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배우 김호영에게 따라붙는 수식어. 일단 첫 번째로 ‘화려함’이 떠오른다. 그가 맡은 역할 중 평범했던 것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만큼 그는 무대 위에서 매우 강렬했다.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에서는 천진난만하면서도 광기 어린 천재 모차르트를 연기하며 무대 위를 뛰어다녔고, ‘프리실라’ ‘라카지’에서는 각각 게이, 여장 남자로 분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두 번째 수식어가 ‘여장 남자’다. 이는 김호영의 곱상한 외모, 그리고 다소 가녀린 몸매에서도 비롯됐다. “여장이 잘 어울린다”는 팬들의 환호는 늘 그의 공연장에 따라다니기 일쑤였다. 세 번째 수식어는 ‘인맥 부자’다. 옥주현, 손호영, 조권, 이병헌·이민정 부부 등 그의 주변엔 스타들이 있다. 공연계의 소문난 마당발인 그다.
이토록 김호영은 색깔이 분명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올해 들어 자신을 둘러싼 이 수식어들, 그리고 자신에게 부여된 색깔에서 탈피할 준비 중이다. 9월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킹키부츠’를 통해서다.
‘킹키부츠’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뜻하지 않게 구두 공장을 물려받는 찰리의 이야기를 그린다. 폐업 위기에 처한 공장에 고민하던 찰리는 우연히 드랙퀸(남성이 여성처럼 차려입고 여성처럼 행동하는 것) 롤라를 만나 여장남자들이 편하게 신을 수 있는 킹키부츠가 틈새시장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그래서 롤라와 함께 킹키부츠로 밀라노 패션쇼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김호영의 출연 소식을 듣고 대부분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번엔 여장남자 롤라 역이구나?” 하지만 땡! 그가 무대 위에서 높은 굽의 부츠를 신기는 한다. 본 공연에 앞서 열린 제작발표회 무대에서도 김호영은 부츠를 신고 신나게 춤을 췄다. 하지만 그가 부츠를 신는 장면은 공연 막바지 하이라이트 장면 단 한 부분이다. 여장남자 롤라가 아닌, 구두 공장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남자 찰리 역을 맡았다. 오히려 남자다운 이미지가 강한 정성화, 강홍석이 롤라를 연기한다. “캐스팅 발표가 뒤바뀐 거 아냐?” 하는 의문이 팬들 사이 돌았을지도….
“다들 저는 당연히 롤라 역을 맡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오디션 때부터 롤라가 아닌 찰리 역에 지원했습니다. 의외의 선택이라며 공연 제작사 측도 의아해했죠. 만류하기도 했었고요. 하지만 30대 중반에 들어선 이 시점에 찰리 역할은 제게 꼭 필요했어요. 오디션을 보고 싶다고 직접 연락한 뒤 찾아갔죠. 3일 밖에 시간이 없었던 터라 촉박했지만 걸어 다닐 때에도 계속 대사를 외울 만큼 절실했어요.”
이미 김호영은 공연계에서 알아줄 만한 배우 대열에 속한다. 2002년 뮤지컬 ‘렌트’로 데뷔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라카지’ ‘모차르트 오페라 락’을 비롯해 ‘이’ ‘피아프’ ‘화장’ ‘침향’ ‘거미여인의 키스’ 등 연극 무대에도 활발하게 올랐고,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찰리가 절실했다. 바로 ‘화려함’과 ‘여장 남자’에서 탈피하기 위해서.
김호영은 당연히 여장 남자 롤라 역?
땡! 평범한 남자 찰리 역이라는
“저는 저만의 색깔이 있다는 걸 좋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고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점점 한계가 느껴졌죠. 화려하고 선이 고운 역할에 어울린다는 이미지가 딱 박히니, 공연계에서도 계속 비슷한 역할만 맡게 됐어요. 제가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왜 헤드윅은 안 하세요?’였어요. 그때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예요’라고 답했죠. 헤드윅의 극 중 여장한 이미지가 제 평소 이미지와 맞아 보이기에 이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헤드윅은 단순한 여장 캐릭터가 아니에요. 내면에 담긴 심각한 고뇌와 갈등이 있죠. 저도 꼭 연기해보고 싶은 역할이지만, 단순히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 게 안타까웠어요.”
사실상 김호영이 맡았던 역할들은 비극적인 인물이었던 경우가 많다. ‘모차르트 오페라 락’에서 모차르트는 천재였지만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 속에 초라한 죽음을 맞았고,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 연극 ‘이’에서 맡은 공길은 정치권력 싸움 사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김호영을 발랄하게만 기억할 때가 많다. 그 확실한 색깔이 김호영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자 벽으로 작용했다.
