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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맞는 집 ①] 작은 집도, 싼 집도 아닌 ‘최소의 집’

정영한 건축가 “우리 삶 이야기 담은 집 많아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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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9호 안창현⁄ 2016.04.15 10:59:04

▲자신의 건축 철학을 이야기하는 정영한 건축가. (사진=정영한아키텍츠)


(CNB저널=안창현 기자) 우리에게 ‘집’은 뭘까? 새삼스러워 잘 묻지 않는 질문이다. 그럼 우리가 집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뭘까? 대다수 사람에게 부동산, 집값, 전월세 등의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까? 

“집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몇 평대에 방 몇 개’ 이상을 생각하지 못한다.” 정영한아키텍츠의 정영한 건축가는 “집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생각하면 이런 점이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사실 취향도, 성격도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똑같은 모양의 집에 사는 건 이상하다. 더구나 한국에선 압도적인 인구가 비슷비슷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정 건축가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집에 사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자고 제안했다. 모두가 획일화된 집에 그냥 산다는 건 분명 개개인에게 그다지 행복한 일이 아니고, 집은 삶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내게 집이란 무엇일까?”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

정 건축가는 그간 한 사람,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집을 짓고자 노력해왔다. 그가 주거 공간에 다양한 실험을 해온 배경이다. 2013년부터 그가 주도적으로 열고 있는 ‘최소의 집’ 전시 프로젝트 또한 그런 고민의 결과다. “우리가 평생 그 안에 들어가 사는 집에 대해 한 번쯤 질문할 필요가 있다. 나는 어떤 집에 사는지, 또 살고 싶은지를.”


획일적인 주거 문화에
자산 가치로만 취급되는 ‘집’ 문제

땅콩집 열풍이 일던 시기가 있었다. ‘1억에 내 집 짓기’ 같은 제목의 책들이 인기를 얻기도 했다. 작지만 자기 집을 짓는 데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증거다. 이 현상은 새로워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집을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다룬다는 점은 이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당시 정영한 건축가는 주택을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집에 대한 인식과 쓰임새는 세대가 바뀌며 달라졌기 때문이다.

▲‘최소의 집’의 네 번째 전시 당시 모습. (사진=정영한아키텍츠)


“1인 가구 수가 급증했고, 출산을 꺼리는 딩크족 2인 가구 또한 증가세가 가파르다. 경제 발전의 주역이었던 베이비붐 세대에게 집이 소유의 대상이었다면, 자식들은 집을 다르게 접근했다. 여러 가지로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세대별로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이를 반영하는 집 설계가 건축가에겐 실질적인 숙제가 됐다는 얘기다.

정 건축가에겐 우리 주택 문화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고, 그는 집의 규모나 형태보다 거기 사는 사람과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접근들을 시도했다. 그리고 젊은 건축가들과 함께 새로운 주거 대안을 모색하는 전시를 기획했다. ‘최소의 집’ 전시 프로젝트였다.

“5년간 매년 2회씩 진행할 계획이었다. 각 전시마다 3명의 건축가가 참여해 그들의 완공작을 선보이는 동시에 전시 주제인 ‘최소’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보여주는 대안 모델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다.”

올해도 어김없이 상반기 ‘최소의 집’ 전시가 준비 중이다. 지난 3년간 이 전시에 참여한 건축가들은 저마다 자신이 꿈꾸는 최소의 집을 선보였다. 그런데 왜 ‘최소’의 집일까? 정 건축가는 “집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다르게 해석하고 싶었다. 단지 ‘작은 집’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최소의 가치로부터 출발하자는 의미로 ‘최소의 집’이란 제목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땅콩주택, 협소주택 등 요즘 작은 집을 지칭하는 다양한 용어가 있다. 최소의 집은 이와 조금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셈이다. “최소라는 가치를 통해 각자의 삶의 방식과 그에 맞는 적정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고, 집의 유형은 어떠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는 지적이다.

