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트루키친하우스를 처음 방문한 건 인터뷰 취재를 위해서였다. 뮤지컬 ‘로맨틱 머슬’ 출연 배우 이창민과 이현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그곳의 분위기는 독특했다. 처음엔 일반 카페인 줄 알았다. 그러나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서 잘 둘러보니, 공개된 주방과 온돌이 따끈한 좌식 공간, 그리고 여기저기 배치된 아기자기한 소품이 눈길을 끌었다.
인터뷰 중 쉬는 시간에 이창민은 구석의 피아노를 자유롭게 치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편하게 쉴 수 있는 집 같은 공간이었다. 더 편히 쉴 수 있는 개념으로 일반 카페와 차별화한 룸 카페가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도 더 집과 가까운 느낌이 색달랐다.
알고 보니 이곳은 마니아들 사이에 소문난 곳. 또 뮤지컬 ‘로맨틱 머슬’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트루키친의 실제 장소이기도 하다. 100% 예약제로 운영되고, 트루키친하우스의 주인이 그때그때 만들어주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다다라야 만날 수 있다. 1층에선 잘 보이지 않아 뭔가 꼭꼭 숨겨져 있는 비밀의 장소 같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이곳에서 셀프 리노베이션(낡은 집을 집주인이 스스로 새 집으로 변경하는 작업)으로 트루키친하우스를 만든 김희민 대표와 만났다.
쿡방(cook+방송의 합성어)에 이어 요즘은 집방(집+방송의 합성어)이 대세다. JTBC ‘헌집 줄게 새집 다오’, tvN ‘내방의 품격’, 채널A ‘부르면 갑니다 머슴아들’, MBN ‘오시면 좋으리’, XTM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 등 다양한 집방이 주목받았다. 과거 집을 새롭게 개조하는 ‘러브하우스’ 방송이 인기를 끌었던 때와 비슷한 현상이다. 다른 점이라면 이전엔 건축가 또는 건축사무소가 집을 수리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면, 요즘엔 스스로 집을 꾸미는 ‘셀프 리노베이션’을 택하는 이들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최근 모델 송경아는 셀프 리노베이션한 집을 공개하며 자신의 노하우를 전하기도 했다.
▲공사 전 메인 홀의 모습. 주거 공간으로 사용된 곳의 천장과 벽면 모두를 뜯어내는 작업을 했다. 사진 = 트루키친하우스
김 대표도 트루키친하우스를 셀프 리노베이션으로 만들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가로수길에서 식당 ‘삼식이네’를 운영할 때 가게 내부 구조를 모두 갈아엎어 새롭게 만든 적이 있다. 당시는 가게 분위기를 캠핑 콘셉트로 만들었다. 쭉 강남에서 가게를 운영하다가 연남동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2015년 6월 연남동 근처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골목을 걸으면서 이 지역에 매력을 느꼈다고.
“공원 쪽에서 천천히 걸어오며 연남동 골목들을 살펴봤어요. 번잡한 강남과는 달리, 시골스러운 느낌에서 평화로움을 느꼈죠. 현재 연남동에 개발 바람이 불고는 있지만, 아직은 옛날 가로수길을 보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기업이 들어와 완전 번화가로 탈바꿈하기 이전의 개성 있는 공간이지요. 그래서 이곳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희민 트루키친하우스 대표. 사진 = 김금영 기자
처음엔 홍대입구역 근처 신축 건물들 위주로 살폈다. 계약을 하려고 마음먹었다가 집에서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현재의 건물 사진을 보게 됐다. 평범한 주거 공간으로, 약간 예스러운 느낌이 드는 공간이었지만, 잘만 꾸미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세는 가로수길과 비교해 크게 저렴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지역의 특이성에 자꾸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건물주와 합의해 리노베이션을 진행하게 됐다.
“건물 6층에 옥상도 쓸 수 있는 탁 트인 구조가 마음에 들었어요. 사진을 보고 바로 그날 밤 전화해 건물을 보고 싶다고 했죠. 주거 공간으로 쓰던 곳인데 텅 비어 있었어요. 건물주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면 계약하겠다’고 이야기했죠(웃음). 바닥과 천장을 다 뜯고, 문턱을 없애고, 최종적으로는 재미있는 형태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건물주에게 구체적으로 의사를 전했는데 흥미를 보이면서 좋다고 하더군요. 건물주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리노베이션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방으로 사용됐던 이 공간은 공사 이후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좌식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사진 = 트루키친하우스
▲특히 여성 방문객에게 인기가 많은 좌식 방. 뜨끈한 온돌방이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김 대표는 처음부터 셀프 리노베이션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과거 가게를 캠핑 콘셉트로 꾸렸을 때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직접 구현하는 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부들을 직접 섭외했다. 섭외 과정은 의외로 수월했다. 그는 트루키친하우스의 대표 이외에 또 다른 직함이 있는데, 공연 제작사 링크컴퍼니앤서울의 대표다. 공연 일을 하면서 무대 감독, 조명 감독과 접촉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이들을 통해 목수, 전기공, 도배공, 도장공과 연이 닿았다. 셀프 리노베이션을 할 때는 이들과의 긴밀한 협조가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원하는 바를 전달해야 일을 수월히 진행할 수 있다. 유대감도 필수 요소다.
