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토킹 어바웃 마이 걸, 마이 걸~” 1991년 개봉한 영화 ‘마이 걸’에 나온 ‘더 템테이션스(The Temptations)’의 노래 한 구절은 관객들의 귓가를 맴돌았다. 영화 속 어수룩하고 수줍은 토마스(맥커레이 컬킨 분)와 그런 토마스를 뒤흔드는 소녀 베이다(안나 컬럼스키 분)가 보여주는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가 노래와 아름답게 조화를 이뤄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2016년 무대에 오른 뮤지컬 ‘리틀잭’에도 노래 ‘마이 걸’이 등장한다. 멜로디와 가사는 영화 ‘마이 걸’의 노래와 전혀 다르다. 그런데 첫사랑의 설렘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는 통한다.
첫사랑 콘텐츠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영화 ‘싱 스트리트’ ‘나의 소녀시대’ 등이 개봉해 관객을 만났다. 첫사랑의 대표 영화로 꼽히는 ‘건축학개론’은 2012년 개봉 당시 411만 관객을 끌어 모았다. 지금도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러디 되며 꾸준히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랑 이야기야 지겨울 정도로 쓰이는 콘텐츠다. 그런데 첫사랑은 또 다르다. 누구나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첫사랑, 첫 설렘의 순간은 야밤에 이불킥을 할 정도로 어설프고 창피했지만 무엇보다 순수했고 또 아프기도 했다. 그래서 가슴에 더욱 남는다. 오죽하면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말까지 있을까. 아예 이것을 제목으로 한 카이 작사 노래까지 있다. 이렇듯 첫사랑은 꾸준히 관객들의 관심과 공감을 받는, 적어도 평타는 치는 안정적인 콘텐츠다.
뮤지컬 ‘리틀잭’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1953)를 모티브로 구상된 작품이라 눈길을 끈다. 학창시절 수능에 출제되곤 했던 그 작품이다. 시한부 소녀와 시골 소년 사이의 아름답고 풋풋한 첫사랑은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중 하나로 꼽힌다.
‘리틀잭’도 비슷한 구성을 취한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사는 줄리와 그녀를 사랑하는 잭이 등장한다. 하지만 배경은 1960년대 영국의 오래된 클럽이라 바로 ‘소나기’를 연상하기엔 쉽지 않다.
이에 관해 옥경선 작가는 “극 중 20세기 영국의 시인 딜런 토마스의 시를 인용한 장면이 나온다. ‘연인들을 잃더라도 사랑은 잃지 않으리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며 “이 세상 모든 소설가와 시인들이 노래하고자 한 것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한데, 순수한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으로 한정짓지 않고, 다른 공간에서 이야기를 풀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시도를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황순원 소설 ‘소나기’가 모티브
1960년대 영국 클럽으로 시공간 이동
‘소나기’가 지닌 풋풋한 첫사랑의 감성을 모티브로 하되, 새로운 시공간을 부여해 뮤지컬만의 차별화도 갖추겠다는 포부다. 또 차별화를 위해 쓰이는 요소가 음악이다. 극 중 줄리와 잭을 만나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피아노 대타 연주를 하기 위해 클럽 마틴을 찾은 줄리에게 첫눈에 반한 잭. 줄리가 피아노 건반을 치고, 잭은 그 선율에 기타로 따라붙는다. 음악으로 교감하며 서로에 대한 호감을 싹틔우는 장면의 노래가 ‘심플’이다. 어쿠스틱부터 팝발라드, 블루스, 하드록까지 잭의 감정에 따라 각기 다른 장르의 노래가 어우러진다.
다미로 음악감독은 “‘소나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모든 멜로디 안에 서정성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지루하지 않게 다이내믹한 요소도 필요했다. 극은 1960년대 클럽 마틴이 배경인데, 어쿠스틱팝 등 그 시대에 존재하지 않던 음악 장르들이 쏟아져 나와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1960년대 장르를 따라 리얼하게 갈 것인가 고민하다가 결국 1960년대에 있었을 법한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로 작곡하는 걸 전체적인 콘셉트로 했다. 그리고 극 중 과거로 돌아가는 장면은 그 시대에 맞게, 나머지 장면들은 현대적으로 편곡했다”고 설명했다.
음악 사이 이뤄지는 두 남녀배우의 교감은 뮤지컬 ‘원스’를 떠오르게도 한다. 그런데 ‘리틀잭’은 잭이 줄리를 그리워하며 그녀에 관한 노래를 부르는 1인 콘서트 형식으로 ‘원스’와의 오버랩을 피해간다.
첫사랑의 대상인 그녀, 줄리 역을 맡은 배우들에게도 주목할 만하다. 첫사랑의 대표 공식이 있다. ‘건축학개론’의 수지가 그랬고, ‘클래식’의 손예진도 그랬다. 하얀 피부에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린 몸매, 그리고 긴 생머리까지. 그야말로 순수의 극치다. 줄리 역의 랑연과 김히어라는 이런 첫사랑 판타지를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랑연은 “시놉시스에 나온 캐릭터는 엉뚱하고 밝았다. 여기에 더 밝고 사랑스러운 에너지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극에 더 시너지 효과를 주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잭은 열정적이다. 그 순수한 열정으로 상처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정민과 김경수, 유승현이 잭을 연기한다. 이들과 호흡을 맞추는 김히어라는 “김경수는 감수성이 깊고 어린아이 같아 내가 챙겨줘야 할 것 같다. 반면 정민은 굉장히 남자답고 날카로워 내가 곁에서 응원한다. 유승현은 친구 같다. 서로 다투기도 싸우기도 하지만 그 안에 신뢰와 사랑이 있다”며 “같은 캐릭터지만 배우마다 조금씩 다른 첫사랑의 형태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줄리와 잭은 서로를 열정적으로 사랑하지만, 이들의 사랑을 반대하는 줄리의 아버지 때문에 잠시 이별한다. 이별의 아픔으로 잭은 알코올 중독에 약물 과다까지 인생을 막 살게 되지만, 이후 줄리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다시 한 번 그녀와 함께 노래를 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을 그들은 맞는다.
빠르게 달아오르고, 빠르게 식는 이른바 ‘인스턴트식 사랑’이 만연한 요즘, 줄리와 잭의 사랑은 신파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어설펐던 첫 순간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극은 잔잔한 감동 또한 전해준다. 옥경선 작가는 “오래된, 평범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주는 반가움이 있다. 마치 오래된 서랍을 정리하다가 문득 잊고 있던, 이전에 소중하게 간직했던 물건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처럼. 잊고 있던 그 첫사랑의 감성을 이번 극에서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공연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7월 3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