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7월 20일. 미술계 이곳저곳이 북적북적했다. 故 백남준 작가의 탄생일이자, 서거 10주기를 맞아 이를 기리는 전시, 기념관 발대식, 아트 퍼포먼스 등이 펼쳐졌다. 그 성격과 형태는 모두 달랐지만, 위대한 아티스트를 기리는 마음만은 같았다.
PART 1. 백남준 생일에 공개된 ‘백남준 쇼’
동대문 DDP서 작품 100점 및 어록 공개
동대문 DDP는 7월 20일 유독 들썩였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조용한 여타의 전시장들과는 달리 다양한 음악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백남준 작가 서거 10주기 특별전 ‘백남준 쇼’ 현장이다. 이번 전시는 예화랑과 백남준문화전시산업전문회사를 비롯해 YG플러스, 디스트릭트 팀 등이 함께 꾸렸다. 김방은 예화랑 대표는 “음악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었던 백남준 작가의 작업 인생을 살펴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대표는 “백남준 탄생일인 7월 20일 전시를 공개해 뜻 깊다. 그리고 본래 백남준 생가와 DDP가 거리상 가깝다. 그 기운을 받아 ‘백남준이 현재도 살아 있으면 어땠을까’ ‘ 지금도 우주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을 것 같은 백남준이 우주선 형상의 DDP에 다시 나타난다면 정말 재미있겠다’는 생각에서 전시가 출발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백남준의 작품 100점, 생전의 그와 친분이 있었던 임영균 작가가 찍은 백남준의 사진 43점 등 총 143점을 선보인다. 개막식에 참석한 임 작가는 “80년대에 뉴욕에 공부하러 갔을 때 백남준의 전화번호를 어렵게 알아내 만났다. 20년 동안 자주는 못 봤지만 꾸준히 봐오면서 느낀 건, 참 순수한 사람이자 시대를 뛰어넘은 예술가였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60년대 대구 사람들이 처음 TV를 접할 때 백남준은 이를 예술의 매개체로 활용했고, 80년대에는 인공위성을 작업 세계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90년대에는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던 레이저를 활용했다”며 “과학자도 아닌데 첨단 매체를 어떻게 활용하냐고 물으니, 뉴욕타임즈의 사이언스 섹션을 보고 공부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하더라. 항상 작업에 열정을 보였던 백남준이 지금 살아 있다면 또 시대를 초월하는 작업을 보여주지 않았을까”라며 그를 추억했다. 전시는 이런 의미에서 백남준이 자신만의 걸작을 완성하기 위해 걸어온 아티스트로서의 삶, 그리고 그의 예술 세계를 전반적으로 살핀다.
전시는 크게 5가지 주제로 이뤄진다. 첫 주제는 ‘희망(hope)’이다. 이 방에 들어서면 영상이 돌아가는 여러 부속품들이 한데 모여 로봇 모양을 하고 있는 백남준의 작업들을 볼 수 있다. 인간의 모습을 닮은 로봇들이 줄지어 관람객들을 반기는 듯한 모양새가 눈길을 끈다.
김 대표는 “백남준 작업의 본격적인 탄생을 의미하는 방이다. 모든 탄생에는 희망이 자리한다. 아이가 태어날 때도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아이가 잘 자라기를 희망한다”며 “작업의 탄생 또한 다르지 않다. 백남준은 작업을 할 때 인간과 과학기술의 아름다운 조화를 염원하며 작업했다. 그 염원을 담고 탄생한 작업은 우리에게 백남준이 하고 싶었던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해주며 우리를 반긴다”고 말했다.
이어서 두 번째 방 노스텔지어(nostalgia)가 기다린다. 첫 번째 방이 백남준 작업의 시작을 알렸다면, 이 방은 그가 가장 열정을 불태웠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꺼낸다. 벽에 백남준의 사진이 한 가득이다. 예술가뿐 아니라 인간 백남준에 대해서도 접근을 시도한 결과다. 수많은 예술 퍼포먼스의 흔적들, 작품 구상을 위한 스케치, 드로잉, 그의 정신이 담긴 손 글씨가 가득하다. 꼭 현대에 재현된 백남준의 작업실 같다.
