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영 기자⁄ 2016.06.14 13:01:07
하이퍼리얼리즘을 통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찰하는 전시가 열린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은 2016년 두 번째 특별전으로 9월 25일까지 '하이퍼리얼리즘: 피그말리온, 생명을 불어넣다'를 큐빅하우스 전관에서 연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 개관 이후 최초의 외부기획 초청전시다. 해외 에이전시와 투자자와의 협력으로 이뤄졌다. 서양 현대미술의 양식 중 하나인 극사실주의 회화 및 조소 작품들을 소개하고,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극사실주의)은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 유럽의 회화 장르를 중심으로 시작돼 팝아트, 추상표현주의와 더불어 서양미술을 발전시켰다. 미국적 팝아트의 강력한 영향 아래 발생했으나, 사물의 본질에 대한 좀 더 세밀한 관찰과 정확한 묘사를 함으로써, 현실을 보다 생생하게 묘사하는 특징이 있다.
이번 전시는 하이퍼리얼리즘의 다양한 예술세계를 분석한다. 미국, 캐나다, 브라질, 스페인, 이탈리아 극사실주의 작가 11명이 참여한다. 특히 '인간'을 소재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고찰을 담은 작품 86점을 선보인다.
작가들은 사물의 본질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디테일한 묘사를 바탕으로 우리 삶의 현실을 작품 속에 녹여낸다. 전시 관계자는 "관람객들은 작품을 대하면서 작품 속 대상이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낄 것"이라며 "사진기로는 표현할 수 없는 회화 및 조소 장르의 고유한 매체성과 마주치며, 우리 삶의 현실을 투영한 다양한 예술적 메시지와 영감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캐나다-브라진-스페인-이탈리아 극사실주의 작가 11명 참여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미국작가 5명 중 첫 번째 작가 마크 시잔(Marc Sijan)은 사실적인 신체 조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을 한다. 그는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인물들의 굳은 표정에서 불안한 현대인의 심리를 극대화하는 작품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또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질적이고 냉정한 관계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담아낸다. 무기력한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인간에 대한 연민과 슬픔을 보여준다.
마크 데니스(Marc Dennis)는 미술과 대중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을 포착하고 그림을 본다는 행위를 또 하나의 예술로 표현한다. 그는 '피카소의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치어리더'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을 보는 소녀' 등 미술사의 다양한 운동을 재치 있게 풍자한다. 현대 문화와 아름다움에 대한 선입견을 묘사한 그의 그림은, 현실과 예술과의 관계를 동시대의 정신과 심리적인 관점에서 탐구한다.
아담 빈 (Adam Beane)은 세밀한 묘사와 사실적인 조각 표현으로 피규어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그는 '신기술과 예술을 어떻게 하면 결합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Cx5라는 새로운 재료를 고안해 내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고 정밀한 극사실주의의 피규어와 초상을 보여준다.
캐롤 A. 퓨어맨(Carole A. Feuerman)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하이퍼리얼리즘 조각가다. 그는 주로 물속에 작품을 설치한다. 수영이 주제로, 모델들도 실제 수영선수이거나 수영선수를 불러서 본뜨는 작업을 한다. 햇빛에 그을린 여성의 건강한 피부, 격렬한 운동 후의 노곤함을 달래는 달콤한 휴식의 눈빛, 땀에 젖어 흐트러진 머리카락 등이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다.
로빈 일리(Robin Eley)는 프리즘 뒤에 있는 인간 존재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분절된 자아의 진실을 끊임없이 분석한. 그는 평소 커피숍에서 만나는 일반인을 모델로, 프리즘을 통과한 빛을 투과시켜 고독하고 파편화된 내면과 고뇌, 감정들을 표현한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누드, 표정 없는 얼굴, 인위적으로 날카롭게 깨진 인물의 감성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미국 작가로서는 마지막으로 크리스토퍼 데이비드 화이트(Christopher David White)의 조각작품은 대부분 점토로 이뤄졌다. 세부적인 부분은 주로 부패하는 나무 조각, 녹슨 쇠 그리고 부패되거나 악화된 다양한 재료들을 연상하도록 자세히 묘사된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환경지각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다양한 소재들에서 영감을 얻어 자연으로의 회귀를 역설적으로 작품에 접목한다.
