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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맞는 집 ②] 차 없이 살 부부 위한 자투리땅 15평 2층집

OBBA “사는 사람 위한 공간 돼야 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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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0호 안창현⁄ 2016.04.22 16:48:42

▲홍제동 ‘작은집’은 홍제동 개미마을 초입에 있다. (사진=신경섭)


(CNB저널=안창현 기자) “살면서 더 큰 집을 원하고, 그래서 계속 이사를 다니고, 더 많은 공간이 생기면 거기에 더 뭔가를 채워놓고...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 저희에게 딱 맞는 집, 무의미하게 비워진 공간 없는 작은 집을 원해요. 그러면 좀 더 욕심을 버리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OBBA의 이소정, 곽상준 건축가는 예비부부 건축주를 만나 이런 얘기를 들었다.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을 구하는 대다수 예비부부가 원하는 기준과는 좀 달랐다. 건축주 부부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결혼 후에는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고민하면서 집을 짓고자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이 신혼부부만을 위한 홍제동의 ‘작은집’이 지어졌다.

홍제동 ‘작은집’ 프로젝트
작지만, 풍부한 경험 주는 보금자리로

최근 OBBA는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다른 나라의 젊은 건축가들과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이소정 건축가는 그 자리에서 각 국의 주택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문제들이 있었다. 싱가포르는 정책적으로 주택 문제를 잘 다뤄 우리의 행복주택 같은 형태가 잘 보급됐다고 들었다. 물론 정부의 간섭이 커서 그 나름대로 다른 문제들이 있는 것 같긴 했다.”

또 홍콩의 경우 단독주택을 보기가 힘든 반면, 일본은 작은 집에 대한 수요가 많은 점이 대비되기도 했다. 이 건축가는 “그래서 일본의 젊은 건축가가 독립해 사무소를 차리면 상대적으로 일거리가 많지만, 홍콩의 경우 큰 건축물에 대한 프로젝트가 많다보니 젊은 건축가에게 기회가 돌아가기 힘든 점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럼 한국은 어떨까? 특히 젊은 신혼부부들을 위한 우리 주거 환경이 궁금했다. OBBA는 젊은 예비부부를 위한 홍제동의 ‘작은집’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다. 건축가는 서울연구원의 통계 자료를 보여주며 한국의 상황을 설명했다.

서울연구원의 2015년 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젊은 신혼부부의 평균 주거 면적은 72.7㎡(약 22평)였다. 신혼부부의 45% 가량이 아파트나 주상복합건물에 살았고, 37%는 연립이나 다세대주택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젊은 신혼부부의 3분의 2는 전세로 살았는데, 절반 정도가 1억~2억 원 사이의 전셋집이었다.

이 통계는 한국에서 젊은 부부가 어떻게 집을 선택하는지 보여준다. 아무래도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처럼 표준화된 주택 유형을 선택하는 경향이 높고, 지나치게 높은 집값이 선택 폭을 제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OBBA의 이소정 & 곽상준 소장. (사진=OBBA)


그런 점에서 OBBA가 진행한 홍제동의 ‘작은집’은 좀 달랐다. 이 건축가는 “건축주 부부가 설계를 의뢰하면서 자신들이 살 집에 대해 여러 가지로 고민한 흔적이 보여 인상 깊었다. 의미 없는 기준들에 신경 쓰기보다 스스로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질문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신혼부부가 아파트나 다세대주택 외에 현실적으로 어떤 대안적인 주거 형태를 선택 가능한지 엿볼 수 있는 집이라고 할만하다.

홍제동 개미마을 초입에 박공지붕 얹어

‘작은집’은 이제 서울에 몇 안 남은 일병 판자촌, 홍제동 개미마을의 초입에 위치한다. 인왕산 북쪽 자락의 경사로 길에, 하얀색 벽 위로 책을 펼쳐놓은 것 같은 검정 박공지붕이 얹인 모양새를 하고 있다.

2층 건물 높이지만, 50㎡밖에 안 되는 작은 집이다. 주변에는 낡고 오래된 판자촌과 낙후된 지역을 개선하기 위해 그려진 벽화가 묘한 풍경이 존재하는데, 이런 풍경과도 잘 어울리는 집이다.

이 건축가는 우선 도시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했음을 부각시켰다. “사실 도심의 대규모 필지는 이미 많이 개발됐고, 이런 자투리 공간들은 개발하기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작은집은 건축가로서 이런 땅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라 흥미로웠다.” 이어 “이런 프로젝트가 많이 생기면 도심지의 소규모 필지를 활성화하고 다양한 주거 형태들이 생겨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이 작은집의 입지 조건은 완벽하지 않았다. 대지의 북쪽으로 6m 도로와 서쪽 4m 도로가 만나는 코너였다. 그리고 남쪽과 동쪽은 보행자를 위한 작은 골목길. 사방이 길인 셈이다. 더구나 대지의 가장 낮은 곳과 높은 곳의 높이 차가 4m나 되는 급경사 조건이었다.

