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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약자에게 총쏘고 훔쳐보는 관음증의 연극 '게임'

총 맞으면서도 집 지키려는 젊은 세대의 잔혹한 현실 꼬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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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9호 김금영 기자⁄ 2016.04.15 11:37:51

▲연극 '게임'은 애슐리 부부가 극단적인 생존 게임이 펼쳐지는 집에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사진=두산아트센터)

“탕!” 조용한 공연장에 총성이 울려 퍼진다. 무대 위 멀쩡히 서 있던 한 여배우가 쓰러진다. 그리고 무대 위쪽 공간에 자리 잡은 영상 기기 속 사람들은 난리를 친다. 그런데 응급차를 부르기는커녕 하나같이 웃겨 죽겠다는 표정이다. “와! 씨X! 맞았어!” “너무 안 움직이잖아요! 쏘는 맛이 있게 좀 도망 다니라고 하면 안 돼요?” 섬뜩한 광경.


연극 ‘게임’은 영국 극작가 마이크 바틀렛의 최신작으로, 하우스 푸어(집을 보유하고 있지만 대출 이자 부담으로 빈곤하게 살거나, 월세 등 주거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극단적인 생존 게임을 다룬다. 2015년 2월 영국 초연 이후, 국내엔 올해 첫 선을 보인다.


집 없이 힘든 생활을 전전하던 부부 애슐리와 칼리가 멋진 가구와 아늑한 침실, 깨끗한 욕실까지 완벽한 집에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에겐 월급처럼 돈도 제공된다. 또 월세나 공과금 등 전혀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모니터 뒤에 있는 고객에게 그들의 생활을 온전히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 울릴지 모르는 총성의 존재.


▲무대 위 설치된 모니터엔 고객들이 등장한다. 이 공간에서 고객들은 애슐리 부부에게 총구를 겨눈다.(사진=두산아트센터)

데이빗은 애슐리와 칼리의 관리인이다. 그들의 삶을 훔쳐보러 온 고객에게 총을 쏘는 법을 알려주고, 고객은 타깃을 정한다. 한 발에 100만 원, 여자를 쏠 경우 가격이 더 붙어 한 발에 120만 원이다. 엄청난 고가 탓에 손님이 과연 있을까 싶지만 이 한 발 값을 우습게 알고 찾아오는 고객들이 숱하다. 힘든 환경 속, 어떤 어려움도 꿋꿋하게 버텨 내겠다는 각오로 집에 들어온 부부는 함께 목욕을 하던 도중 첫 총성을 맞는다. 애슐리가 쓰러지자 칼리는 오열한다. 그 광경을 본 남자 고객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애슐리가 총성에 쓰러진 순간 공연은 얼마 안 가 막을 내릴 것만 같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애슐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등장한다. 그때 총성의 실체는 마취총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런데 여기서 ‘마취총이라 다행이구나’ 하며 안심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 관객은 소름이 끼치게 된다. 진짜 총이면 문제고, 마취총이라면 괜찮다는 말인가? 충격적이었던 첫 자극을 맞이한 다음부터는 점차 익숙해져 그 자극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


이 소름은 무대와 관객석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서도 비롯된다. 무대를 중심으로 관객석이 주위를 둘러싸는 구조인데, 배우들은 관객석 사이로 나타났다가 다시금 사라진다. 그리고 무대 위 모니터 속에 배우들이 등장해 오히려 관객들을 쳐다보는 듯한 반대의 상황도 연출된다. 이에 따라 관객들은 한 부부의 삶을 훔쳐봄과 동시에, 자신들 또한 어느 순간 배우들에 의해 관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지점에서 극은 관음증의 폭력성을 이야기 한다.


무대와 관객석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서 관음증 경험
무대 위 공간이 아닌 현실에 펼쳐지는 서바이벌 게임


이 폭력성은 극이 진행될수록 더욱 강해진다. 처음 두려움에 떨던 부부는 점차 익숙해지면서 보란 듯 고객들 앞에서 야릇한 관계를 맺으려 한다. 그리고 부부를 바라보는 고객들도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한다. 아이를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듯한 여성은 애슐리 부부가 아닌 어린 자녀에게 총을 겨눈다. 그리고 마취총에 애슐리 가족이 쓰러질 때마다 모니터엔 동물을 사냥하는 영상이 마치 게임 화면처럼 재구성돼 펼쳐진다.


마취총에 쓰러졌던 아이는 마취가 풀린 뒤 아무렇지 않게 “나 게임기 줘” 하고 이야기한다. 정작 자신이 고객의 게임 속 타깃이라는 건 아는 걸까. 그러는 중 이런 종류의 게임 업종이 라이벌 업체까지 등장하면서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음도 암시하는 대사도 나온다. 도대체 인간의 게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


▲애슐리 가족은 좋은 집을 얻은 대가로 고객들에게 온전히 자신들의 삶을 공개해야 한다.(사진=두산아트센터)

그런데 이 가운데 극은 더욱 잔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고객의 관음증의 대상이 되고, 자신들의 아이가 마취총에 쓰러지는 와중에도 애슐리 부부는 집을 포기하지 않는다. 절대 나갈 수 없다는 각오다. “나가서 또 거지같이 살 거야? 친구 집 전전하면서 또 그렇게 살래?” “남들은 더 한 것도 하는데 이걸 못 참아?”


현재의 집에 들어오기 전에는 닥쳐올 현실이 두려워 아기 갖기도 포기했던 부부다. 삶의 존엄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집을 지키려는 애슐리 가족의 모습은 짠한 동시에 답답하다. 집을 떠나려는 노력을 애슐리가 시도하기는 한다. 하지만 기껏 알아본 자리는 시급 6030원 짜리. 세 가족이 먹고 살기엔 턱도 없다.


참 답답한 현실이다. 또 이 현실이 가상 세계가 아니라, 현 시대 젊은 세대가 실제로 겪고 있는 일이기에 더욱 잔혹하다. 이들에겐 어디 있는지 모를 마취총을 피하는 게 게임이 아니다. 사는 것 자체가 서바이벌 게임이다.


이런 와중에 70분간 극은 긴박하게 흘러간다. 처음엔 단순히 부부의 생존 게임으로 시작됐던 이야기는, 극의 말미에 치달아 현실에서 더욱 나약해질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씁쓸한 결말을 맞이한다. 애슐리 가족에게는 이 집에 있어도, 이 집을 떠나도 끝없는 서바이벌 게임이 펼쳐질 뿐이다. 공연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Space)111에서 5월 15일까지.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가 모호하게 꾸려진 극장 공간은 누구나 관음증의 가해자이자, 또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사진=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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