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5호 김금영 기자⁄ 2016.08.05 15:49:24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절대 현혹되지 마라.” 영화 ‘곡성’의 유행어다. 그런데 이 말이 또 떠오르는 현장이 있다. ‘더 셜록’ 시즌 2로 돌아온 최현우 마술사의 공연장이다. 1500여 관객은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매의 눈초리로 쏘아본다. 트릭의 현장을 기어코 밝혀내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마술이 펼쳐지는 순간 1500여 개의 탄성과 비명이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마술은 그저 눈속임일 뿐이라는 마음을 품었던 사람들도 어느덧 기립박수를 친다. 최현우의 마술에 현혹된 관객들의 변화 또한 마술 같은 광경이다.
무대 위를 종횡무진 누비며 마술을 선보인 지 올해로 어느덧 20년이 된 최현우를 만났다. 무대 위의 그는 '최고 오래 가는 건전지'처럼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관객과 제대로 놀 줄 아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무대 아래에서도 그는 똑같았다. 시종일관 쾌활했으며 자신의 공연 인터뷰 자리에서 다른 공연을 칭찬하는 등 엉뚱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와의 대화 역시 마술처럼 기자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그의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였다.
이야기 하나: 최현우 그리고 '매직컬'
새로운 장르에 항상 목말라…연극도 도전 계획
마술계의 ‘위키드’. 최현우는 ‘더 셜록’을 이렇게 소개했다. 뮤지컬 '위키드'엔 마법을 쓰는 마녀들이 등장한다. 반대로 최현우는 마술쇼에 뮤지컬의 흥겨운 춤과 노래를 접목한다. 그래서 ‘마술쇼’가 아닌 ‘매직컬’(매직+뮤지컬)이라는 장르를 고심했고, 그 결과 '더 셜록'을 내세웠다. 지난해 첫선을 보였고, 올해는 업그레이드된 시즌 2로 돌아왔다.
“마술은 흔히 쇼 형태로 많이 공연되죠. 그런데 이런 틀을 깨고 싶었어요. 음악을 추가해 새로운 주류 트렌드로 만들면 어떨까 싶었죠. 21세기 다양한 문화 콘텐츠 중 뮤지컬은 주류에 속해요. 대중이 좋아하는 이 뮤지컬을 마술과 접목하면 더 멋진 또 하나의 콘텐츠가 탄생하지 않을까 궁금했어요. 마술쇼는 대부분 녹음 MR을 사용하는데, 더 셜록 무대에서는 작곡된 노래에 배우가 라이브로 노래를 불러요. 구성이 쉽지 않았지만, 뮤지컬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본을 쓰고 무대 연출을 고심했어요.”
어설프지 않고 싶었기에 오루피나 연출, 최종윤 작곡가 등 대형 뮤지컬을 성공리에 이끈 스태프진과 함께 했다. 공연 중간 중간 뮤지컬 배우가 풍성한 성량으로 관객을 현혹한다. 배우가 느닷없이 생뚱맞게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큰 스토리 속 한 캐릭터를 그는 맡았다. 더 셜록은 그냥 마술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코난 도일의 소설 ‘셜록 홈즈’ 시리즈를 바탕으로 시나리오가 구성됐다. 최현우는 극 중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 행적을 따라가는 셜록 역을 맡았다. 범인의 정체를 추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마술이 등장한다. 탈출 마술과 순간 이동, 공중 부양 등이 펼쳐지는 가운데, 전 관객이 참여하는 마술도 있다. 가장 탄성이 터져 나오는 마술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매직컬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이다. 다음 마술을 준비하는 시간에 무대를 비워두지 않고 한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촘촘한 구성이 눈길을 끈다. 매직컬을 매끄럽게 선보일 수 있었던 데는 평소 뮤지컬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찾아본 최현우의 습관이 기여했다. 인터뷰 전날에도 ‘스위니 토드’를 보고 왔다며, 작품에 대한 극찬을 쏟아냈다. 원래 뮤지컬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영감을 받는 순간의 희열이 그를 매료시킨다.