목수-전기공-도배공과의 긴밀한 협조와 유대감이 필수
“2015년 8월 말부터 공사를 시작했어요. 저는 거의 공사 현장을 지키면서 목수, 전기공, 도배공, 도장공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제가 건축 전문가가 아니기에 원하는 형태가 어떤 것인지 최대한 구체적으로 전달해야 일이 잘 진행될 수 있거든요. 그림을 그려서 원하는 바를 보여줬고, 함께 페인트칠 또는 톱질을 하기도 했죠. 인부들은 일당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시간별로 책정이 되죠. 평균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예요. 그 시간 내에 최대한 의사소통을 많이 하면서 일을 진행했어요. 유대감이 쌓이고 서로 ‘형님’으로 부르다보니, 나중에는 장식품 만들 때 제 의견이 필요하다고 빨리 오라고 전화가 오기도 했어요.”
▲트루키친하우스의 주방은 푸른색을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바다의 시원한 느낌을 지닌 이 공간에서 김희민 트루키친하우스 대표가 직접 요리를 한다. 사진 = 김금영 기자
내부 공간 37평, 외부 테라스까지 포함해 42평의 공간을 한두 달 공사했다. 2015년 10월 10일 정식으로 오픈했다. 낮았던 천장을 뜯어내 더 높였고, 전기선을 바깥으로 모두 드러냈다. 바닥은 뜯어낸 뒤 에폭시(나무로 기본 틀을 짠 뒤 바르는 마감재) 시공을 해 빈티지한 느낌을 살렸다. 큰 틀은 그대로 두되 방이었던 공간을 주방, 그리고 테라스로 바꿨다.
공간 구성은 크게 메인 홀, 좌식 방, 테이블을 갖춘 회의방, 테라스, 그리고 자신이 쓸 방으로 구성했다. 개인 공간으로 쓰는 방 앞에는 ‘제한구역’이라는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메인 홀에는 피아노와 TV가 있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온돌이 따끈하게 들어오는 좌식 방은 특히 여성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다. 소파도 비치돼 수다를 떨다가 누워서 편히 노는 광경이 흔하다. 바깥이 훤히 보이는 공간은 연인들이 주로 찾는다. 야외 테라스는 봄이 돼 날씨가 따뜻해지면 찾는 발길이 늘어난다.
▲원래는 방이었던 공간의 지붕을 없애고 야외 테라스로 만들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테이블을 놓고 운영할 계획이다. 사진 = 김금영 기자
비어 있던 공간은 직접 구입한 중고 가구, 지인에게 선물 받거나 갖고 있던 소품들로 꾸몄다. 스탠드마이크, 피아노, 음악 CD, 잡지, 인형 등 다양하다. 가구들은 평소 잘 가는 황학동에서 구입한 물품들이다. 김 대표는 “잘 살펴보면 중고 중에 쓸 만한 것들이 많다. 저렴하게 공간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재료비, 인건비, 가구 등 소품 비용까지 모두 포함한 셀프 리노베이션 비용은 2600~2700만 원 정도가 들었다. 비용 절감에는 시장 조사도 한 몫 했다. 김 대표는 “보통 시공을 할 때 목재 재료 등에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그런데 가격 조사를 통해 직접 재료를 보고 구하러 다니면서 비용을 줄였다”며 “목재 재료와 인건비가 약 240만 원, 전기 레일 등 조명 공사에 180만 원, 바닥 페인트칠 및 재료비에 260만 원, 가구에 300만 원, 주방 시설에 약 500만 원 정도가 들었다. 그리고 추가적인 부분들까지 합하면 약 2700만 원이 든 셈”이라고 말했다.
