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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작가 ①] 양경수 "보람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줘요"

가식적 힐링 이야기는 그만! 돌직구로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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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5호 김금영 기자⁄ 2016.08.12 16:45:06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힘을 내요~슈퍼 파월~” 개그맨 김영철이 무심코 부른 이 노래 한 구절이 2015년 대박 유행어로 떠올랐다. 이 유행어를 패러디한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왔고, 김영철은 이 유행어의 힘을 업고 인기를 마음껏 누렸다. 2015년 유행어였지만 2016년 현재까지도 꾸준히 회자되며 예능 프로그램에서 쓰이고 있다.


왜 이 단순한 말이 유행어가 됐을까?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지친 마음을 자극하고 감성을 두드린 측면도 있지 않을까. 잘하라고, 노력하라고 다그치는 사회다. 직장 생활도 잘 해야 하고, 타인과의 관계도 잘 다져야 하고, 이것저것 노력이 요구되는 사회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격려도 필요하다. 힘을 내라고.


이 가운데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현대인의 감성을 두드리는 두 작가가 눈길을 끈다. 양경수는 돌직구를 날리고, 정도영은 캐릭터처럼 희화화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무겁지 않게 재미있게 접근하는 방식이 닮았다.


PART 1. '그림왕 양치기' 양경수의 세상보기
"웃으니까 진짜 웃는 것 같죠?"


▲'그림왕 양치기'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인 양경수 작가가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는 '아트스페이스 담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사진=김금영 기자)

“아, 보람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제대로 된 돌직구가 직장인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저자 히노 에이타로의 책 제목으로, 여기엔 꿈을 따라가기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라는 식의 조언은 등장하지 않는다. ‘경영자 마인드로 일하라’고 조언하는 여타 자기계발서와 달리 이 책은 “경영자의 마인드로 일할 테니 경영자의 월급을 주세요~ 썅~”이라고 받아친다. 하물며 저자는 ‘사축(社畜: 회사에 매인 가축)’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직장인을 노예형부터 기생충형, 주머니형, 좀비형 등으로 종자를 나누기까지 한다.


그런데 가슴 따뜻한 조언보다 돌직구가 가득한 이 책에 오히려 직장인들이 열광 중이다. 발행 2주 만에 4쇄를 찍으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책의 내용도 파격적이지만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게 있다. 책 표지에 ‘보람’을 한보따리 안기려는 상사 앞에서 손가락으로 돈 모양 표시를 하면서 “어디서 개수작을”이라고 말하는 직장인의 모습을 담았다. 실제로 저런 일이 벌어진다면? 바로 모가지다. 그런데 이 표지에 또 직장인들이 열광했다.


책 중간 중간에도 여러 그림과 문구가 등장한다. 하나같이 웃는 표정인데, “이제 힘들기도 힘들어~ 지치는 것도 지쳤어~” “어차피 스쳐지나가는 월급, 냄새나 한 번 맡아 보자꾸나” “쉬는 날 새벽 등산도 업무의 연장인가 봐요~ 하하~ 젠장~” 등 상황은 웃프다. 그림을 보는 순간 직장인들은 “작가가 독심술 능력이 있나 보다”라며 빵 터진다. 체할 듯한 속에 시원한 동치미 국물 들이켜듯 유쾌함과 통쾌함을 준다는 반응들이다. 이 그림들은 SNS를 타고 여기저기 빠르게 전파되며 직장인들의 프로필 사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양경수 작가의 일러스트. '아, 보람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책 표지에 실려 선풍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 표지 그림을 그린 장본인이 서울 연남동에 새로 개관한 ‘아트스페이스 담다’에서 9월 30일까지 개인전 ‘양경수+양치기=그림왕’을 연다. ‘그림왕 양치기’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인 양경수 작가가 조직생활의 단면을 풍자한 그림들과, 불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한데 모아 선보인다.


작가는 첫 등장부터 포스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수줍어하거나 긴장한 기색 없이 당당했다. 가식도 없고 화끈했다. 이런 면모는 범상치 않은 예명 ‘그림왕 양치기’에서도 느껴졌다. 흔히들 양치기라면 거짓말쟁이 소년을 떠올리기 쉽지만, 작가의 예명 양치기(梁治己)는 ‘자신을 다스린다’는 뜻이라고. 그의 그림은, 웃는 얼굴의 등장인물들에 상황에 맞지 않는 돌직구 말투를 넣는 특징이 있다. 이 예명도 이런 이중적인 의미를 지녔다.


