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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남아공] 인종차별 시린 아픔 전하는 거리 또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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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5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08.08 09:16:57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일차 (서울 → 홍콩 → 요하네스버그)

남미로 가는 다양한 항공 루트

저녁 8시 인천공항에서 홍공으로 출국한다. 서울에서 남미로 가는 루트는 매우 다양하다. 서울의 대척점인 상파울루까지는 전통적인 서울~LA~상파울루 구간을 운행하는 대한항공 이외에도 서울~캐나다~상파울루, 서울~유럽(프랑크푸르트)~상파울루, 서울~이스탄불~상파울루 터키항공, 서울~도하~상파울루 카타르항공, 서울~두바이~상파울루 아랍에미리트항공 등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 GDP의 25%를 담당하는 국가이자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차별의 아픈 역사를 가진 나라, 떠오르는 VISTA 국가(Vietnam, Indonesia, South Africa, Turkey, Argentina) 중 하나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하고 싶어서 요하네스버그를 경유하는 남아공항공(SAA: South African Airways)을 선택했다. 

인도양을 가로지르다

남아공항공은 국내선 및 아프리카 중부 및 남부 지역 노선 이외에도 아시아, 유럽, 북미, 남미, 호주 등 각 대륙에 다양한 장거리 노선을 보유하고 있다. 홍콩발 요하네스버그행 A330 항공기 승객은 매우 다양하다. 승무원 중 한 남성은 중국인 얼굴을 하고 있는데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호기심에 확인해 보니 중국계 남아공 시민이란다.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는 1만 700km, 13시간 30분 걸리는 초장거리 노선이라서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옆 좌석이 비었다. 옆 좌석이 빈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양지차다. 항공기는 인도차이나 반도, 태국 남부, 말레이반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을 횡단해 인도양 망망대해를 남서쪽으로 날아간다. 수많은 탐험가, 무역상, 그리고 노예들이 지나간 길이다.


2일차 (프리토리아 → 요하네스버그 → 케이프타운)

요하네스버그 도착

홍콩을 출발한 지 10시간 지나니 마다가스카르 상공이다. 요하네스버그까지 3시간 남았다. 자로 그은 듯 반듯한 아프리카 대륙 동남부 해안선을 만난 지 한 시간 지난 현지 시각 오전 7시 OR 탐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절차가 매우 신속하고 효율적이다. 입국장을 나와 수하물 보관소에 가방을 맡기고 오후 5시 45분 케이프타운 행 남아공항공 국내선 출발 시각까지 프리토리아(Pretoria)와 요하네스버그 시내 일부를 탐방한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도시고속철 가우트레인(Gautrain)을 타고 시내를 누볐다. 사진 = 김현주

남아공 개관

남아공은 인구 4900만 명, 면적은 122만 평방km로, 한반도의 5.5배, 남한의 12배가 넘는다. 1인당 GDP 5635달러이지만 빈부격차가 심하다. 백인 11%, 흑인 77%의 인종 구성이지만 공항 같은 곳에는 압도적으로 백인이 많다. 1652년 백인 이주자의 케이프타운 상륙으로 시작된 남아공 역사는 1910년 2차 보어(Boer)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국이 영국자치령 남아연방을 세운 뒤 1960년 남아공 출범 → 1968년 영연방 탈퇴 → 1994년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승리에 따른 342년 백인통치의 종식으로 이어진다.

요하네스버그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GDP의 10%를 담당하는 아프리카 최대 도시다. 네덜란드 이주자(Voortrekker)들이 마테벨레족을 몰아내고 건설한 도시로, 1880년대 골드러시(Gold Rush)는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을 불러 들여 오늘의 다양성을 만들어냈다. 고속 도시철도 가우트레인(Gautrain)을 타고 시내로 향한다. 

▲파크 스테이션을 찾은 젊은이들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알렉산드라(Alexandra) 빈민촌

시내 초입 말보로(Marlboro)역에 내려 프리토리아(Pretoria)행 열차로 환승한다. 말보로역은 요하네스버그의 대표적인 흑인 주거 지역인 알렉산드라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지만 경비가 삼엄해 걱정은 없다. 그러나 역 바로 바깥부터 흑인 하층민들의 누추한 집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포장도로로 녹지도 없는 먼지 날리는 황량한 땅이다.

열차는 프리토리아를 향해 드넓은 초원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달린다. 잘 가꿔진 넓은 땅, 그리고 넓은 땅에 종횡무진 이어진 도시 고속도로…. 여기가 바로 한때 백인들의 천국 아니었던가? 알렉산드라 빈민촌의 절망적인 모습이 프리토리아 외곽 부유한 백인 주거 지역과 대비돼 어른거리는 사이 가우트레인은 프리토리아 중앙역에 닿는다. 오전 9시쯤 된 시각이다.

▲알렉산드라(Alexandra) 빈민촌이 보인다. 프리토리아 외곽 부유한 백인 주거 지역과 대비되는 모습이 씁쓸하다. 사진 = 김현주

남아공 행정수도 프리토리아

요하네스버그 북쪽 50km에 위치한 프리토리아는 남아프리카의 행정수도로, 1855년 볼트레커(Voortrekker) 리더 프레토리우스(Pretorius)가 건설했다. 영국이 인정해 성립한 트란스발(Transvaal) 공화국 독립과 함께 1860년 남아공의 수도가 됐다. 2차 보어 전쟁(1899~1902)에서 영국이 승리해 남아프리카의 패권을 장악한 후 트란스발 공화국은 소멸했지만, 프리토리아는 남아연방, 남아공으로 국가 체제가 바뀌면서도 오늘까지 계속 행정수도로 남아 있다.

