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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전시] 'F/W 16'의 신상은 혐오?

케이크갤러리, 이수경 개인전 5월 26일~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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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윤하나⁄ 2016.06.21 13:14:50

▲이수경의 'F/W 2016' 전시장. (사진 = 김익현)


케이크갤러리가 이수경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 ‘F/W 2016'526~626일 연다이번 전시는 작가가 발견한 혐오스러운 서울 풍경을 바탕으로 만든 작업으로 채워졌다. 작가가 사용한 혐오의 뜻은,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맘에 들지 않는 특정 대상을 미워하며 제거해버리고 싶은 마음과는 거리가 멀다.

 

불쾌한 거리감 꿰매 만져보고 싶은 신상으로 변모

 

이수경은 길에서 만나는 남성 노인들의 모습과 부서진 서울 풍경 속에서 만나는 불편한 감정들을 피하지 않고 응시한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이 이상적으로 바라는 세계와 실제로 서 있는 이곳 사이의 차이를 발견해내고, 그 사이를 꿰매버림으로써 '탈 혐오'의 갖고 싶은 조각으로 재해석한다.


▲이수경의 'F/W 2016' 드로잉. (사진 = 윤하나 기자)

 

민감한 단어인 '혐오'를 사용하면서까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간극을 극복하지 못할 거란 체념이 혼용된 불편함이다.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보다 이미지로서 소비해버리거나 지나쳐버리는 데 대한 혐오감을 언급하며, 혐오의 대상을 노인이 아니라 노인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으로 바꾼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노인들의 차림새를 관찰하고, 그들이 입는 옷의 소재를 변형시켜 만든 일종의 패션 소품 같은 조각을 선보인다. 서울 풍경에서 그가 건져 올린, 혹은 평면적으로 수집한 노인들의 이미지 잔해 혹은 폐기물을 직관적으로 바느질해 입체화시킨 결과물이다.

 

차림새에 민감한 작가가 포착한 서울 노인들의 모습은 단정한 옷매무새에, 소재의 믹스매치도 이뤄진 모습이었다. 작가는 이런 복합적 평면 단상들을 그만의 시각적 재단법으로 절단한 뒤 입체적 봉합 과정을 거쳐 바닥에서 묘하게 붕 떠 있는 듯 부유하는 공 같은 오브제로 만든다.


▲이수경의 'F/W 2016' 전시장. (사진 = 김익현)


‘LA갈비 도축법’: 무한 단면의 발견

 

전시된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체크무늬 모직 모자와 허름한 재킷 소매, 빛바랜 패딩, 귀를 덮어버리는 풍성한 털모자 등 익숙한 질감의 낡고 납작했던 패브릭들이다. 헌데, 이들이 모여 부피감 있는 덩어리를 이룬다.

 

작가는 수집한 이미지와 패브릭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잘라내고 그것을 재조립한다. 이런 형식을 그는 ‘LA갈비의 도축법이라 이름 붙였다. LA갈비의 도축법이란, 소갈비를 기계에 넣고 보이지 않던 단면을 드러내듯 잘라낸다. 그래서 '살과 뼈가 어느 정도 비율을 갖춘 단면 조각들'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를 통해 어떤 대상 혹은 현상을 수많은 레이어로 분해해서 낯설고 불편한 내면적 진실을 발견하는 메타포로 활용한다.

 

작가는 LA갈비 도축법에서 '잘린 단면의 기괴함'과 '만져보고 싶은 이상한 느낌'에 이어 갈비를 좀 더 빠르고 싸게 공급하려는 한국 방식이란 특징까지 짚어낸다.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뼈를 잡고 갈비를 맛있게 먹는 작가 자신은 이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파악했다.

 

이를 차용한 그만의 해석양식은, 서울 풍경을 혐오스러워하면서도 그 혐오 속에 살고 있는 자신을 명확하게 인식한다.

  

▲이수경의 'F/W 2016' 전시장. (사진 = 김익현)


작가는 이런 혐오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노인들이 가지고 있거나 만들어낸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갱신해야 하는 덩어리로 결국 우리()의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형태와 양상은 달라지겠지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가진 속도감 속에서 혐오라는 덩어리가 신상품처럼 갱신되는 가까운 미래를, 혹은 그 미래가 이미 도달한 현재를 본다"고 언급했다. 패션쇼 컬렉션을 연상시키는 전시 제목 또한 현재와 근 미래를 정확히 명시한다. 세련된 패션매장 디스플레이 어법이 활용된 전시 형태도 작가가 구체화시킨 어떤 것을 강력하게 지시한다.


붕 떠 있는 조각과 장소

 

특히 이번 전시는 갤러리의 장소성을 바탕으로 또 다른 재미를 이끌어낸다. 케이크갤러리는 서울의 동묘 인근에 있다. 해당 지역은 작가가 말하는 서울 풍경을 경험할 수 있는 구도심으로, 전시장 내부는 깜짝 놀랄 만큼 새하얀 벽과 절제된 디스플레이로 채워졌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최신 편집매장을 연상시키는 부티크 형식의 작업 설치는 바깥 풍경과의 괴리감을 직접적으로 이끌어낸다.

 

그런가 하면, 전시장 내 방에는 큰 창문이 활짝 열려 있고, 그 창 바로 옆의 널찍한 난간 위에 둥글넓적한 패브릭 ’ 혹은 방석을 쌓아놓은 형태도 인상적이다. 이곳은 제사를 위한 음식을 대접하는 곳으로 '돌 떡 빵'이란 이름의 작업들이 전시됐다.

 

이 방에서 다시 메인 전시장으로 통하는 유리문에는 'F/W 16' 스티커가 붙어 있다. 마치 이 문이 실제 매장(또는 전시장) 입구이고, (이 문을 거쳐 들어온 방이지만) 다시 매장(또는 전시장)의 입구로 들어서기 전의 설렘을 처음처럼 느끼게 만든다. 다시 입장해 느끼는 극도로 정리된 전시장과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보드라워 보이는 조각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전보다 복잡한 감상에 젖게 만든다.


▲이수경의 'F/W 2016' 전시장. (사진 = 김익현)


작가가 왜 노인에 집중하게 됐는지의 발단은 모호하다. 혐오란 단어의 용법도 석연치 않지만 작가는 이 관심을 거두지 않고 지난 몇 년 동안 관찰을 지속하며 사진과 드로잉 작업으로 이어왔다. 혐오는 결과적 표현이 아니라 작업을 위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불편한 거리감을 위선으로 눈감기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포용한다.

 

최근 보도된 뉴스들에 혐오란 단어가 유독 많다. 혐오가 올해의 신상 또는 적어도 전염병 같은 유행임을 부정하긴 어렵다. 세상을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내면화하는 게 작가다. 이수경은 세상을 떠도는 혐오라는 전염병을 LA갈비 뽑아내는 듯한 작업을 통해 관심의 끝을 혐오가 아니라 해석의 여지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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