“마술과 뮤지컬의 결합은 전혀 이질적이지 않아요. 앞서 ‘신데렐라’ ‘고스트’ ‘팬텀 오브 오페라’ 등이 마술사에게 조언을 얻은 뒤 마법 같은 무대를 선보인 바 있죠. 관객들도 이 만남을 흥미로워 했어요. 저 또한 그랬고요. 평소 시간이 날 때마다 뮤지컬, 연극 등 공연장을 찾아요. 국내 작품들은 거의 보려고 하는 편이고, 해외에서도 시간이 허락하면 극장에 가죠. 특히 뉴욕에서 본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관객들이 가면을 쓰고 배우들을 쫓아다니는 형식인데, 무대 구성이 아주 흥미로웠거든요. 어제 본 ‘스위니토드’에서는 전미도 배우가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함께 마술 무대에서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웃음).”
다양한 콘텐츠를 접해야 시각이 넓어진다는 생각에 늘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직접 대본의 대사 하나하나까지 다 쓰는 최현우는 ‘마술 연극’ 도전을 꿈꾸며 대본을 쓰고 있다. 셜록 홈즈의 작가 코난 도일과, 그의 절친이었던 미국의 마술사 해리 후디니의 이야기다. 한 마술 때문에 크게 싸우고 헤어진 두 사람의 실화가 메인 줄거리다. 실화를 바탕으로 인간 심리의 끝을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다. 이것만으로도 바쁠 것 같은데, 배우로서의 가능성과, 방송 출연에 대한 의지도 전했다.
“마술사는 신기함을 연기하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트릭 또는 도구 자체를 보고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게 아니에요. 그 도구를 갖고 마술사가 어떻게 표현하고 연기하는지가 중요하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굳이 연기와 마술 사이에 명확한 구분점을 두지 않아요. 배우로 유명한 닐 패트릭 해리스도 원래 출발은 마술사였어요. 유명 영화감독이자 코미디 배우인 우디 앨런도 마술사였고요. 저 또한 좋은 작품과 기회가 닿으면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모든 가능성을 닫아두고 있진 않아요. 방송 출연 또한 그렇고요.”
매직컬, 마술 연극, 배우, 방송 모두 새로운 도전의 과정에서 그가 만난 것들이다. 앞으로 어떤 도전이 찾아올지 늘 가슴이 두근두근대지 않을까.
이야기 둘: 최현우 그리고 '이은결'
경쟁자? 학생 때부터 함께한 동료
인터넷 검색창에 ‘최현우’를 치면 다양한 연관검색어가 뜬다. 그중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은결. 국내 2대 마술사로 둘이 꼽히기도 한다. 올해 두 마술사는 나란히 20주년을 맞았다. 대중과의 친숙함도 비슷하다. 최현우는 SBS ‘스타킹’ MBC ‘무한도전’ 등을 통해 마술을 선보였고, 이은결은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나 혼자 산다’에서 방송인 서유리와의 호흡, 그리고 마술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마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비슷하다는 걸 발견했다. 이은결은 방송에서 원래 자신이 수줍음이 많은 성격으로 사람들과 이야기도 잘 하지 못했는데,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마술의 매력에 빠진 뒤 쾌활한 모습으로 변화를 겪었다고 밝힌 바 있다. 최현우도 그랬다.