남아공의 입법 수도는 케이프타운, 사법 수도는 브람폰테인이다. 프리토리아는 1994년 유니언 빌딩(Union Buildings)에서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 선서를 하면서 남아프리카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중심이라는 오명을 벗는다. 그만큼 아프리카너(Afrikaaner: 남아공 태생 백인)의 활동 중심지였고 백인 비율이 높은 도시다.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 차별 정책은 제도로는 사라졌지만 현실에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사진 = 김현주

프리토리아 시내 풍경

프리토리아 역은 아프리카 종단 호화 블루 트레인(Blue Train)의 시발점으로, 콜로니얼 양식의 역사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휴일이라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이 드문데, 흑인 몇 명이 어슬렁거리는 이른 아침이라서 공연히 긴장하지만 곧 분위기에 익숙해진다. 역에서 두 블록 쯤 걸으니 왼쪽으로 시청사가, 시청사 광장에는 프레토리우스 동상이, 그리고 길 건너편 오른쪽으로는 트란스발 자연사박물관이 나타난다. 오늘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박물관이라서 반가운 김에 관람한다. 동물, 식물, 바다 생물, 광물 등 전시물이 방대하다. 

넓은 거리, 잘 가꿔진 공원 녹지가 남아공 행정수도로서 손색이 없다. 버스도 택시도 없는 거리를 걸어 폴 크루거(Paul Kruger) 박물관에 갔지만 휴관이다. 가던 길을 되돌아 교회 광장(Church Square)쯤 오니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현지인들이 하는 것처럼 처치 스트리트(Church Street)를 따라 하염없이 동쪽으로 걷다보니 국립극장(State Theatre)이다. 1981년 건립된 곳으로 오페라, 발레, 연극,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린다. 

역사의 현장 유니온 빌딩

계속 동쪽으로 약 20분 더 걸으니 드디어 유니온 빌딩(Union Buildings: 정부종합청사)이다. 넓은 잔디 광장을 지나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유니온 빌딩은 전형적인 영국식 설계로 지어졌다. 남아공 최초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 취임식이 열렸던 역사의 현장에 올라서니 감개무량하다. 세계가 환호했던 바로 그 현장이다. 노천 계단과 잔디 공원 사이에는 전몰장병 추모 벽판이 있고 한국전 참전자(전사 30명, 실종 8명) 명단도 새겨져 있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유니온 빌딩에서 내려다보는 프리토리아 도시 전경이 일품이다.

▲넬슨 만델라 광장은 거대 쇼핑몰 가운데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사진 = 김현주

아직 사라지지 않은 현실 속의 아파르트헤이트

미니버스를 타고 햇츠필드 가우트레인(Hatsfield Gautrain)역으로 향한다. 유독 백인이 많은 열차 안은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을 돌아보게 한다. 차별 정책은 제도로서는 사라졌지만 현실에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나왔다고 해서 미국 흑인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듯, 수백 년 백인 통치로 인한 차별과 불균형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좀처럼 섞일 것 같지 않은 너무나 다른 두 인종이 그나마 공존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가우트레인은 40분 걸려 로즈뱅크(Rosebank) 종점에 도착했다. 원래는 다음 역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JNB) 중심인 파크 스테이션(Park Station)까지 가야 하지만 터널 내 누수 문제로 전 구간 개통이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로즈뱅크역 바로 앞에는 몰(mall)이 있고 벼룩시장이 선다. 아직은 역세권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로즈뱅크 역을 벗어나 샌튼(Sandton)역으로 향한다. 

JNB에서 가장 큰 쇼핑센터인 미켈란젤로 몰이 있고, 그 가운데에는 넬슨 만델라 광장이 있다. 광장 가운데 만델라 동상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휴일이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시민들이 몰을 어슬렁거리는 것이 한국의 휴일 풍경과는 다르다.

요하네스버그 공항 풍경

항공기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향한다. 여기 시내와 공항에도 한국 기업들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공항 건물 내부는 삼성 혹은 LG 모니터로 도배됐고 한국 차도 자주 눈에 띈다. 케이프타운행 남아공항공 국내선 항공기는 만석으로 출발한다. 두 시간 걸려 도착한 케이프타운 국제공항에는 의외로 말레이시아항공, 싱가포르항공, 카타르항공, 아랍에미리트항공 등 아시아와 중동 계열 항공기들까지 드나든다.

▲요하네스버그 신시가지 샌튼 소재의 넬슨 만델라 광장. 사람들이 광장 가운데 만델라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사진 = 김현주

케이프 플랫츠(Cape Flats)

공항 청사 바로 바깥에서 공항 셔틀버스(ZAR 53, 한화 약 8000원)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는 길가에 케이프 플랫츠(Cape Flats: 지대가 낮고 평평해서 플랫이라고 불렸음) 흑인 빈민지역이 끝없이 펼쳐진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쓰레기장(Apartheid’s dumping ground)이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은 백인 차별 정부가 유색인 거주용으로 지정한 곳이다. 유색인은 백인 전용 지역인 도심을 떠나도록 종용되면서 생긴 지역이다. 악명 높은 거주 지역 지정(Group Areas Act), 통행증(Pass Laws), 인구 등록법(Population Registration Act) 같은 차별 제도가 몸서리치게 다가온다.

호텔은 공항버스가 도착하는 도시 중심가에서 도보 5~6분 거리의 편리한 위치이지만 완전히 어두워진 인적 드문 거리를 걸어야 하는 게 부담이다. 누군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만 같아 신경 쓰인다. 혹시 나 또한 편견으로 가득한 것 아닐까? 

남아공에 온 지 겨우 하루가 지나고 있을 뿐이니 적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구실을 대며 호텔에 체크인한다. 인천공항을 떠난 지 항공기만 19시간, 게다가 오늘 하루 종일 프리토리아와 요하네스버그 탐방 이후 맞이하는 편안한 시간이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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