▲메인 홀을 장식한 장식품은 김희민 트루키친하우스 대표가 직접 인테리어 잡지를 보고 차용한 결과물이다. 목수들과 함께 톱질을 해서 완성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셀프 리노베이션 때 또 중요한 점으로 김 대표는 “평소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을 꼽았다. 좋은 공간을 갖고 싶다는 두루뭉술한 계획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어떤 소품을 들여놓고, 공간을 어떻게 꾸미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내 집 같은 공간’ 위해 직접 발로 뛰는 과정
“셀프 리노베이션을 결정하고 연남동 주변을 많이 돌아다녔어요. 요즘은 추세가 신축보다는 리노베이션이더군요. 가격 면에서 더 저렴한 측면도 있고, 기존 공간과 새 공간 사이에서 꾸며가는 재미도 있으니까요. 이런 공간들을 많이 보러 다녔어요. 만들고 싶은 공간과 비슷한 콘셉트의 공간을 가서 살펴보면 많이 도움이 돼요. 어떤 가게에서는 홀을 집중적으로 보고, 다른 가게에서는 주방 쪽을 집중적으로 보는 등 분류별로 사진을 다 찍고 조합했죠. 연남동뿐 아니라 이태원과 가로수길도 많이 갔어요. 또 관련 책도 살폈습니다. 메인 홀에 걸린 장식품도 인테리어 책을 보다가 마음에 들어서 제 방식대로 차용해 만든 거예요. 셀프 인테리어 할 때는 본인의 손발이 고생해야 한다는데 그 말이 맞아요. 대신 그만큼의 뿌듯함도 있어요. 재미도 있고요.”
기본적으로 메인 홀의 가장 큰 테마는 ‘숲’과 ‘바다’다. 벽의 큰 장식은 나뭇잎을 상징하고, 주방 쪽에는 시원한 푸른색으로 바다의 느낌을 살렸다. 복잡한 곳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힐링하고 싶은 김 대표의 마음이 절로 느껴진다.
이를 비롯해 전체적으로 공간을 만들 때 가장 주안점으로 둔 것은 ‘내 집 같은 공간’이다. 사실 트루키친하우스는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마련한 것은 아니다. 본업은 공연 제작사 대표에 더 가깝다. 다만 평소 요리 하기를 좋아했고, 사람들과 만나기를 즐겼다. 하지만 좋아하는 이들과 편하게 만나고 놀 장소의 물색이 늘 고민이었다.
“자기 집처럼 편해서” 새벽까지 머무는 손님들
“공연은 어차피 평생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동시에 힐링을 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과거 가로수길에서 가게를 운영할 때는 두 일을 병행하는 게 아주 벅찼죠. 그래서 떠올린 게 트루키친하우스예요. 홈페이지에도 ‘트루키친하우스는 집입니다’라고 소개해요. 그 말이 맞아요. 방문객이 오면 ‘우리 집에 잘 왔다’고 맞이해요. 편하게 공간을 이용하도록 하고, 제 개발 메뉴를 선보이기도 하고. 저는 지치면 제 개인 공간에 들어가서 쉬기도 하죠.”
▲야외가 모두 바라보이는 작은 베란다를 메인 홀 옆에 구성해 놓았다. 사진 = 김금영 기자
처음엔 예약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밀려드는 손님으로 집 같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기 힘들다는 생각에 과감히 100% 예약제로 바꿨다. 가게 오픈은 주로 오후 5~6시부터 이뤄진다. 낮 시간엔 주로 공연 관계자들과 미팅을 갖고, 회의를 하며 일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다.
문을 닫는 시간은 따로 없다. 그러다보니 새벽 4시까지 안 가는 손님들도 있었다. 공간을 집처럼 편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주로 공연 관계자들이 많이 찾는데, 입소문이 나다보니 가수 김원준이 공연 뒤 회식 장소로 점찍고 찾아오기도 했다.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 예약은 하루에 최대 3팀 정도만 받는다. 최근엔 뮤지컬 ‘로맨틱 머슬’ 일정으로 바빠서 운영하지 못했는데 4월부터 다시 운영할 계획이다.
“공사할 때 밤에 모두 떠나고 혼자 조명을 켜고 맥주를 마시면서 공간을 바라본 적이 있어요. 처음엔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공간이, 제가 생각한대로 서서히 바뀌는 과정이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더군요. 이곳은 저의 집이자, 모두의 집이기도 해요. 혼자와도 좋고, 여러 명이 와도 좋아요. 수다를 떨면서 편히 놀다 가는 거죠. 앞으로도 재미있는 소품을 들이는 등 꾸준히 공간을 재미있게 꾸리려 해요. 이 공간이 오래도록 재미있게 유지되길 저도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