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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어반소사이어티] 구로시장 회춘시키며 “지속가능 도시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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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9호 안창현⁄ 2016.06.24 18:28:31

▲구로시장에 조성된 청년상인 특화구역 모습. (사진=구로구청)


(CNB저널=안창현 기자) ‘젊은 피로 전통시장 살린다!’ 구로구는 지난 해 말부터 최근까지 구로시장 내 청년상인 특화구역을 조성해 많은 관심을 끌었다. 명동보다 유동인구가 많던 구로시장이지만, 최근 예전 같지 않았다. 전통시장은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의 상권에 밀려나는 양상이었다.

이에 젊고 차별화된 아이템으로 노화한 시장 상권을 되살리기 위해 청년상인 특화구역이 조성됐다. 이미 지난 1월부터 구로시장 내 노후 점포를 리모델링해 4개의 청년상인 점포가 시범 운영되고 있었다. 수제피자, 똥집튀김 등 이색 아이템으로 젊은 층의 이목을 끌고 기존 상인들과의 융화도 이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에 힘입어 일대에 총 12개 청년상인 점포를 추가로 확보했다. 본격적으로 노후 점포를 재생해 시장 활성화를 꾀하고, 청년 창업 또한 촉진하자는 취지였다. 여기에 건축가 그룹 ‘어반소사이어티’가 참여했다. 건축 관련 단체로는 드물게 사회적기업으로 운영 중인 어반소사이어티는 주민주도형 도시재생, 지역 커뮤니티 등 공공 프로젝트들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구로 전통시장이 젊은 활력의 장소로
“환경미화식 도시재생 경계해야”

“소셜 미션(social mission)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어반소사이어티가 다른 건축 회사들과 차별화된다”고 말한 김은진 매니저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말했다.

“건축에서 건축가의 개성이나 멋진 건축물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오히려 건축이 도시 공간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커뮤니티를 활성화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도시재생 역시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인 계획에서 이뤄지지 않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하다.”

▲어반소사이어티는 구로시장 내 낙후된 점포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사진=어반소사이어티)


실제 구로시장처럼 낙후된 지역이나 건물을 재생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활발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선 한 번쯤 고민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좋은 취지에서 진행한 도시재생 사업들이 예기치 않은 결과로 부작용을 낳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4월 이화벽화마을의 명소였던 ‘해바라기 계단’과 ‘잉어 계단’이 지역 주민에 의해 훼손된 일이 발생했다. 이화마을은 혜화역과 동대문역 사이, 낙산공원 밑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곳이 벽화마을로 유명해진 것은 소외 지역의 환경을 개선하자는 취지로 진행한 ‘낙산 프로젝트’ 이후다.

70여 명의 미술가들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이화마을 곳곳에 그림을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했다. 가파른 계단에는 꽃 그림이 그려졌고, 낙산공원 산책로에는 멋진 조각들이 늘어섰다. 이를 보기 위해 외부 사람들이 찾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은 조금씩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당초 낙후돼 침체기를 겪던 마을의 주민 대부분은 이 사업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마을이 활성화하고 관광객 유치에 성공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외부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면서 소음과 불편을 두고 주민들 사이에 불만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갈등을 빚던 와중에 참다못한 주민이 해바라기와 잉어 벽화 2점을 회색 페인트로 덧칠해 훼손한 사건이 벌어졌다. 도시재생과 활성화, 방문객의 증가, 지역 주민의 이해관계 등이 맞물리면서 예상하지 못한 안타까운 결과가 나타난 셈이다.

어반소사이어티가 추구하는 도시재생은 지역의 자생력과 지속성을 찾는 일이다. 건축과 문화예술 인프라가 결합해 지역 주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고민하고, 주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코디네이터 역할을 자처했다.

구로시장에서 젊은 개성 찾기

구로시장에는 이미 노후 점포를 활용한 ‘영플라쟈’ 거리가 있다. 청년상인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 볼거리와 먹거리가 함께 어우러진 곳이다. 꽃초상화를 그려주는 이색 카페 ‘아트플랏츠’, 소규모 생산자들의 식재료 등을 판매하는 ‘쾌슈퍼’, 크레페 판매점 ‘구레페’ 등 이색적인 점포들이 눈길을 끌었다.

구로구는 청년점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자 영플라쟈 일대에 12개 점포를 추가로 확보했다. 매장당 4평 정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도로와 상하수도 매립 등 기반시설 보수와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해 청년상인 특화구역으로 조성했다.