김 대표는 “60~70년대 백남준의 젊은 시절을 보여주는 방이다. 또한 80~90년대 다큐멘터리 사진들도 있다. 나 또한 백남준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이 방을 통해 백남준을 간접적으로 만나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방에는 시적인 능력도 보였던 백남준의 모습도 볼 수 있다. 16살 때 한국을 떠나 영어가 더 편했던 백남준은 한자에 대한 관심으로 한자를 배워 한글, 한자, 그리고 영어를 섞어서 쓴 글을 많이 남겼다. 그래서 한 번에 내용을 이해하기엔 힘들지만 그 내용에는 예술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고, 미사여구도 대단하다. 이번 전시에서 그 글들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세 번째 방은 보편적인 주제로 마련했다. 바로 사랑(love)이다. 인간미가 넘쳤던 백남준을 회상하며,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 빠질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을 이야기하는 공간이다. 작가의 몇 안 되는 샹들리에 이미지의 작품들이 전시장 천장에 매달려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간 한가운데의 첼로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현대 작가들의 컬래버레이션이 함께 펼쳐진다는 점도 특별하다. 백남준은 생전에도 다양한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했다. 이번 전시도 그 작업 정신을 이어간다.
작품이 벽에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공간에서는 영상 작품들이 천장에 걸려 있어 감상하려면 위를 바라봐야 한다. 미디어 아티스트 최종범의 연출과 ‘TV 첼로(cello)’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더욱 방을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최 작가는 삼성 퀀텀닷 SUHD TV로 백남준에 대한 헌정작을 선보인다. 김 대표는 “이 방엔 샹들리에 작품 세 점과 TV 첼로 작품 한 점이 함께 전시돼 영상과 음악의 아름다운 결합을 보여준다. 감수성이 뛰어났고 로맨틱한 면모까지 작업에 드러냈던 백남준의 작업이 인간적으로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네 번째 방에서는 분위기가 살짝 반전된다. 컴컴한 방에서 영상이 재생되는 순간 반대편 전면에 설치된 거울에 이 영상이 반사돼 공간을 가득 채운다. 영원(infinity)을 주제로 한 방이다. 모차르트 서거 200주기를 기념해 백남준이 만든 M200 작품에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통해, 예술은 영원히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김 대표는 “보통 작가들은 그림부터 그리지만 백남준은 음악부터 시작했다. 많은 작품에서 음악 소리가 났고, 이번 전시에서도 음악이 빠지는 구간이 없다. 특히 M200은 고전 클래식부터 현대 음악까지 삽입된 작품으로, 백남준이 모차르트라는 천재 예술가를 잊지 않기 위해 작업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천재 예술가끼리는 서로의 공통분모를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예측도 전했다. 김 대표는 “M200을 보면 영상에 백남준과 백남준의 동료들이 계속 나온다. 아마 천재 예술가 모차르트의 삶과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중첩해서 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봐도 굉장히 아름답고 서정적이고 세련된 이 작품은, 백남준과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전한다. 이 방은 그런 의미에서 ‘영원’을 주제로 한다”고 덧붙였다.
첫 번째 방부터 네 번째 방 어느 하나 독특하지 않은 방이 없지만 절정은 마지막 다섯 번째 방 이데아(idea)다. 백남준의 가로 10m, 세로 6m의 대작 ‘거북’이 한가운데에 펼쳐져 있고, 여기에 디스트릭트 영상팀이 바닥 전면에 재생되는 영상을 제작해 함께 틀어놓았다. 영상은 약 3분 동안 펼쳐지는데 현란할 정도로 화려한 특징이 있다. 김 대표는 “영상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보는 관람객이 없다. 금방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거북’ 작업과 디스트릭트 팀이 함께하는 이 공간은 관람객의 흥미를 가장 끌어올리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백남준과 젊은 작가들의 컬래버레이션이 이 공간에서 펼쳐진다.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쇼를 해서 각광받은 디스트릭트 팀이다. 백남준이 살아있었으면 이런 젊은 팀과 재미있는 작업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여기서 전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은 전시장에 설치된 계단의 가장 위쪽이다. 마치 바다를 헤엄치는 듯한 거북의 모습이 펼쳐진다.