“고등학교 때 마술을 처음 시작했어요. 저는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추고, 끼도 없고, 내성적인 아이였어요. 그런데 당시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이 전 세계를 사로잡았어요. 추석 특집을 항상 마술이 장식했죠. 저 또한 매료됐고요. 처음엔 현란한 마술로 여자친구를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웃음). 그런데 마술을 접할수록 점점 더 빠져들었습니다. 마술은 사람들과의 호흡이 필수예요. 그래서 담력을 키우려 지하철에서 여러 사연을 가진 껌팔이도 했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기 위해서요. 처음엔 많이 힘들었는데, 그런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비슷한 명성에 꼬리표처럼 서로의 이름이 따라다니기에 비교되는 게 스트레스 아닐까. 그런데 오히려 최현우는 크게 웃었다. “일단 비주얼부터 너무 다르잖아요. 은결이는 키가 크고 저는….” 참고로 이은결의 키는 190cm다. 최현우는 더 셜록에서 자신의 키와 관련된 유머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은결이와는 긴 세월을 함께 했어요. 고등학교 때 마술을 같이 했죠. 그런데 차이점이 있어요. 은결이의 마술은 쇼적인, 환상적인 요소가 강해요. 화려하고 멋있죠. 동작 하나를 해도 크고 시원시원하고. 저는 생각 깨뜨리기에 집중해요. 인간의 생각은 의외로 되게 조종되기 쉽다는 전제 아래 극을 진행하죠. 제가 선보인 ‘더 브레인’은 이런 저의 마술 성격을 잘 보여주는 공연이에요. 이 공연을 위해 심리학 관련 책들을 찾아 공부했어요. 마술을 통해 겪는 관객의 심리 변화가 초점이었습니다.”
최현우와 이은결의 공연을 모두 봤다. 이은결은 ‘일루셔니스트’로 유명하다. 그의 공연 제목에도 ‘일루션’(illusion: 환상, 환각)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올해도 20주년 공연 ‘일루션’으로 관객을 만났다. 이은결 마술의 기본 출발점은 환상 같은 마술이다. 이에 대해 이은결은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서 “해외에서 큰 마술을 하는 사람들을 대부분 일루셔니스트라고 칭하는데, 내가 말하는 일루셔니스트는 일루션, 즉 환상을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그의 무대에선 환상을 펼친 듯한 구성이 눈길을 끈다. 하물며 손가락만 사용해 다양한 그림자를 만들며 새로운 세계를 구현하기도 했다.
이은결의 공연을 넋 놓고 본다면, 최현우의 공연은 끊임없이 생각하며 보게 된다. 물론 골치 아픈 생각은 아니다. ‘더 셜록’에선 범인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숨겨진 힌트들을 찾고, 그것들의 퍼즐을 끼워 맞추고, 마침내 진실에 거의 다다랐을 때 느껴지는 희열이 있다. 특히 관객 참여 범위가 더 넓어진 이번 더 셜록 공연에서 관객들은 그저 무대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최현우와 함께 호흡해야 한다. 두 마술사의 무대는 이처럼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없게 각자의 개성이 묻어난다. 유쾌 발랄한, 현란한 입담, 그리고 긍정 에너지는 같다. 제대로 무대 위에서 놀 줄 안다고나 할까. 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대 가득 느껴져 관객을 즐겁게 만들고, 마술에 빠져들게 한다. 두 마술사의 공연을 다시 찾고 싶어지는 이유다
최현우에게 이은결은 라이벌이라기보다는 마술을 사랑하고 함께 나아가는 친한 동생이다. 그리고 서로의 위치에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마술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소중한 동료이기도 하다. 마술 불모지였던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의 마술사로 거듭나기까지 가시밭길을 묵묵히 함께 걸어온 동료애일지도 모르겠다. 다음엔 이은결에게 최현우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셋: 최현우 그리고 '20년'
"늙어 죽을 때까지 ‘마술 덕후’가 목표"
'초동안' 앳된 얼굴에 진짜 나이를 먹지 않을 것 같은 마법의 기운이 감도는 듯한 최현우는 국내 마술사 중 고참에 속한다. 20년째 마술 사랑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자신을 ‘마술 덕후’(덕후: 하나의 콘텐츠를 매우 좋아하는 이)라고 했다. '슬럼프가 없었냐'는 질문에 "그런 질문을 많이 받지만, 마술을 직업이 아니라 아끼고, 연구하고, 사랑하는 취미로 생각하기에 없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마술사의 화려한 무대를 보고 무작정 마술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최현우는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제 공연을 본 뒤 아이가 마술사가 되고 싶어 한다는 학부모 상담이 많이 와요. 그런데 저는 정말 하고 싶은 게 아니면 하지 말라고 해요. 경제적인 부분도 생각보다 힘들 수 있고요. 또 마술사는 무대 위에서 마술만 하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한 무대를 꾸리기 위해서 무대 디자인, 조명, 대사 하나부터 다 신경 써야 하죠. '더 셜록'도 공동 연출가의 역할을 맡아서 했어요. 그저 신기해 보인다고, 즐거울 것 같다는 막연한 환상은 위험해요. 돈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마술이 좋아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인기 마술사의 반열에 올랐다고 끝이 아니다. 오히려 관객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임무가 더 커진다. 한 번 마술을 보여준 뒤 다음 공연에 비슷한 게 또 나오면 “한 거 또 우려먹네”라는 이야기가 바로 튀어나올 수 있다고. 마술의 트렌드도 많이 바뀌었다. 요즘 관객들은 지루함을 빠르게 느끼기에 스피디한 전개가 필수다. 연령대로 요구하는 스타일도 다르다. 그래서 꾸준한 연구가 필요했다. 매직컬, 마술 연극 등 계속 새로운 방식을 고안하는 이유다.