“저는 생각을 기록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사기치기(思記治己: 생각을 기록하고 나를 다스린다)로 예명을 하려다가 고심 끝에 양치기로 정했어요. 뭔가 이중적 의미를 담은 말들을 좋아해요. 제 예명 양치기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거짓말쟁이라는 의미 외에 자신을 다스린다는 전혀 다른 뜻을 지녔죠.”


어디서 약을 치냐고?
힘든 세상 속 병든 현대인에게


▲양경수 작 '난 달라'. 그림엔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은 없다. 웃는 얼굴에 힘든 상황을 암시하는 돌직구 멘트가 특징이다.

직장인들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한 공감가는 그림을 그리지만 정작 그는 어떤 조직에 소속돼 직장생활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이디어 제공의 원천은 바로 친구들이다. 또 평소 카페나 길거리에서도 사람들의 수다에 귀기울이며 세상사는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고.


“30대 중반 언저리인 제 친구들은 이제 다 직장에서 중간 위치 정도예요. 완전히 위도, 그렇다고 막내도 아니죠.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는 이 위치에서 친구들이 정말 불평불만을 많이 하더라고요. ‘네가 회사 생활을 안 해봐서 모른다’부터 시작해 말들이 길어지는데, 처음엔 그냥 듣다가 그 말들에서 펀치라인(힙합에서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중의적 표현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가사)이 느껴지더라고요. 이 느낌을 담아 그려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양 작가는 아이 엄마, 학생, 직장인을 주요 타깃으로 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공감을 일으킨 그림들은 SNS에 짤방(‘짤림 방지’의 줄임말로 글과 함께 사진 또는 동영상을 함께 올리는 것)으로 떠돌아다녔다. 이 그림들이 일명 ‘그림왕 양치기 약치기’ 시리즈다.


“어디서 약을 파냐, 약을 치냐는 말이 있잖아요. 허황된 말을 비웃을 때 쓰는 말이죠. 그런데 제가 말하는 ‘약치기’는 병든 세상에 약을 친다는 의미도 있어요. 제 생각보다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재미있다고, 통쾌하다는 반응을 보여줘 놀라기도 했어요. 그러다 이번에 출판사로부터 제의를 받아 추가적으로 그림을 더 그려 책에 싣게 됐습니다.”


▲언어 유희를 좋아한다는 양경수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는 그림. '상사병'을 새롭게 재해석했다. 양 작가는 가슴에 품고 있지만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풀어낸다.

그런데 양 작가는 직장인들의 마음을 대변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라는 의외의 말을 했다. “직장인뿐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말이었다.


“직장인뿐 아니라 모두가 힘든 사회예요. 직장인이라 힘든 게 아니라 어린아이도 힘들고, 학생도 힘들고, 경영자도 힘들고, 연세가 있는 분들도 힘들고, 사회가 전체적으로 부조리하고 힘들어요. 사람들 마음에 여유가 없죠. 보니 각자의 불만을 풀어내는 방식이 다르더군요. 정치 하는 사람들은 토론을 하고, 경영자는 회의를 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술자리나 SNS에서 설전을 벌이기도 하죠. 저는 그림으로 이야기하려 했어요. 퍽퍽한 세상에 그림으로 약을 쳐보자는 생각이죠.”


힘든 사회 현실을 체감한 것은 작가 또한 치열하게 살아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20살 때 독립해 홍대앞에서 좌판을 깔고 피어싱 작업을 시작한 작가는 노점 1세대 중 한 명이다. 클럽에서 일하기도 했고, 군대 제대 후 2006년부터는 전국을 다니며 벽화 작업을 했다. 현재도 벽화 작업은 꾸준히 하는 중인데, 유명 치킨 브랜드의 벽화를 맡아 그리기도 했다. 2007년 대학교에 복학했다가 학비가 비싸서 1인 인테리어 회사를 차려 을지로를 제집 같이 드나들고 중국도 다녀왔다.


