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6호 김금영 기자⁄ 2016.08.12 10:18:36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요즘은 죽지 못해 산다고들 한다. 세상살이는 각박하고 힘들다. 하지만 점점 발전하는 과학 기술로 몸은 더욱 건강해져 100세 시대를 넘어 150세 시대가 오고 있는 지경이다. 대신 정신은 병든 채 곪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정신질환으로 인해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거나 자살을 하는 사건들도 뉴스에 종종 보도된다.
이런 시대에 햄릿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라고 이야기를 던졌다. 올해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그의 대표작인 ‘햄릿’을 재구성한 ‘햄릿 - 더 플레이’가 무대에 올랐다. ‘연극열전 6’의 세 번째 작품이다. 원작의 이야기를 최대한 유지하되 원작에 없는 ‘어린 햄릿’과 해골로만 존재하는 광대 ‘요릭’을 무대 위에 등장시킨 형태다.
어린 햄릿은 광대 요릭과 함께 전쟁에서 돌아올 아버지를 위해 ‘살해된 선왕의 복수를 행하는 왕자’를 다룬 연극을 준비한다. 그리고 성인이 된 햄릿은 아버지인 선왕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한 어머니 거트루드와 숙부 클로디어스를 보고 절망에 빠진다. 그러던 중 선왕의 망령을 만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고,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미친 척 연기하기 시작한다.
무대 위에서는 성인이 된 햄릿과 어린 시절의 햄릿이 극을 준비하는 상황이 교차돼 연출되며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오간다. 손에는 칼 대신 총이 들렸다. 무대 위 구현 형태는 이렇게 원작과 달라졌지만, 기본적으로 극이 시작되는 전제에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여전히 깔려 있다.
극 속 햄릿은 고통스럽다. 사랑 때문에 고통스럽고, 자식으로서 고통스럽고,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고통스럽다. 무대에서 전쟁의 소용돌이에 있는 나라, 목숨을 건 결투, 현 시대에는 맞지 않는 어투 등이 펼쳐져 현 시대의 상황과는 달리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400년 전과 환경이 많이 바뀌었을 뿐,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되는 고민이 있다. 겉으로 봤을 때 삶의 질이 높아진 것 같은 이 시대에도 인간의 삶의 존엄성과 그 가치, 그리고 이 기로에서의 선택과 고민, 즉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과 끊임없는 고뇌가 이어진다. 오히려 더 깊어졌다고나 할까. 단순히 먹고 사는 것에서 벗어나 어떻게 더 삶을 가치 있게 살 것인지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뤄지고, 관련 강의도 많이 열린다. 그래서 이 만족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 느껴지는 허탈감이 더욱 커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쏟아진다. 현 시대의 자살상담기관의 존재에서도 이 점이 느껴진다.
지이선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극이 다루는 진중한 메시지의 무게가 남다르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고전을 훼손하거나 완전히 재구성하는 것보다는 본래 햄릿 작품이 지닌 삶에 대한 통찰의 메시지를 더 많이 가져가려고 노력했다. 햄릿을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현재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했을 법한 공감 요소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삶의 아이러니
그럼에도 삶의 존재 이유를 찾는 움직임
김동연 연출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연결고리를 생각했다. 그는 “햄릿이 처음 무대에 올라갔을 때 그 시대 관객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상상해봤다. 아마 햄릿의 죽음에 굉장한 충격을 느끼지 않았을까. 요즘 시대에 햄릿은 재해석, 재창작되는 대표 공연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한 연출 포인트는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아이러니다. 김 연출은 “햄릿의 삶에 대한 고민은 어렵다. 내용도 비극이다. 하지만 삶엔 비극뿐 아니라 희극도 공존한다. 그래서 감정적인 부분에만 치중해 폭발하는 것보다는, 햄릿이라는 인물을 우리가 현 시대에 어떻게 바라볼지 극 중 광대와의 연극을 통해 희극적인 요소까지 어우르며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배우 김강우와 김동원은 이 시대에 햄릿을 불러온 장본인이다. 각자의 스타일로 햄릿을 연기한다. 이번 작품을 통해 공식적인 연극 무대에 첫 데뷔한 김강우는 “관객과의 접점을 고민했다. 원작 자체의 이야기는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어린 햄릿 이야기를 통해 정서적으로 현 시대 관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원은 “햄릿 뒤에 ‘더 플레이’가 붙은 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진짜 극 속의 극이라는 의미도 있고, 무대 위에서 한바탕 신나게 논다는 생각도 했다. 삶이라는 것 자체도 한바탕 노는 게 아닌가. 재미있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무대는 심플하게 디자인됐다. 전체적으로 모노톤을 띤다. 의상 또한 화려하기보다는 심플하게 구성됐다.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색 옷을 입은 햄릿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인물들이 흰색 옷을 입는다. 어린 햄릿은 빨간 바지를 입고, 광대 요릭의 코 또한 빨간색인데 이것은 삶의 비극 속 그래도 존재하는 희극을 상징한다.
이와 관련해 김 연출은 “극 속 어린 햄릿이 꿈꿨던 행복한 세계가 있고, 정작 햄릿 앞에 펼쳐진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비극이 있다. 햄릿은 이 비극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렇다. 시대가 변하든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과 고민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40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아직도 “죽느냐 사느냐”의 고민이 이어지는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꿋꿋하게 살아간다. 무대 위 햄릿의 삶처럼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게 바로 삶이기에, 언젠가 다가올 희극의 장을 기다리는 건 아닐까. 공연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10월 1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