▲‘작은집’의 꽉 찬 내부, 작지만 꼭 필요한 것들로 빼곡하다. (사진=신경섭)


OBBA가 가장 중점적으로 고민했던 점은 이렇다. “열악한 조건의 대지 조건을 어떻게 건축적으로 해결할 것인가, 무채색의 판자촌과 형형색색의 벽화들이 혼재하는 조건에서 어떻게 함께 어우러지는 집을 지을 것인가, 또 제한된 공사비 안에서 작지만 풍부한 공간감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 등이 중요했다.”

이 건축가는 먼저 최대한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주택이 들어설 대지의 상태를 최대한 보존하고 이용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OBBA가 50㎡(15평) 규모의 2층 집을 생각한 것은, 건축주가 차를 소유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주차장 면적을 확보하지 않아도 되는 최대 면적이 50㎡ 미만이었기 때문에 나온 아이디어였다.

여기에 사방이 도로에 접해 있고 대지의 높이 차가 심한 점을 이용해 현관을 1층과 2층 중간에 위치하도록 했다. 또 효율적인 동선을 고려해 건축주 부부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거실과 주방은 충분한 채광과 조망을 위해 2층으로 배치했다. 반면 사적인 공간인 안방과 화장실은 1층으로 계획했다.

이런 공간 배치는 건축주의 생활 패턴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건축주 부부는 고양이를 키운다. 현관을 면해 있는 계단에 고양이 계단을 따로 마련한 것은 그 때문이다. 작지만 구석구석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 다락 공간은 서재 겸 영화 감상이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 건축가는 작은집 설계를 하면서 “이것이 꼭 있어야 할까?”를 항상 질문했다고 한다.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책장과 계단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또 거실과 주방은 높이 차이를 둬 주방의 조리대가 거실에선 좌식형 식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 점 등이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이었다.

이렇게 작은 공간을 풍성하게 채운 설계는 건축가 OBBA와 건축주 신혼부부의 대화 과정에서 구체화됐다. 이 건축가는 이런 과정에서 주택이 어떤 모습을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OBBA의 첫 번째 주택 프로젝트인 내발산동 다세대주택 외관. (사진=신경섭)


“보통 우리는 종종 자신의 생각이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보이는 삶에 치중하며 살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보게 된다. 작은집의 건축주 부부는 결국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내가 무엇이 왜 필요한 것인지 질문하고, 거기에 스스로 대답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위한 집을 구상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의 주거 문화는 대부분 경제적인 논리에 의한 대규모 개발을 통해 획일화된 유형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오랜 도시의 흔적들 또한 사라졌다. 그런데 홍제동의 작은집처럼 도심 속에 남아 있는 다소 열악한 조건의 소규모 필지들이 다양한 건축적 해법으로 대안적인 주거 문화에 흡수될 수 있다면, 우리 주변에서 좀 더 다양한 주택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거주자 고려한 건축적 해법을 고민”

OBBA의 첫 번째 주택 프로젝트는 내발산동의 다세대주택 설계였다. 이 건축가는 내발산동 다세대주택 또한 홍제동 작은집처럼 거기서 살아갈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일반적인 다세대주택과 달리 중앙 계단에서 바로 세대에 진입할 수 있게 한 내발산동 다세대주택의 내부. (사진=신경섭)

“주택은 다른 건축물과 달리 거기 사는 사람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작은집과는 규모와 조건이 서로 달랐지만, 실제 거주할 사람들의 경험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이 건물은 오래된 다세대주택과 신축빌라들이 섞여 있는 강서구 내발산동의 주거 밀집 지역에 위치했다. OBBA는 다세대주택의 임대 목적에 맞게 작은 원룸 형태로 방들을 구성했지만, 그 안에서 가능한 풍요로운 공간과 삶을 입주자에게 제공하자는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이 건축가는 “기존 다세대주택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평면 구성에서 벗어나 스킵플로어 구조를 택했다. 복도가 아닌 각각의 계단참에서 바로 세대 진입을 허용하는 새로운 형태를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방식 역시 거주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보통 다세대주택은 복도 형태가 많아 어두침침한 복도를 지나 집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층과 층 사이를 활용하는 스킵플로어 구조를 통해 계절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변의 자연을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는 중정 공감을 마련한 것이다.

기능적으로도 스킵플로어 구조로 인해 복도와 같은 불필요한 공용 공간을 줄이고, 전용 면적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이 건축가는 “벽돌의 비워쌓기 방식을 중정 공간뿐만 아니라 인접 건물과 접한 입면, 그리고 설비가 설치되는 곳에 부분적으로 적용해 기능적인 부분을 만족시키면서도 심미적인 역할을 함께 수행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건축주과 거주자를 위해 다양한 건축적 해법을 동원한 셈이다.

이 건축가는 “거주자의 직접적인 요구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면에서 주택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그런 만큼 좀 더 까다로운 측면들이 많다. 디테일 하나하나에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동시에 주택에는 거주자의 삶이 직접 반영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택의 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거주자다. 거주자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주택 설계에서 결정적인 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알게 되는 것 같다”는 이 건축가의 말이 그런 점을 말해준다.

▲2015년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한 OBBA의 역삼동 단독주택. (사진=신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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