백남준은 “예술은 페스티벌이다”라는 말을 입에 담고 살았다 한다. 전시 또한 축제의 장으로 전시를 꾸렸다. 김 대표는 “백남준이란 이름은 널리 알려졌지만, 그의 작업을 어렵다고 생각해 잘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전시는 그런 백남준에 쉽게 접근하고, 작업의 독창성과 예술성을 알리며 우리 예술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전시는 DDP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배움터 디자인 전시관에서 10월 30일까지.
PART 2. 백남준 기념관 조성사업
‘헬로우 백남준’ 발대식으로 백남준 기리기
같은 7월 20일 백남준 생가가 있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 일대도 분주했다. 백남준 기념관 부지에서 기념관 조성사업 발대식 ‘헬로우 백남준’이 열렸다. ‘백남준 쇼’가 백남준의 작업을 전반적으로 살펴본다면, ‘헬로우 백남준’은 앞으로 백남준의 여러 전시를 소개하기 위한 첫 단계다.
백남준 기념관 조성 사업은 서울시가 창신·숭인 지역민들의 건의에 따라 작가의 집터가 있던 창신동 197번지 소재 한옥을 매입하고, 시립미술관이 조성 및 운영을 담당해 추진하고 있다. 시립미술관은 현재 백남준 10주기 추모전인 ‘백남준 ∞ 플럭서스’전을 선보이고 있다. 그동안 음식점으로 쓰였던 단층 한옥(연면적 93.9㎡, 약 28평)은 건축가 최욱 설계로 올해 11월 완공을 목표로 해체와 보수를 거쳐 리모델링 중이다.
백남준 기념관은 추후 개관 뒤 백남준의 삶과 예술을 소개하고, 특히 작가에게 저장된 30-40년대 종로, 동대문 일대의 문화적 기억과 훗날 음악, 전자, 시각예술을 통섭한 거장의 예술세계가 맺는 관계를 찾아보는 상설전을 열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립미술관 측은 “상설전은 소리, 영상, 글, 사진 등의 복합매체 콘텐츠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소개하는 버츄얼 뮤지엄과, 사물과 전자장치가 혼합된 아날로그 디오라마 전시물로 구성돼 전시 서사가 실내외 공간에 입체적으로 연출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은 시각예술 큐레이터와 백남준 연구가, 전시서사 구성작가, 미디어 UI 설계자, 시각예술가, 그래픽 디자이너, 인테리어 연출가의 협력 작업으로 상설전 구성 및 제작을 진행 중이다.
이밖에 현대예술에 대한 소통과 주민들과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7~11월 지역주민과 시민 대상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7월 15일 시각예술가 이강준이 ‘나도 미래의 세계인!’을 주제로 강의를 펼쳤고, 9월에는 기념관 조성에 참여한 예술가와 연구자들이 백남준의 예술세계와 40년대 창신동의 기억을 소개하는 대화 시리즈, 10월경에는 도슨팅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도슨팅 교육 워크숍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서울시립미술관 측은 “기념관 실내에는 상설전시 외에 서울시와 지역 주민들의 협의를 통해 탄생한 주민 활동 공간이 조성될 예정”이라며 “이 공간은 관람객 휴식 공간 및 주민들의 모임방이자 백남준에 대한 간단한 자료 열람이 가능한 북카페, 도슨팅 교육공간으로 사용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발대식은 바로 이 기념관 조성사업의 시작과 경과를 알리는 신고식이자 백남준의 생일잔치, 그리고 동시에 사업의 무사 완공을 기원하는 기념식으로 이뤄졌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영종 종로구청장, 유가족을 비롯해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등 문화계 주요 인사 80여 명이 참석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사업경과 보고와 더불어 백남준의 예술적 영향을 오마주하는 후배 예술가들의 축하 공연과 퍼포먼스가 함께 펼쳐져 뜻을 더했다.