▲청년상인 특화구역은 젊고 차별화된 아이템으로 시장 상권을 되살리기 위한 시도다. (사진=구로구청)


어반소사이어티에서 영플라쟈 일대의 설계 디자인을 담당한 김경석 팀장은 “일반적인 건축설계와 달리 설계에서 공사 감리, 시공까지 관여해야 했다. 구로구청, 구로시장상인회 등 다양한 관련 단체들과의 협력도 필요했다”고 말했다.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데 구로시장 건축물에 대한 과거 정보가 많지 않았다. 오래 전에 형성된 지역이라 남아 있는 건축 도면이 거의 없었고 필지 구획 정도가 전부였다. 어반소사이어티는 현장에서 직접 실측하면서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이 사업의 전반적인 운영과 관리는 구로시장 청년상인 창업지원 사업단이 맡았다. 점포 시공 또한 사업단이 담당하고 있었다. 김 팀장은 “사업단이 시공업체는 아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설계 감리를 넘어 시공 감독을 함께 도왔다”고 했다.

12개 청년 점포주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하고 현장에서 반영하는 역할도 해야 했다. 젊은 점포주들과는 이미 전주의 남부시장 청년몰 등을 답사하면서 구로시장 공간을 어떻게 꾸려야 할지에 대한 전체적인 생각들을 공유한 상태였다. 개별 점포에 대해선 점포주 의견들을 반영했다.

그렇게 해서 과거 전통시장이 들어섰던 낡은 공간에 △어묵탕, 닭날개 등을 파는 작은 선술집 ‘立春(입춘)’ △저렴하고 다양한 깐풍기를 판매하는 ‘목포깐풍기’ △오징어를 주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만드는 ‘브라더오징어’ △마카롱, 케이크 파블로바를 파는 ‘삼봉-빠’ △스튜, 칵테일을 만나는 ‘아르님’ △영국식 건강식 패스트푸드의 ‘포티앤샌디’ △이색적인 맛의 새우볶음밥이 자랑인 ‘하와이앤쉬림프’ △일러스트 디자인 소품점인 ‘땅별상점’ △핸드메이드 쥬얼리 가게인 ‘아우레올라’ △프랑스 자수 집 ‘자수하는 으녕씨’ △전국 전통시장 명품 참기름을 파는 ‘청춘주유소’ △추억의 과자 및 장난감을 만나는 ‘추억점빵’ 등 12개의 개성 넘치는 신세대 점포가 문을 열었다.

▲어반소사이어티가 리모델링한 ‘SEAM 센터’. (사진=어반소사이어티)

▲SEAM 센터는 전형적인 다가구 주택이었다. 리모델링 전과 후의 모습. (사진=어반소사이어티)


도시 유휴공간에 대한 새로운 쓰임도 모색

어반소사이어티는 도시재생 못지않게 소셜 하우징이나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어반소사이어티가 리모델링한 ‘SEAM(Social Entrepreneurship And Mission) 센터’도 이런 관심의 산물이다.

1990년에 지어진 전형적인 다가구 주택이었던 SEAM 센터는 서울숲 인근 고층주거단지에 위치해 있다. 김은진 매니저는 “사회적기업가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거점공간으로 계획된 공간이다. 기존 주택의 외관을 가능한 유지하면서 내부 공간을 개조했다. 한 건물에서 아래 2개 층은 코워킹 스페이스로, 위 2개 층은 쉐어하우스로 꾸민 독특한 건물”이라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건물 자체가 ‘공유공간 플랫폼’인 셈이다.

어반소사이어티는 막다른 전면 도로와 기존의 외부 진입계단이 좀 더 긴밀한 관계를 가지길 원했다. 그래서 코워킹 스페이스의 출입구를 새로 만들었다. 낙후된 외벽 부분은 감추기보다 목재와 페인트 마감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과거의 흔적을 드러내도록 설계했다.

김 매니저는 도시 속 버려진 공간, 유휴공간의 가치를 환기하는 어반소사이어티의 작업도 소개했다. 강원대학교 옥상에 꽃을 심고 벌을 키우는 작은 생태계를 만든 ‘벌자리 프로젝트’였다. “도시재생은 낙후건물의 리모델링뿐 아니라 유휴공간에도 주목한다. 비어있고 방치된 공간에 새로운 역할과 이름을 찾아주는 일은 공간을 중심으로 지역의 커뮤니티가 다시 살아가는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반소사이어티가 천안 구도심에서 진행 중인 도시재생 프로젝트. (사진=어반소사이어티)


최근에는 천안 구도심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다양한 예술가 단체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구도심 지역이 텅텅 비어있어 제대로 관리하기도 힘든 상태다. 도시 곳곳에 쓰레기가 가득하고, 이를 어쩌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하는 형편이다. 이 지역을 예술가들과 함께 활성화시킬 방안을 모색했다”는 설명이다. 1차 결과물이 오는 7월 초 완료될 예정이다.

최근 이화벽화마을의 예에서 보듯, 도시재생 작업에서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은 중요하다. 낙후된 지역에 관광-방문객의 이목을 끌만한 그림을 그리고 건물을 짓는 것만으론 또 다른 폐해를 낳을 수 있다. 전문가 입장에서 도시 공간에 대한 면밀한 진단과 분석, 실제 지역 주민들과 커뮤니티의 소통과 협업 등을 강조하는 어반소사이어티의 작업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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