브랜드인 패스트푸드 식당에는 무료 와이파이를 설치해 나 같은 손님을 끌어들이고 메뉴도 다양하다. 마카오식 메뉴가 많아 잠시 의아해졌으나 생각해보니 개념적으로 일리가 있다. 포르투갈이 동티모르를 지배하는 동안 중국 광동성 마카오 역시 포르투갈 지배에 있었으므로 두 지역 간 중국 상인들의 왕래가 많았고 일부는 동티모르에 정착하기도 했다.
동티모르 TV 방송
TV를 켜본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TV를 동티모르 딜리에서 본다. 그동안 묵었던 중저가 숙소 개인용 침실에는 아예 TV가 없는 경우가 많았고, 있어도 몇 채널 나오지 않았다. 여기서는 전 세계 주요 채널이 거의 다 나온다. 외딴 지역이지만 위성 수신시설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채널이 가장 많지만 그 가운데 동티모르 TV도 한 채널 있다. RTTL(Radio TV Timor Leste)은 저녁에는 동티모르 제작 편성 프로그램을 내보내지만 나머지 시간대에는 포르투갈 방송을 재전송한다.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사람들답게 오늘 저녁 프로그램은 각종 음악 행사 중계다. 참 소박하지만 이 나라에 TV 방송국이 있어서 다행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