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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이강업 교수 사진전 ‘관조’, 건축을 넘어 삶의 흔적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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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0호 안창현⁄ 2016.04.22 11:55:16

▲‘마추픽추’, 15세기, 페루. (사진=이강업)


(CNB저널=안창현 기자) 공간을 다루는 건축에서 사진은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고대 건축물을 기록한 사진은 우선 사료적인 가치를 지닌다. 건축물을 객관적으로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때때로 건축 사진은 이런 기록의 의미를 넘어서기도 한다.

이강업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지난 30여 년간 강단에 서면서 수많은 건축물을 현장에서 만나왔다. 그럴 때면 답사 기록을 사진으로 남겨 강의 자료로 활용했다. 그는 수많은 사진을 찍고 방대한 자료들을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데, 그러면서 “건축 사진은 건축이란 예술을 담아내는 매체이자 동시에 작품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강업 교수는 건축학도 시절부터 사진이란 매체에 일찍이 관심을 많았다. UC 버클리 건축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에서 도시설계를 전공한 그는, 유학 시절부터 사진을 열심히 배웠다고 한다. 1982년 한양대 건축과 교수로 재직하면서부터 현지답사 여행을 통해 본격적으로 건축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버클리 대학과 롱우드 대학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국내에선 토포하우스와 63 스카이아트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진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가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사진전이 오는 5월 22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관조(觀照)’라는 주제로, 건축에 국한되지 않는 폭넓은 사진 미학을 선보일 예정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1882~1926, 가우디 작, 바르셀로나. (사진=이강업)


이 교수는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인 ‘관조’에 대해 작가노트에서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관조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그러나 관조에는 절제가 깔려 있다. 관조는 대상을 소유하려는 욕망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플라톤의 미에 대한 태도와 상응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플라톤의 ‘향연’을 인용해 “우리에게 살 만한 가치를 주는 어떤 일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미를 바라보는 일”이라고 덧붙인다. 이렇게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일이 그가 말하는 관조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히 관조의 순간을 즐기거나 관조의 대상을 찬미하는 데 만족하지 못한다. 그 순간과 대상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사진은 그런 욕망을 충족시키는 매체다. 이 교수는 이번 사진전에서 관조의 대상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했다. 먼저 건축이 빠질 수 없다.

인간 정신과 이상을 담은 건축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건축 사진에서도 유효한 표현이다. 같은 장소를 여러 번 가서 사진을 찍어도 사진의 각도와 구도가 매번 변하는 이유는 이해의 폭이 넓고 깊어지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건축물의 본질과 예술성을 보여주기 어려운 이유는 건축가의 의도를 제한된 프레임 안에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건축물이 들어선 현장에 가지 않고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기는 힘들다. 그래서 한 장의 사진에 건축물의 정수를 담아내는 것이 건축 사진의 주요 과제이다. 건물은 그 장소에 고정돼 있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따라 수시로 달라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건축물의 음영은 달라지고, 계절과 날씨에 따라 분위기도 사뭇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건축 사진에 담기는 이미지가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교수는 “이런 다양한 변수들은 이상적인 건축 사진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건축의 본질을 효과적으로 포착해내는 작업의 핵심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건축의 본질적 가치는 무엇일까?

그는 “건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건축 공간에서 인간들이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건축에는 인간의 정신과 이상, 꿈이 담겨 있다. 건축을 통해 인간 자신에 대한 탐구가 가능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발레 연습’, 1974, 미국 버클리 대학교. (사진=이강업)

▲‘카인’, 19세기, 비달 작, 파리 튈르리 공원. (사진=이강업)


페루에 있는 마추픽추의 안개 낀 산을 찍은 그의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을 보면 잉카인들이 왜 높은 산꼭대기에 도시를 세웠는지 이해할 수 있다. 안개 낀 산 정상에 신이 있다고 믿은 잉카인들은 신과 가까이에서 삶을 영위하고자 한 것이다.

“문화와 시대를 떠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속성 중에는 초월적인 삶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있다. 인간은 스스로를 단순한 동물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로 인식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해왔다. 특정 문화를 대표하는 건축물 대부분이 종교 건축이라는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실제 건축사를 종교 건축의 발전사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그는 사진 작품을 통해 이런 건축의 의미를 부각시키려고 했다. 고대 신전이나 성당에서 인간이 신과의 조우를 꿈꾸며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려는순수한 정신세계를 담고자 한 것이다.

인체와 자연의 생명력과 아름다움

이번 전시에서 이 교수의 시선은 건축을 넘어 인체와 자연까지 이른다. 이 교수는 “학창 시절 우연히 학교에서 발레 연습실에 들러 학생들의 춤 동작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인체가 드러내는 에로스와 율동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고대부터 인간의 신체와 그 신체가 만들어내는 동작은 찬미의 대상이었다. 특히 그리스인들은 인본주의에 입각해 인체를 예술의 경제로 승화시켰다. 아테네 국립 박물관에 있는 고대 그리스 조각상에서 신체의 우아한 생명력을 엿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 중에 자신이 만든 조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 이야기가 있다. 조각을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는 실재를 대체하기 위함일 것이다. 따라서 실재의 생명력을 조각을 통해 느끼게 하는 것이 조각가들의 사명인 것이다. 바윗덩어리에 단지 망치와 끌로 생명을 불어넣은 조각가들의 천재성은 바로 인체에 대한 찬미에서 비롯했을 것”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고대 조각가들이 바윗덩어리에 불어넣은 생명력을 사진 매체를 통해 재현하고자 했다. 실제로 조각을 사진으로 재구성하는 그의 사진에서는 어느 순간 이것이 조각인지 실제 사람의 인체인지 구분이 모호해지는 순간을 느낄 수 있다.

▲장미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담은 ‘장미 1’. (사진=이강업)

▲자연의 찰나적 순간을 기록한 ‘덕유산 설경 1’. (사진=이강업)


조각을 담은 사진에서 인간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면, 자연이 담긴 그의 사진은 인간의 운명을 되돌아보게 한다. 주의 깊은 관조를 통해 인간, 나아가 자연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는 셈이다.

“우리 주변에는 평소에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자세히 보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의미 있는 장면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런 장면들은 우리 주변으로 계속해서 나타나고 사라진다. 자연은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로 가득 차 있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에 이런 장면들을 접하면 자신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진 통해 미(美)의 본질을 질문

마지막으로 이 교수가 관조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우리 주변에 있는 어떤 흔적들이다. 그는 우리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둘러싸여 생활하고 있지만,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주변을 잘 관찰하면, 우리 주변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무수한 형태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오랜 세월 빗물에 씻긴 벽면의 모양이나 짧은 순간 변화무쌍하게 형태를 바꾸는 햇볕에서 우연히 생성된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이 흔적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결국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질문하고 있다.

“아름다움은 이런 흔적들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무심코 지나치거나 금세 사라지는 이런 흔적들이 우리 시선을 통해 아름다운 의미로 탈바꿈하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무엇을 대상으로 하든 관심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강업 교수는 아름다움은 삶의 흔적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고 말했다. ‘티베트 포탈라 궁 담벼락 1’. (사진=이강업)


결국 이 아름다움이 그가 지난 30여 년간 궁극적으로 사진에 담고자 하는 바였을 것이다. 건축과 인체, 자연의 풍경을 거쳐 삶의 아름다운 흔적들이 담긴 그의 사진 전시는 오는 5월 22일부터 29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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