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원 중국벤처 창업] 인공지능이 인간 돕게 만드는 철학
(CNB저널 = 신동원 네오위즈 차이나 지사장) 세상이 떠들썩했다. 바둑천재 인공지능, 알파고 高先生 때문이다. 빅데이터 기반의 컴퓨터 망을 가지고 인간 최고수를 이겨버리는, 갑자기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 듯한 AI(인공지능) 신드롬이 한창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고 있고,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구글의 AI 회사는 기업 가치가 폭등했다. 컴퓨터 망과 용감한 전투를 벌인 이세돌 9단도 그의 인격과 열정 때문에 박수를 받고 있다. 마치 인류를 대신해 컴퓨터와 싸워 준 전사와 같은 이미지라고 할까?
기술이 발전하고,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면 정말 인류가 행복해질까? 산업혁명 시기에는 기계의 발전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우려 때문에, 영국 북부에서는 직물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이 일어났다. 밤마다 복면을 하고 기계를 파괴하는 이 운동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스꽝스런 광경이다.
기술 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
혹시 지금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AI 퇴치 운동을 벌인다면 꽤나 많은 호응을 받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 100년이 지난 시점에는, 과거의 러다이트 운동처럼 우스꽝스런 행동으로 치부될 것이다. 세상의 발전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AI의 발전 자체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기술 발전의 신화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컴퓨터를 모르면 이제 컴퓨터에 지배받는 세상이 온다고도 하고, 어린 시기에 조기 코딩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문과가 천대를 받고 공대로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한때 공돌이라 천대받던 시대가 불과 20년 전인데, 이제 엔지니어가 아니면 세상에 쓸모가 없는 사람인 양 취급하기도 한다.
컴퓨터가 더 잘할 수 있는 직업은 선택하지 마라?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이제 미래 시대에는 ‘컴퓨터가 인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의 직업은 아예 선택하지 말라’는 미래학자들의 조언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형국이랄까?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AI가 인간을 뒤로 밀어내는 이 기묘한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3월 15일 오후 서울 중구 새문안로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와 대국이 끝나고 진행된 시상식에서 이 9단이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사진 = 연합뉴스
객관적으로 컴퓨터보다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는 철학자, 변칙스런 상황에 계산이 아닌 직감으로 대처해야 하는 서비스업, 논리도 계산도 아닌 믿음의 영역인 종교 지도자 등 생산적인 일은 다 컴퓨터에게 맡기고, 인간은 애매모호한 일만 하고 살라는 거만한 컴퓨터의 이야기를 우리는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대학내 학문간 언밸런스
대학에선 새 학기마다 수강 신청 전쟁이 벌어진다. 인기있는 과목은 1초 안에 정원이 차버리기에 학생들끼리 인기 과목을 두고 금전 거래가 벌어지기도 한단다. 그런데, 인기있다는 과목들은 모조리 실용적이고 기술적이고 취업에 도움이 되는 과목들이다. 아무도 철학이나 인문학이나 경제사상사 같은 의미있는 강의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과목들은 10여년에 걸쳐 차례로 폐강이 되었다. 인문학 교수들은 찬밥 신세가 되고, 학교의 빌딩을 보면 단과대 재정 상황을 금방 알 수 있다. 새 건물은 공대, 의대, 경영대이고, 전통의 넝쿨 건물들은 인문학 건물들.
▲바둑의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AI) 알파고에 패한 데 이어 일본 장기의 고수가 컴퓨터와의 대결에서 첫 판을 내 줬다. 이와테(岩手)현에서 지난 4월 9∼10일 벌어진 야마자키 다카유키(山崎隆之·35) 8단과 컴퓨터 소프트웨어 포난자(PONANZA)와의 덴오센(電王戰) 첫 대국에서 포난자가 승리했다. 10일 첫 판 패배가 확정된 야마자키 8단이 허탈한 웃음을 보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기술 자체는 인류에게 아무런 가치도 전달하지 못한다.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하여, 인건비 절감을 위하여 개발된 수많은 기술들은 자본가의 지갑을 두텁게 하겠지만, 노동자들에게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일본 연구진이 개발한 인공지능(AI) 로봇. 환자의 증상 등을 입력하면 유력한 병명과 그 확률을 계산해내는 시스템이다. 사진 = 연합뉴스
기술에도 철학이 필요하다. ‘기술 철학’ 과목이 대학에 개설되어야 한다. 우리가 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를, 기술의 가치 지향적인 방향을 공유하는 학문이 절실히 필요하다. 세상이 기술과 기능 위주의 서열로 자리매김되는 끔찍한 미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지식을 공유하고, 인간보다 더 계산에 빠른 컴퓨터를 적시에 활용할 수 있는 ‘망의 민주주의’도 필요하다. 기술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도구로 자리매김 되어야지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의 행복권을 빼앗는 데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다시 철학으로
AI 기술이 인간이 다룰 수 없었던 불치병을 치유하고, 생명을 다투는 상황에서 고도의 정밀한 수술을 가능하게 하고, 불구자가 삶의 활력소를 얻게 하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면, 모두가 AI 기술을 환영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과거 인터넷 시대, 모바일 혁명도 모두가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해 왔다. 대신에 전통산업에 묵묵히 종사하던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거나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했다. AI 기술이 발전하면 분명히 인류에게 축복된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지만,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위 구식 사람들은 두통에 시달릴 수도 있다. 기술은 가치 중립적이다. 기술을 가치있게 만드는 철학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신동원 네오위즈 차이나 지사장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