추계예대 서양화과 출신인 그는 2012년 졸업 뒤 서양화 작업을 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컴퓨터와 태블릿을 사서 디지털 드로잉을 시작했다. 당시 웹툰이 떠오를 시기여서 먹고 살 길을 궁리했던 것. 작가는 “웹툰 스토리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작업에 대한 생각은 항상 있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만큼 사회 현실과 내 여건이 받쳐주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직접 겪어봐야 안다’고, 고달픈 상황을 몸소 겪어온 그이기에 더욱 그의 그림에 공감이 가는가 보다.


직장인만 힘든가? 사회 전체가 힘들다
‘힐링은 개나 줘라’고 돌직구


▲양경수, '녹원전법상'. 화면 속 화려한 복장을 하고 디제잉을 하는 부처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힐링’이라는 말에 코웃음을 치는 그다. 가식은 뒤로 하고, 하고 싶은 말을 까놓고 하자는 것이다.


“원래 책 제목으로 생각했던 게 ‘힐링은 개나 줘라’였어요. 언제까지 힐링 타령만 할 것인지에 대한 반문이었거든요. 진짜 힘든 사람에게 ‘힘내세요’ 말만 하는 건 도움이나 힐링이 전혀 되지 않아요. 오히려 직설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할 때 쾌감을 느끼고, 해소가 되는 점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하지만 실제 자신이 처한 현실에선 직접 그러기는 아직 힘들죠. 그걸 대신 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의 본래 작업에서도 이런 점이 느껴진다. 양 작가는 원래 불교 미술 작가로 알려졌다. 그런데 정통 불교 미술이 아니라, 불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그림 속에 근엄하고 다가가기 힘든 아우라의 부처가 등장하지 않는다. 선글라스를 끼고 세련된 복장에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는 부처의 모습 등이다.


그리고 부처의 십대 제자들도 재해석됐다. ‘더 텐(The Ten)’ 시리즈 속 십대 제자들은 팔에 문신을 한 채 미용 도구를 들고 있거나, 레게 머리를 하고, 턱시도를 입고 있다. 각양각색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평범한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게 느껴진다.


▲양경수, '더 텐(The Ten)'. 부처의 십대 제자들을 재해석했다.

“현대인이 열광하는 또 하나의 콘텐츠가 히어로물이에요. 힘든 현실 속 자신을 구제해줄 히어로의 존재를 믿고 싶은 건지 모르죠. 그런데 현실에는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레이저를 쏘는 히어로가 존재하지 않아요. 저는 꼭 초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우리가 다가가기 힘들다고 여기는 히어로도 사실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고, 우리 누구나 히어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부처를 ‘깨달은 자’라며 열반에 이르렀다고들 하는데, 각자 인생을 살아가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소박한 것일지라도 그게 열반이 되고,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거죠.”


허황된 희망과 가식적인 위로, 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이야기보다는 실제 와 닿을 수 있는 이야기와 돌직구가 그의 특징이다. 재해석된 불교 미술 작업이 인정받아 제12회 대한불교 조계종 ‘대원상’, 2015 불교박람회 ‘우수콘텐츠상’ 등을 수상했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 노르웨이 ‘마이단스 페스티벌’에 비주얼아티스트 부문으로, 그리고 네덜란드 국립 세계문화 박물관 ‘더 붓다’전에 초청되기도 했다.


원래 작가가 꿈이었냐고 묻자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던 그는 이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어쩌면 그의 작업, 그리고 양경수라는 인간 자체, 더 나아가서는 현 시대에 하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보이는 것에 대한 선입견을 꼬집는 작업. 흔히 어떤 아이템을 보면 누군가를 떠올리듯 스님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템들을 나열했다.

“꿈을 좇으며 살라고 이야기하는 시대예요. 그런데 막상 꿈이 뭐냐고 물으면 의사, 판사, 변호사 등 특정 직업군을 답하는 사람이 많아요. 저는 그건 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걸 이루고 나서도 불평불만이 쏟아지는데 과연 꿈을 이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제 꿈은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그저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하고 싶은 거야 많죠. 형제를 주제로 한 그림도 그려보고 싶고, 불교 미술도 꾸준히 할 것이고,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다만 이 모든 것들을 행복하게 하고 싶어요.”


행복을 기반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그의 그림이기에, 사람들도 그의 작업에서 행복과 유쾌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길 바라며 양 작가는 오늘도 세상에 약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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