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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치열한 작가 정신은 은평에서 움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한국문학 속의 은평전' 개막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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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0호 김금영 기자⁄ 2016.04.20 15:40:28

▲'한국문학 속의 은평전'을 준비한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장.(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1988~89년 서점을 운영하며 많은 책을 접했습니다. 당시는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이 그어진 문학의 부흥기 시절이었죠. 치열한 작가 정신이 살아있었어요. 그리고 그 작가들이 모인 곳이 은평이었습니다.”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장은 ‘한국문학 속의 은평전’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전시는 해방 전후 은평에 거주하던 문인들 130여 명의 작품 초간본과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은평의 거주 작가, 연관 작가들의 희귀 초간본 14종을 공개하는 자리다.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 건물 입구 쪽에 마련된 '문학인의 벽'. 은평 출신 작가 100여 명의 약력, 주요 작품, 얼굴 사진을 패널로 제작해 55m 길이의 벽에 전시했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장 입구 쪽에는 '작가의 서재'가 마련됐다. 신달자, 복거일, 신경숙, 김원일, 박범신, 이근배, 김지연 등 100여 명의 은평 문인과 은평 문학의 실재인 700여 종의 초간본을 소개한다.(사진=김금영 기자)

정지용, 윤동주, 황순원, 김동인 등 모두 이름만 들어도 아는 한국 문학사의 주요 작가들이다. 황 관장은 이들의 공통점을 은평에서 발견했음을 짚는다. 89~90년 전국의 문인들이 은평에 모여서 일명 ‘은평클럽’을 형성했다. 이 클럽엔 15년 이상 작품 활동을 한 사람들만 포함됐는데, 은평에서만 100명 가까이 모였다는 것.


상당수 문인들이 모여살기 시작한 연유로 은평구는 서울의 ‘문인촌(文人村)’으로 불리게 됐다. 1987년 문학지에 실린 문인 주소록을 기준으로 나온 통계에 따르면 당시 서울에 거주했던 문학인 1428명 중 97명이 은평구에 주소지를 둔 것으로 확인되는 등 구체적인 자료도 존재한다.


황 관장은 “그 시절 작가들은 돈이 없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문학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그 가운데 지리적으로 서울에 가까우면서도 서울보다는 월세나 땅값이 저렴한 은평에 많은 문인들이 모였다”며 “당시엔 힘들었지만 20~30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 가난이 행운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 은평이 문학의 중심지가 되지 않았는가” 하고 감회를 밝혔다.


▲정지용 시인의 녹번리 초당을 복원한 모형이 전시돼 있다. 1948~50년 이 초당에서 집필에 전념했다고 한다.(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는 은평에서 활동한 문인들로 구성됐던 은평클럽에 관해서도 소개한다. 문학 지성체 모임인 은평클럽의 성격과 작가 20명의 초간본을 소개한다.(사진=김금영 기자)

먹고 살기 힘든 현실이 많은 문인들을 은평에 모이게 한 첫 번째 이유였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이들에게 문학 정신을 불태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해방이후 1980년대까지 문학은 분단과 계층이라는 현실 문제를 담았고, 작가들의 삶 또한 이를 바탕으로 했다. 소시민적 삶을 은평이라는 현실 공간에서 체험하고, 생활환경이 그대로 작품의 무대가 된 것. 이호철의 ‘문’, 정대구의 ‘수색동하늘’, 이유경의 ‘구파발 연시’도 이 과정에서 탄생했다. 또한 70년대 언론인 마을로 조성된 기자촌과 1980년대 결성된 문인회 ‘은평클럽’ ‘은평낚시모임’은 지역 문인들을 규합하는 장이 됐다.


이번 전시엔 많은 문인들이 힘을 보탰다. 앞서 언급된 정지용, 윤동주, 황순원, 김동인은 물론 이호철, 최인훈, 신달자, 복거일, 신경숙, 김원일, 서기원, 박범신, 이근배, 김지연 등 130여 명의 작품과 그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김훈과는 특별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처음 김훈은 오히려 “은평이 무슨 문학촌이냐”고 의구심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황 관장이 “은평은 과거 가난하고 공장도 없는 힘든 곳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문학이야말로 가난하고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아니었는가” 하고 반문하자 적극적으로 전시에 협조를 했다고. 황 관장은 “김훈이 자신의 원고와 책은 물론, 아버지 김광주 선생이 가진 작품까지 이번 전시를 위해 공개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어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많은 작가들을 만났는데, 문학이 은평에 희망을 줬으면 한다는 목소리는 모두 같았다”고 덧붙였다.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년 초간본.(사진=김금영 기자)


정지용-윤동주 시집 초간본 등
14종의 희귀 초간본 공개


전시는 크게 6가지 파트로 구성된다. 가장 먼저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 건물 입구 쪽에서 ‘문학인의 벽’을 만날 수 있다. 은평 출신 작가 100여 명의 약력, 주요 작품, 얼굴 사진을 패널로 제작해 55m 길이의 벽에 전시했다. 또한 박물관 건물 기둥 5개를 활용해 은평 출신 5인의 작가(정지용, 이호철, 최인훈, 신달자, 김훈)의 약력과 주요 작품을 소개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해방전후 은평의 문인’을 소개한다. 1948년부터 은평구 녹번동에 거주했던 정지용과 1975년 은평구 신사동으로 옮겨온 숭실중학교 출신 문인(윤동주, 김동인, 김현승, 문익환)들의 문학적 관점을 느낄 수 있다. 정지용 시집 1935년 초간본과,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년 초간본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황 관장은 “윤동주 시집 초간본은 두 권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한 권을 이번 전시를 위해 국내 소장자가 제공했다”며 “방송 등을 통해 윤동주 시집 초간본이 이야기된 적은 있지만 전시에서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 파트는 ‘은평클럽 황무지에서 문예부흥을 꿈꾸다’이다. 문학 지성체 모임 은평클럽의 성격과 작가 20명의 초간본을 소개한다. 이어 분단문학의 양대 산맥이라 평가받는 이호철, 최인훈의 대표 작품 초간본을 모두 모아 공개하는 ‘분단문학의 두 거목, 은평에서 움트다’가 네 번째 파트로 펼쳐진다.


▲이호철, 최인훈의 대표 작품 초간본을 모두 모아 공개하는 '분단문학의 두 거목, 은평에서 움트다' 섹션이 전시장에 구성된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김광주와 그의 아들 김훈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언론인 마을 기자촌에서 문학정신으로' 섹션에서는 두 부자의 초간본을 모두 공개한다.(사진=김금영 기자)

다섯 번째 파트는 김광주와 그의 아들 김훈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언론인 마을 기자촌에서 문학정신으로’다. 두 부자의 초간본을 모두 공개하며 작품 세계를 돌아본다. 마지막으로 전시장 입구 쪽에 ‘작가의 서재’가 마련됐다. 신달자, 복거일, 신경숙, 김원일, 박범신, 이근배, 김지연 등 100여 명의 은평 문인과 은평 문학의 실재인 700여 종의 초간본을 국내 최초로 동시에 소개한다.


황 관장은 “이번 전시에서 한국 문학의 뿌리이자 고향인 은평 문인의 흔적을 모아서 자신 있게 소개한다. 최초로 동시에 공개되는 14종의 희귀 초간본과 수집도서 700여 종의 초간본을 만나는 즐거움을 이 봄과 함께 누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 1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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