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철학자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글 ‘눈과 정신’을 메를로퐁티 전문 학자로 알려진 철학자 조광제가 그 의미와 내용을 해설-강의한 내용을 단행본으로 엮었다.
‘그림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메를로퐁티는 1961년 5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 전 회화에 대한 세 편의 글을 남겼다. ‘세잔의 회의’(1945),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1952), ‘눈과 정신’(1960)이 그것이다. 그의 작업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이 글들 중에서도 퐁티의 동료였던 샤르트르는 ‘눈과 정신’이야말로 퐁티의 사고를 가장 완전하게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가 살아 있을 때 마지막으로 저널 ‘Art de France’(1961)에 발표한 작품이 바로 ‘눈과 정신’이다(단행본은 1964년 출간).
눈과 정신은 ‘본다는 것’을 문제의 중심으로 삼고, 보는 사람과 보이는 것 사이에 어떤 위력이 생성되고 작동되는지 회화의 세계를 배경으로 설명한다. 설명의 근간에는 그의 다른 유작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펼쳤던 ‘살 존재론’이 깔려 있다.
메를로퐁티는 존재 전체가 살(육체)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살은 감각 덩어리(masse du sensible)다. 그러니까 존재하는 일체의 것들이 감각 덩어리라는 것이다. 그는 그 살에서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이 갈라져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는 자와 보이는 것 사이에는 끝없이 자리를 바꾸는, 즉 보는 자가 보이는 것이 되고 보이는 것이 보는 자가 되는, 봄의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봄을 몸소 수행하는 자가 화가이고, 그 결과가 회화라는 것이다. 결국 메를로퐁티의 회화론은 그 자체로 존재론이 된다.
메를로퐁티의 '눈과 정신'은 전체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학에 대한 검토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간이 처한 부정적인 측면의 현 상황을 포착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한다. 2장은 극복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기초 단계로서의 ‘본다는 것’과 회화의 본질적인 관계를 밝힌다. 3장은 데카르트에 대한 고찰과 분석을 통해 회화가 가진 철학의 역사를 본다는 행위와 함께 이야기하고, 4장은 현대 회화의 역사에 대한 메를로퐁티의 해석, 즉 회화의 역사는 철학적 사유의 역사와 일치함을 말한다. 마지막 5장은 회화를 존재론적으로 최고도로 격상시키며 ‘회화 존재론’을 펼친다.
사실, 메를로퐁티의 ‘눈과 정신’ 원저는 회화 존재론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현상학과 미술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는 독자가 읽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조광제는 이를 9개의 주제, 즉 ‘봄을 통한 과학의 극복, 인간의 탄생’, ‘오로지 가시성에 미친 화가의 눈’, ‘회화의 비밀, 그 시각적 구조’, ‘회화의 신비와 데카르트의 지성주의적 저항’, ‘깊이의 정체를 향하여, 데카르트와 원근법’, ‘깊이의 정체를 향하여, 심연의 존재와 봄의 초월성’, ‘깊이를 향한 회화의 열정’, ‘회화와 살, 선과 운동’ 그리고 ‘존재론적 회화론, 회화론적 존재론’으로 나눠 깊이있고 폭넓지만 알기 쉽게 설명한다.
조광제 지음 / 1만 6000원 / 이학사 / 2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