발코니 집, 15평 집 등 다양한 모델 선보여

정 건축가는 “아무래도 ‘최소의 집’이라고 하니까 주로 규모의 측면에서 최소를 정의하기가 쉬웠다. 본격적으로 그 의미를 확장하기 위해 세 번째 전시부터는 부제를 달았는데, 세 번째 전시는 ‘유휴 영역을 찾아서’였다”고 했다. 내부 공간에서 소외되고 버려진 작은 공간들을 ‘유휴 영역’으로 보고 이를 재발견하자는 의도였다.

매해 진행한 전시를 통해 건축가들은 저마다 집에 접근하는 흥미로운 관점을 선보였다. 현대 주거의 독특한 공간이랄 수 있는 발코니에 주목해 각 방마다 발코니를 연결하고 이를 통해 전체 공간을 재해석하는 작업이 있는가 하면, 작은 공간에서 생겨날 수 있는 여러 문제에서 출발해 1인 가구의 확장성과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대안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15평 안에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만 담은 ‘5㎡ 하우스’ 같은 집도 있었다.

▲2014년 완공된 영종 신도시 운서동의 ‘앵두집’을 소개하는 전시. (사진=정영한아키텍츠)


▲한옥의 별채 개념을 차용해 단출한 현대식 주거공간을 설계한 권경은 건축가의 ‘신창동’ 집 전시. (사진=정영한아키텍츠)


지난해 7월 다섯 번째 전시는 '시인 건축가'로 불리는 함성호의 기획이 더해져 ‘타인의 시선, 하나 – 삶의 최소주의’라는 부제로 진행됐다. 법적으로 자동차를 위한 도로와 주차장을 요구받지 않는 연면적 50㎡ 이하의 집을 통해 최소주의를 지향하는 모델, 자연으로부터 땅을 빌려 집을 세운다는 특이한 접근법이 흥미로운 최소 주택 등을 소개했다.

그 동안 전시를 통해 건축가들이 제안한 ‘최소의 집’은 단지 작은 집도, 가격이 싼 집도 아니었다. “우리 주변에는 죽어 있는 불필요한 공간들이 생각보다 많다. 최소의 의미는 전시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적정한 공간의 크기를 능동적으로 찾아보자는 제안이기도 했다. 건축가들이 제안하는 다양한 공간을 통해 이를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주택에 대한 실험 9×9와 6×6

정 건축가 스스로 다양한 주택 공간의 가능성을 선보이기도 했다. 2011년 의뢰를 받고 설계한 ‘9×9 실험주택’이 첫 결실이었다. 70대 노모 화가를 둔 건축주 부부는 어머니가 머물 작업실 겸 원룸을 원했다. 거주자 연령을 고려해 규모가 작으면서도 최적의 공간을 고민하던 정 건축가는 군더더기를 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위해 그는 ‘퍼니처 코리도(furniture corridor)’ 기법을 사용했다. 집의 벽 쪽으로 가구를 모두 몰아넣고 사용할 때마다 열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구뿐 아니라 배기나 환기, 냉난방 설치까지 벽에 매입해 단순함을 유지했다. 또 70대 고령임을 감안해 자연을 최대한 가까이서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래서 집 안에 유리벽을 세워 그 공간에 나무를 심고 햇볕이 들어오도록 했다.