그런 의미에서 ‘킹키부츠’를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봤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캐릭터는 찰리였다. 대부분 화려한 이미지로 눈길을 끄는 롤라를 기억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 가운데 공연의 중심을 잡고, 과하지 않게,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평범한 남자 찰리를 미친 듯 연기하고 싶어졌다. 찰리 역할에 합격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건 쇼핑이다. 평소 감각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을 선보이는 김호영은 패션리더로 꼽힌다. 그런데 화려함을 뒤로 하고 평범한 남자 찰리에 빙의하기 위해 옷부터 바꿔 입었고, SNS에서 화려한 의상을 착용한 사진들을 다 지웠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고정관념의 아이콘인 김호영이 킹키부츠를 통해 도전의 아이콘으로 바뀌겠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어요. 찰리 역할은 배우 생활을 10년 넘게 이어온 제게도 새로운 도전이거든요. 기존 제 이미지를 기억하는 분들은 어색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어색함이 실망감으로 바뀌지 않게, 배우 김호영에게는 이런 색깔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같은 역할로 이지훈이 캐스팅됐다. 과거 꽃미남 가수로 데뷔했던 이지훈은 뮤지컬 ‘위키드’ ‘엘리자벳’ ‘모차르트’ 등에 출연하며 상남자다운 면모 또한 드러내 왔다. 이런 이지훈의 모습을 김호영 또한 인식하고 있다.
“이지훈 배우와는 이전에 공연을 몇 번 같이 한 적이 있는데, 같은 역할로 출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정말 노래를 잘 하는 배우죠. ‘킹키부츠’ 노래들이 굉장히 팝스러운 경향이 있는데, 이지훈 배우의 목소리에도 잘 어울리고요. 그래서 같이 연습하면서 재미있는 동시에 자극도 됐어요. 저 또한 이번에 노력해서 더욱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포부가 섰죠.”
“유명해지고 싶다”는 김호영
허세-스타병 아닌 더 많은 이야기 위해
30대 중반에 들어선 그는 이미지 탈피 이외에 또 다른 목표가 있다. 그의 세 번째 수식어인 ‘인맥 부자’와도 연결된다. 김호영은 다양한 장르에 속한 사람들과의 교류에 적극적이다. 그 과정이 그를 현재의 공연계 대표 마당발로 만들기도 했다. 교류에 적극적인 이유는 ‘유명해지고 싶어서’다. 허세가 들어간 걸까? 스타병인 걸까? 아니다.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서 여러 인맥과 유명세가 필요하다.
김호영은 지난해 자신의 애칭인 ‘호이’를 내세운 호이 컴퍼니를 설립했다. 문화 관련 바자회를 열기도 했고, 시스루 양말을 만들기도 했고, 오프라인에서 하는 토크쇼 형태의 ‘호이스타일 매거진쇼’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다양한 콘텐츠에 도전하기 위해 설립했던 것. 하지만 결과는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솔직히 잘 되지는 않았어요”라고 털어놨다.
“공연계에서는 제가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지만, 토크쇼나 다른 분야에서는 제가 김제동, 박경림 씨처럼 유명인사가 아니기에 저를 모르는 분들이 많았죠. 지난해 ‘공정무역 아름다운커피’ 홍보대사를 맡아 네팔 지진사태를 돕기 위한 활동도 했는데, 제 힘이 미약해서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고 또 죄송하기도 했어요.”
어떤 일을 더 알릴 때 상대방이 알아서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 힘들다. 그래서 세상에 더 좋은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마음껏 하기 위해서 김호영은 스스로가 유명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그다.
추후에 도전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 그래서 더 달려야 한다. 특히 대중과의 소통을 더욱 넓히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 및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상담 토크쇼 ‘호이쇼’를 만들어 컬러별로 주제를 부여하고 대화하고 싶기도 하다고. 예컨대 호이쇼 핑크는 ‘뮤지컬을 꿈꾸는 사람들’, 호이쇼 그린은 ‘공연계 현장 이야기’ 등의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콘텐츠 개발자가 아닌 배우로서도 또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이번에 색다른 도전을 시도하는 ‘킹키부츠’를 시작으로, 이후에 좋은 기회가 닿는다면 연극 ‘갈매기’의 뜨레쁠레프라 역할에 욕심이 있다. 애정결핍도 있고, 어두운 역할이다. 발랄함으로 포장된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비애, 즉 반전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핑크’ ‘빨강’ 등 화려한 색으로 이미지화된 김호영이 실제 자신은 무지개의 7가지 색보다도 더 다채롭고, 숨겨진 색깔과 이야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2016년 하기 시작했다.
“정말 많은 배우들이 있어요. 그래서 퇴보하지 말고 발전해야겠다는 생각이 크죠. 서고 싶은 무대에 서기 위해, 하고 싶은 역할을 연기하기 위해, 그리고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문화 콘텐츠들을 마음껏 선보일 수 있기 위해 배우 김호영이 더 힘을 내야 하는 시점이에요. 지금까지 김호영하면 ‘화려함’ ‘여장 남자’ ‘인맥 부자’가 많이 언급됐지만, 이후엔 ‘호이’가 브랜드화 돼서 ‘창의성’ ‘다양함’의 아이콘이 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