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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사랑과 외로움은 다른가" 묻는 '엘리펀트송'

의사와 환자의 치열한 두뇌싸움 끝에 진한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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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1-482호 김금영 기자⁄ 2016.04.28 17:35:41

▲연극 '엘리펀트송'에서 마이클 역의 박은석이 열연 중이다.(사진=나인스토리)

새하얀 옷을 입은 한 소년, 그리고 인상을 가득 찌푸린 채 그 소년을 바라보는 정장 차림의 한 남자, 또 그 소년을 걱정 어린 시선과 동시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간호사.


처음엔 순백의 차림으로 마치 천사를 떠올리게도 했던 소년은 남자에게 “거래를 하자”며 알 수 없는 말들을 내뱉기 시작한다. 남자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주변 사람 모두를 놀리는 듯한 소년의 모습은 천사보다는 작은 악마에 점점 더 가까워 보인다. 소년의 이야기에는 끊임없이 코끼리가 등장하고, 남자는 무엇이 진실이고 허상인지 알 수 없는 채 혼돈에 빠지기 시작한다.


지난해 11월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인 연극 ‘엘리펀트송’이 다시 돌아왔다. 2004년 캐나다 스트랫퍼드 축제에서 개막 후 프랑스 파리의 몽파르나스 극장에서 100회 이상 공연됐으며, 프랑스 몰리에르 어워드 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이다.


정신과 의사 로렌스 박사의 실종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다. 로렌스 박사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환자 마이클, 그리고 마이클을 보살피는 간호사 피터슨, 마이클과 이야기를 나누며 로렌스 박사의 행방을 찾으려는 병원장 그린버그가 등장한다.


극의 첫 시작은 미스터리 추리극에 가깝다. 마이클은 로렌스 박사의 행방을 알고 있으면서도 알려주지 않으며 그린버그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게 한다. “내가 목을 졸랐다. 저 옷장 안 박스에 있을 거다”라며 살인 사건을 연상시키는가 하면, 코끼리 인형의 코를 자신의 입 속에 넣으며 “로렌스 박사와 나는 평범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극 중 환자 마이클(왼쪽, 박은석 분)과 병원장 그린버그(이석준 분)는 로렌스 박사의 실종을 둘러싸고 그들만의 거래를 시작한다.(사진=나인스토리)

처음 그린버그는 마이클의 말을 믿지 않지만 로렌스 박사의 서랍 속 마이클의 묘한 사진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불안감에 예민해진다. 그런데 또 그 사진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마이클과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이클의 이야기 중 무엇이 명확한 진실인지 알 수 없다. 모두 진실 같기도, 반대로 전부 거짓 같기도 하다. 병원장의 위치에서 병원에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그린버그는 점점 마이클과의 대화에서 날카로워지고, 관객들 또한 거짓말을 일삼는 양치기소년을 보듯 마이클을 바라보게 된다.


이건 극의 첫 시작부터 씌워진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피터슨은 그린버그에게 “마이클이 당신보다 더 똑똑하다”고 수차례 경고하면서 마이클에게는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냐”고 묻는다. 이 가운데 모두를 갖고 노는 듯한 마이클을 보며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천재 정신병자의 미스터리 호러극’으로 극의 방향이 흘러가겠거니 하며 생각하게 된다.


천재 정신병자의 미스터리 호러극?
사랑이 고팠던 한 소년의 애달픈 인생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이클이 단순한 양치기소년, 정신병자가 아니라는 게 느껴지며 선입견이 만들어준 '안봐도 비디오' 틀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처음엔 “거래를 하자”며 강하게 이야기를 꺼냈던 마이클은 “남들처럼 서류 파일로 나를 판단하지 말고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내 이야기를 들으면 로렌스 박사의 행방이 담긴 쪽지를 주겠다”며 그린버그와의 대화를 계속 이어가고 싶은 의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마이클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병원에 왜 들어오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로렌스 박사 아닌 자신의 이야기로 그린버그를 끌고 간다.


마이클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관객은 왜 마이클이 그토록 코끼리 이야기에 집착하고, 늘 코끼리 인형을 끌어안고 있는지 조금씩 짐작하게 된다. 처음엔 천재 싸이코패스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품게 만들었던 마이클이, 사실은 그저 사랑을 애타게 갈구했던 평범한 아이였다는 것. 그의 인생 이야기를 그린버그와 함께 들으면서 코끼리 이야기에 눈시울이 불거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 기억의 엄마와 아빠, 그리고 사파리에서 처음 실제로 본 코끼리의 강렬한 인상까지….


어린 시절 누구나 가지고 놀았을 법한 인형이 마이클의 품속에서는 애틋하게 다가온다. 온힘을 다해 코끼리 인형을 끌어안는 마이클의 모습에서, 누군가는 자신을 그렇게 따뜻하게 품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그의 마음이 짐작된다.


▲로렌스 박사의 실종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대화를 펼치던 그린버그(왼쪽, 이석준 분)와 마이클(전성우 분) 사이에는 처음에는 없었던 소통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사진=나인스토리)

그리고 극의 말미에 이르러 로렌스 박사와 전혀 상관없었을 것 같았던 마이클 본인의 이야기가 사랑 그리고 외로움이라는 이름 아래 연결된다. 이야기를 제대로 마친 마이클에게 그린버그는 약속했던 대가로 초콜릿을 주고, 그린버그와 마이클, 피터슨 모두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지며 극은 해피엔딩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순간 극은 또 한 번의 충격을 안긴다. 처음부터 의도한 바가 있었던 마이클. 그리고 그 의도는 처절한 외로움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마이클이 극의 마지막 순간 피터슨과 그린버그에게 건네는 진심어린 한 마디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무대는 큰 책장과 창문, 그리고 소파와 책상 등 심플한 소품들로 구성된다. 여기에 조명의 색 등을 활용해 온전히 배우들의 말에 집중할 수 있게끔 한다. 그린버그를 이석준·고영빈, 피터슨을 고수희·정재은, 마이클을 박은석·정원영·전성우가 연기한다. 공연은 DCF 대명문화공장 1관에서 6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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