정 건축가는 “사실 가구가 방을 결정한다. 소파가 있으면 거실, 침대가 있으면 침실이 된다. 9×9 주택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집주인은 방을 거실로도, 또 작업할 때는 작업실로 사용한다. 쓰임에 따라 방의 성격이 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을 설계하면서 미리 안방, 거실, 작업실 등으로 결정해 놓는 것이 아니라 거주자 스스로가 살면서 방의 쓰임을 정한다. “여기서 건축은 거주자에 최소한으로 개입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가이드를 주기는 하되 공간을 결정하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정영한 건축가가 최근 설계한 ‘다섯 그루 나무’는 부산 구도심 초량동에 위치해 있다. (사진=정영한아키텍츠)


▲‘다섯 그루 나무’로 이어지는 오래된 골목길. (사진=정영한)


6×6 주택에서도 정 건축가는 재밌는 주택 실험을 계속했다. 9×9 주택이 가로, 세로가 각각 9m과 높이 6m의 주택이었다면 6×6 주택은 가로, 세로 6m에 높이 9m인 주택이다. 또 이전 집이 노모의 집이었다면, 이번 집은 아이가 없는 젊은 부부와 반려견 두 마리의 집이었다.

6×6 주택에서 중요한 것은 반려견과 부부가 어떻게 함께 공간을 점유하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정 건축가는 “부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문제여서 설계 초기부터 사람과 개의 스케일을 동시에 고려했다”고 했다. 집의 높이는 전체 9m였지만, 1개 층이 3m로 구성한 3층짜리 집이 아니라 중앙에 놓은 계단을 중심으로 한쪽은 개들이 통행 가능한 1.5m 높이로, 나머지는 사람이 불편 없이 다닐 수 있는 2.3m 높이로 결정했다. 이 집에 누가 어떻게 사는지를 6×6 주택은 그 구조만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주택 가운데 배치한 퍼니처 코리도에는 집에서 사용할 다양한 가구와 위생기, 환기구 및 전기 배관 등이 놓였고, 심지어 이곳에 두 반려견의 집까지 포함돼 있다. 그로 인해 여유로워진 나머지 공간은 부부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6×6 주택에서 재미있는 점은 내부와 외부의 경험이 교차되도록 배려한 부분이다. 방에서 방으로 이동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다 보면 야외의 테라스가 내부 방으로 연결되고, 중심의 천장은 하늘로 열려 있어 계절의 변화를 바로 느낄 수 있다.

“당신은 어떤 집에 살고 있습니까?”

지난해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한 부산 초량동의 ‘다섯 그루 나무’ 게스트하우스 또한 정 건축가의 집에 대한 흥미로운 접근을 보여준다. 그는 여기서 집의 거주자뿐 아니라 주변 환경과 맥락을 적극 고려했다. “다섯 채의 게스트하우스 건물 사이사이 길도 동네 분위기와 자연스레 어우러지도록 했다. 지역 주민들은 마을에 난 길로 착각하기도 한다. 게스트하우스가 마을의 일부가 되도록 하려고 노력했다.”

또 초량동의 여느 집들처럼 담장도 없고 비탈길 많은 동네의 특성을 그대로 살린 다소 경사 높은 계단 덕분에 게스트하우스 이용 여행객들은 숙소에 머무는 동안 초량동이라는 지역을 직접 체험하는 덤까지 누리게 됐다. 이 모두가 초량동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결과다.

▲주변 초량동의 여느 집들처럼 담장 없이 동네 특성을 그대로 살린 '다섯 그루 나무’ 게스트하우스. (사진=정영한아키텍츠)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인 다섯 그루 나무는 집이 주변과 동화돼 풍경의 일부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었다. 최근 많이 논의되는 도시 재생이라는 것이 노후한 것들을 다시 리노베이션 하는 물리적 재현만은 아닐 것이다. 그 장소가 가진 고유한 특질을 관찰하고 주변 환경과 새롭게 관계를 만드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과거 경험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섯 그루 나무는 정 건축가 나름의 도시 재생 방법, 구도심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방법인 셈이다. 정 건축가는 “집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가장 먼저 고민한다”고 했다. 이는 집에 사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과 이야기를 반영하는 것에서 나아가, 집의 주변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까지 포함한다.

정 건축가에 따르면, 집은 거기 사는 사람과 주변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스미는 장소다. 그런 만큼 그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집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런 만큼 우리 삶이 더 풍성해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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