현실을 보다 생생하고 완벽하게 재현하는 작품들
이탈리아 작가 디에고 코이(Diego Koi)는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공부했다. 자극적인 색을 배제하고 단색의 연필을 사용한 사실적인 표현을 추구한다. 인간이 지닌 긍정적인 모습은 흰색, 부정적인 모습은 검정으로 표현하면서 정교한 라인과 음영, 주제와 밀도를 높인다. 작품은 눈과 감싼 얼굴을 통해 여성적인 심리를 이끌어내고 현대사회를 향한 절망과 분노를 표현한다.
캐나다 토론토 출신 제프 바텔(Jeff Bartels)은 주로 악기를 연주하는 손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확대해서 유화로 그린다. 삶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을 통해, 음악적 순간의 영원성을 미술작품으로 표현한다.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손, 강한 빛으로 표현된 극단적 클로즈업은 음악가와 악기가 만나는 묘한 지점을 극대화하고, 그 지점에서 발생하는 다이나믹하고 드라마틱한 음악적 감성의 순간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브라질 작가 마르타 펜테르(Marta Penter)는 캔버스에 수채화물감을 이용한다. 유화물감과 페인트를 이용해 대형그림을 완성한다. 흑백 톤의 무채색 인물들을 통해 도시의 바쁜 일상을 건조하게 그리는데, 전체적으로 활발하고 생동감 넘치는 느낌이 든다.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강조하고, 집중화된 화면 효과를 통해 현대의 세계 속에서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오는 인간상을 구현한다.
스페인 작가 엘로이 M. 라미로(Eloy M. Ramiro)는 냉혹한 세상의 진실을 말하려는 듯 분노와 슬픔에 찬 얼굴을 그린다. 모든 빛을 품은 듯한 피부색과 시간을 간직한 얼굴이 뿜어내는 강렬한 인상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현실의 대변이다. 한 번에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물감을 섞고 채워 넣기를 반복하면서 끈기 있게 그린다. 더 이상 그릴 수 없는 극한의 상태까지 도전하면서, 묘사를 하면 할수록 인물이 지닌 본연의 인상에서 멀어지는 이율배반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스페인 작가 파블로 J. 루이즈(Pablo J. Ruiz)는 어린 시절부터 마커(매직펜), 회화, 이야기, 만화들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자신이 바라 본 세상을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하나의 점으로 빼곡히 채워 왔다. 작가가 표현한 세계는 유년시절에 상상을 꿈꿔 왔던 환상의 세계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연결된 사랑, 실망, 자연, 사회 등을 표현한다. 그가 태어난 스페인의 정서가 가득 담긴 작품들은 종이에 잉크를 찍는 점묘법으로 완성돼 특유의 몽환적인 느낌을 풍긴다. 정교하게 세팅된 미세한 점들은 인물들의 감정을 잘 표현한다.
미학자이자 미술평론가인 유현주는 이 전시에 대해 "21세기 하이퍼리얼리스트들은 죽은 현실마저도 새롭게 창조하는 피그말리온들이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조각한 여인상을 따뜻한 체온이 흐르는 인간으로 살아있게 한 것처럼, 연필만으로도 사진 같은 효과를 낸 그림에서부터 레진, 실리콘, 유리, 수지, 탄산칼슘 등을 사용해 실핏줄까지 재현한 조각에 이르기까지, 매체에 대한 치열한 싸움의 결과물들이 여기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사진의 눈마저도 정복한, 기술적으로 완벽에 가까워진 재현으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현실의 이미지를 안겨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21세기 우리는 과연 리얼한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덧붙엿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