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스막이 연희동으로 이전한 후 첫 전시로 ‘서찬석 단편선’을 8월 20일~9월 10일 연다.
작가 서찬석은 ‘단편선’이라 이름 붙인 이번 전시를 통해 주변에서 포획된 사건을 일련의 신화 단편선집처럼 엮었다.
그런데, 서찬석의 작품은 볼수록 처연하다. 작품 속 강렬한 색감과 대비되는 차분한 글귀를 찬찬히 살펴보면 이런 감상은 더욱 심화된다. 작품 ‘왜 나에게 싸우라고 했습니까?’를 살펴보자. 노란 배경색 아래 파란색의 링은 그 옆에 쓰인 글귀와 함께 주저앉은 선수를 더욱 비참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묵직한 펀치를 맞은 후 겨우 정신을 차리니 상대 선수는 승리 포즈를 취하고 있었고 심판은 어서 일어나라며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작품 ‘왜 나에게 싸우라고 했습니까?’ 속 텍스트)
링 위의 선수는 과연 자신이 원해서 링 위에 섰을까? 의문이 드는 제목도 작품의 처절함을 더한다. 녹다운 된 복싱 선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그 이상으로 체념한 듯 보인다.
서 작가의 작품 전반에서 발견되는 자극적인 붓 터치와 도발적인 색감은 그만의 ‘난봉’의 미학을 표현하는 수단인 동시에 시대의 불안정함을 겨냥하는 날카로운 칼날이다. 그에게 ‘난봉’은 허무맹랑한 방탕이 아니라 현실의 균열을 신화적으로 발견해내도록 만드는 솔직한 야생의 태도다. 그래서 캔버스를 가득 메운 날카로운 붓 자국은 마치 그가 사냥하듯 연마한 난봉의 기술처럼 보인다.
서찬석은 작가노트에서 “나의 작업은 사회혁명, 혹은 치유의 방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불안정함과의 피할 수 없는 공생을 인정하며 그 불안정함에 솔직하게 대면하는 방법을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찾고 있다”고 설명한다. 예술을 통해 삶의 부조리함을 온몸으로 대면하는 그는, 어쩌면 저 링 위에 엎드린 선수처럼 사회와 싸우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