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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박명성 대표는 왜 연극 '레드'에 집착할까

'구시대'와 '새로운 시대' 그 사이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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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7호 김금영 기자⁄ 2016.06.10 18:38:27

▲연극 '레드'의 인상깊은 장면. 극 중 마크 로스코(한명구 분)가 레드가 칠해진 화면을 바라보고 서 있다.(사진=신시컴퍼니)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연극 ‘레드’가 또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또 신시컴퍼니가 제작했다. 연극 ‘레드’는 2011년 국내에 초연됐다. 배우 강신일, 강필석이 초연 무대를 꾸렸고 이후 2013~2014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앙코르 무대를 가졌다. 또 2015년엔 충무아트홀에서 세 번째 공연을 열었다.


공연이 재연되는 건 사실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연극 ‘레드’는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가 타 공연 프레스콜 현장에서도 언급할 정도로 애정을 보이는 작품이라 눈길을 끈다. 2015년 창작 뮤지컬 ‘아리랑’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그는 “뮤지컬 ‘맘마미아’ ‘시카고’ 등 흥행작을 내세워 얻은 수익으로 연극 ‘레드’ ‘푸르른 날에’ 등을 선보였다”고 말했다. 그의 말인즉슨 실험적인 극을 선보이기 위한 전략으로 흥행작을 함께 내세운다는 것.


이토록 박 대표가 애정을 보이는 연극 ‘레드’는 추상표현주의 시대의 절정을 보여준 러시아 출신 미국 화가 마크 로스코의 일화를 소재로 한 2인극이다. 런던 돈마웨어하우스 프로덕션에서 2009년 12월 제작해 첫 선을 보인 뒤 2010년 미국 브로드웨이로 건너가 골든 씨어터에서 공연됐다. 같은 해 열린 제64회 토니어워즈에서는 연극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연출상, 조명상, 음향상, 무대디자인상, 남우조연상까지 총 6개 부문을 휩쓸었다.


▲극 중 마크 로스코 역의 강신일(왼쪽)과 조수 켄 역의 박정복이 열연 중인 모습.(사진=신시컴퍼니)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로스코가 고급 레스토랑 포시즌즈의 벽화 제의를 받고 작업 중인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스코는 40여 점의 연작을 완성했다가 갑자기 계약을 파기했다. 작가 존 로건은 ‘그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에 집중해 극을 재구성해냈다. 그리고 여기에 가상 인물로 조수 켄이 등장한다.


무대는 로스코의 작업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무대 위에는 각종 붉은색 물감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리고 로스코와 켄은 철학, 예술, 종교, 미술, 음악 등을 넘나드는 인문학에 관한 논쟁을 쏟아낸다. 이 부분이 관객에게 쉽지는 않다. 낯선 미술사조와 니체, 피카소, 잭슨 폴락 등의 이름들이 언급되고, 현학적이고 미학적인 수사들이 쏟아지기 때문. 지식이 부족하다면 살짝 졸릴 수 있는 부분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몰아내야 해. 존경하지만 살해해야 하는 거야”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데 극이 주목하는 건 이 미술 지식들이 아니다. 극 중 로스코의 말이 있다. “아들은 아버지를 몰아내야 해. 존경하지만 살해해야 하는 거야.” 극에서 로스코는 피카소의 ‘입체파’를 몰아내고 ‘추상표현주의’ 시대를 가져온 상징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제 그는 앤디 워홀의 ‘팝아트’에 의해 위기를 맞는다. 이 공연이 단순히 미술 지식에 대해 집중하려 했다면 로스코만 등장시켜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세대’로서의 켄이 등장해, ‘구시대’의 상징인 로스코와 대화를 나눈다.


새로운 것이 이전의 것을 밀어내고 누르는 것은 미술 뿐 아니라 역사, 정치, 사회, 경제, 종교 등 인류의 모든 분야에서 벌어져 온 현상이다. 이 현상들이 극에서는 ‘레드’로 표현된다. 단순히 붉은 색깔이 아니라 해가 떠오를 때의 강렬한 느낌, 열정, 분노, 투지, 열망 등 새로운 흐름의 물결이 레드로 상징된다. 그래서 로스코가 “무엇이 보이냐”고 물을 때마다 켄은 “레드요”라고 대답한다.


▲물감을 만드는 마크 로스코(한명구 분). 그는 그림을 그리며 조수 켄과 많은 논쟁을 벌인다.(사진=신시컴퍼니)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서는 ‘블랙’이 이야기 된다. 죽음, 종말 등을 상징할 때 이야기되는 블랙은 어찌 보면 새 생명을 상징하는 레드와 전혀 상반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극은 구시대라서 가치 없고 의미 없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를 무조건 찬양하라는 것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구시대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새로운 시대의 사람들은 구시대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도 있다는 것을 짚는다. 그 점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 레드로 칠해진 큰 캔버스를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이다.


이 장면에서 점차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인간의 실루엣은 블랙으로 변한다. 그리고 레드 화면 속 존재감을 어필하며 이질감 없이 조화를 이룬다. 레드도 블랙도 이 장면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함께 존재한다.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는 처음엔 갈등을 이루기 마련이다. 기성세대는 자신이 일구어 놓은 가치관에 갇혀 새로운 것을 잘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으려 하기도 한다. 처음 로스코도 그렇다. 켄의 이야기를 헛소리라며 듣지 않는다. 앤디워홀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한다.


▲하얗던 화면에 레드로 칠해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조수 켄(왼쪽, 박정복 분)과 마크 로스코(강신일 분)이 함께 색을 칠한다.(사진=신시컴퍼니)

하지만 켄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열정을 느끼면서 자신의 과거의 모습을 돌아보고, 새로운 세대에 자리를 내어줄 준비를 한다. 그리고 극의 말미에 이르러서 여러 핑계 속 자신이 잊었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거액의 벽화 작업을 거절한다. 켄도 로스코의 가르침을 받아 앞으로 한 발 내딛을 준비에 나선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시대에, 진정 발전의 준비를 위해서는 무작정 갈아 엎어버리는 과정이 아니라, 신구(新舊)의 조화가 필요함을 이 극은 제대로 짚었다. 공연 제작자로서도 갖춰야 할 자질이다. 이 메시지가 박 대표의 마음을 관통했던 것은 아닐까. 그는 이미 자리를 굳힌 인기 공연을 바탕으로 계속 새로운 공연을 선보이는 데 몰두하고 있다. 레드와 블랙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다. 꼭 박 대표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현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다.


배우 강신일과 한명구가 로스코 역을 맡았고, 카이와 박정복은 켄을 연기한다. 단지 두 명이 등장하는 무대이지만 과열되는 논쟁의 열기는 무대를 통째로 집어 삼킨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와 더불어 마치 로스코의 작업실에 들어선 듯한 무대 구성도 인상적이다. 실제로 배우들은 캔버스에 거침없이 레드를 칠하고, 물감을 조합하며 자신들의 작업 세계를 관객이 엿볼 수 있도록 한다. 공연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7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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