“뮤지컬도 20년 전엔 주류 문화가 아니었죠. 그런데 지금은 마니아가 생겼을 정도로 인식이 달라졌어요. 마술 또한 그래요. 관객들이 공연을 보는 시선이 과거와 비교해 정말 높아졌어요. 강도가 세야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느낄 수 있는 시대죠. 30대 관객은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을 접한 세대라 대형 마술에 익숙하고, 50대 이상은 마술에 대한 이미지가 동춘 서커스단에 가까워요. 신기한 영상미에 익숙한 10~20대 관객은 리얼리즘이 강조된 마술을 원하죠. 이 모든 관객을 만족시킨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마술사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해요.”
그런 연구 결과 최현우는 현재 큰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일단 세 개의 큰 메인 공연이 있다. 심리학을 주제로 조금 더 성인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더 브레인’, 그리고 관객과 함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고 추리 과정까지 덧붙인 ‘더 셜록’, 마지막으로 올해 말 새롭게 선보일 ‘애스크’다. 마술 황금기가 지난 뒤, 이젠 마술이 마법이 아닌 트릭이라고 의심부터 하는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마술을 보러 오는지, 또 왜 자신은 그런 관객들 앞에서 계속 마술을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준비 중인 공연이다.
“큰 세 줄기를 잡았다고 고착화되는 건 아니에요. 시즌 형식으로 선보이긴 하지만, 매번 다시 올라갈 때마다 새로운 마술을 추가하는 업그레이드 버전을 보여주려 해요. 이번 더 셜록에도 지난해 초연 때는 볼 수 없던 새로운 마술들이 추가됐어요. 매직컬이라는 장르도 더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매끄럽게 수정하려 노력했고요. 세 가지 메인 공연 사이에 마술 연극 등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마술을 통해 행복을 찾았다는 최현우는 이 행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크다. 최근엔 마술사가 꿈인, 난치병에 걸린 어린이에게 생일 파티를 선물했고, 문화 소외 계층을 꾸준히 마술 공연에 초대하고 있다. 올 4월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학습 완구를 기부하기도 했다. 마법과도 같은 행복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저는 마술이 정말 좋아요. 마술을 할 때면 행복해요. 마술 덕후죠. 체력이 닿는 한, 늙어 죽을 때까지 마술 덕후가 되고 싶어요. 올해 60세인 데이비드 카퍼필드도 아직 현역이잖아요. 저는 아직 한참 멀었죠. 그리고 이 마술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게 바람이에요. 오늘도 무대에서 관객들과 마술로 만나야죠.”
의심이 가득한 시대에 마술은 더 이상 마법이 아닌 화려한 트릭이라고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마술을 보고 즐거워하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야말로 마술이 만들어내는 마법이 아닐까. 최현우의 매직컬 ‘더 셜록’은 8월 28일까지 압구정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