PART 3. 아트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 룩’
음악 공연과 패션쇼로 "백남준 리스펙트"
7월 20일 따가운 햇볕이 내리쬈지만, 백남준 리스펙트 프로젝트가 진행된 홍대 거리는 백남준을 기리는 후배 예술가들의 열정이 더 뜨거워 눈길을 끌었다. 음악 공연과 패션쇼가 함께 펼쳐지는 아트 퍼포먼스 형태로 진행됐다.
이번 프로젝트를 주최한 펠릭스파버 측은 “인류에게 창조, 혁신, 도전, 유머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겨준 백남준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 이번 자리를 마련했다”며 “엄숙한 자리가 아니라, 길거리의 사람들과 함께 백남준을 기리고 퍼포먼스를 즐기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고 취지를 밝혔다.
먼저 백남준의 정신적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존 케이지의 ‘4분 33초’ 무음 연주곡을 오마주 한 음악 공연이 먼저 펼쳐졌다. 펠릭스파버 측은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할 수도,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고 표현한 백남준, 그리고 4분 33초 공연을 통해 무음도 음악이 될 수 있음을 세상에 알린 존 케이지의 창조적 만남을 오마주 한 공연”이라고 소개했다. 이규재 플루티스트가 중심이 돼 콘트라베이스, 기타, 플루트, 타악기로 구성된 팀이 연주로 퍼포먼스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백남준의 열정을 잇는 후배 작가들(김서진, 데칼, 반갈, 하이경)이 제작한 아트 티셔츠를 입은 모델들이 패션쇼를 펼쳤다. 선두 모델이 바이올린을 끌고 워킹하는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아트 티셔츠를 입은 모델들이 포즈를 취했다.
김서진은 백남준을 영혼 치유사로 해석한 ‘스피릿 힐러’, 데칼은 음악의 전시로 백남준에 접근한 ‘송 오브 네이쳐(Song of Nature)’를 펼쳤다. 그리고 반달은 백남준 작업에서 느낀 세심한 배려의 향기를 모티브로 한 작업, 하이경은 “바이올린, 피아노는 연주도 할 수 있고 다른 일도 할 수 있다”는 백남준의 말에서 영감을 받은 ‘플렉서스(Plexus)’ 작업을 아트 티셔츠로 제작했다.
이밖에 달의 주기를 12개의 TV로 형상화한 백남준의 ‘달은 가장 오래된 TV’, 그리고 전자고속도로라는 광대역 통신을 타고 새로운 사회로 함께 가자는 의미를 담은 ‘이지 라이더(Easy Rider)’를 오마주 한 메시지도 아트 티셔츠로 제작됐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김서진 작가는 “뜻밖의 제의였다. 하지만 평소 백남준의 작업을 존경하는 후배 중 한 사람으로서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내 작업은 가상공간이 주요 소재인데, 시공간을 뛰어넘으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까지 예술로 위로를 전하는 백남준의 작업에서 배울 점을 느꼈다”며 “그래서 ‘스피릿 힐러’ 작업으로 백남준을 기리는 뜻을 아트 티셔츠에 담았다. 특히 그림에서 날개 부분을 클로즈업 했는데 어디든 상관없이 예술의 힘을 전하는 백남준의 작업을 기리는 의미도 있다”고 작업을 설명했다.
모델들의 패션쇼 뒤에는 이규재 연주그룹이 바이올린 해체 퍼포먼스를 하는 것으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펠릭스파버 측은 “백남준의 시대정신을 널리 알리고, 미래 세대에게 작은 것이라도 최초의 도전을 해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전하고 싶었다”고 마무리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