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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 서해영 개인전] 당신만을 위한 도구가 존재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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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7호 김연수⁄ 2016.08.19 17:30:55

▲서해영, '대나무자로 헤라 만들기'. 2012.


미대의 조소과에 입학한, 혹은 입학할 학생들이 가장 기초로 여기는 실기 작업은 흙으로 인체 두상을 만드는 일이다. 동시에 이들에게는 흔히 ‘헤라’라는 일본어로 부르는 흙칼 또는 흙주걱이 주어진다. (조각에 흔히 쓰이는 재료들이 건물 재료와 많이 겹쳐 그런지 몰라도 조소과에는 아직도 건설 현장에서 쓰는 일본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

디자인과나 회화과 같은 다른 미술과에 비해 많은 도구가 필요하진 않지만, 조소과 학생들에겐 이 헤라가 꽤 각별하다. 보통 소조를 위한 헤라는 나무를 깎아 만드는데, 화방에서 파는 것들은 소조용이라기보다는 도예 작업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대나무 자 같은 것을 이용해 직접 만들곤 한다. 커다란 흙덩어리를 쳐내는 것부터 동공의 미세한 볼록함과 입술의 세세한 주름까지 표현하기 위해 하나의 헤라는 그 날의 중간부터 끝까지 기능을 달리하고, 사용자의 손 모양과 동작에 맞게 깎이고 마모되며 형상이 단련된다.

소조: 재료를 붙여 덩어리를 형성하며 형상을 만드는 것, 조각은 그 반대

▲서해영,김아영, 설선숙, 양지영, 이다솜, 장세록, 정미향, 한영덕 '타피스트리, 협업의 도구'. 2014.(사진=서해영)



조소과 여학생

전국의 많고 많은 미대 중에서도 조소과를 보유한 미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회화과의 인원이 디자인 계열과 인원의 반절이라면 조소과는 그 반절에도 못 미치곤 하는데, 그 와중에도 여성의 비율은 항상 높은 편이다. 서울 북촌의 갤러리 조선에서 ‘여성 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 “너와 나의 협업의 도구’전을 열고 있는 서해영은 그 조소과 여성 학생 중 하나였다.

그의 전시는 조소과라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도구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여성성 그리고 그에 기반을 둔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으로 펼쳐진다. 전시장 입구에는 대나무 자를 깎은 각기 다른 모양의 헤라의 사진이 있다. 기차처럼 일렬로 정렬되어 대나무 자의 원형과 나란히 배치된 모습은 하나의 도구가 가지는 다양한 기능과 시간, 사용자의 모습 등을 함의한다. 그의 도구에 대한 호기심은 주변의 도구를 자신의 손에 맞춰 변형하고 탐구하며 변화했다.

사회 안에서의 여성성이 한창 이슈인 현재, 작업에 있어 기본적으로 물리적 체력을 요구하는 조소과는 여성성을 재고해보기에 충분한 환경이다. 조소과 생활 전반에서 물리적 힘이 필수적이기에 남학생은 매우 희귀하고 소중한 존재다. 작업 과정에 있어서도 남학생의 월등한 속도와 수월한 진행은 확연하다. 여학생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기 마련이다. 도움을 청할 것인가, 아니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더 나은 성과를 보일 것인가.

그리고 서해영은 두꺼운 공업용 커터칼을 들고 단단한 대나무 자를 깎아 헤라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느꼈을 것이다. 이 칼이 자신의 손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서해영의 도구에 대한 탐구는, 만들기 작업에 필요한 도구 혹은 일상 도구들이 여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타피스트리, 협업의 도구' 작업을 위한 원형 틀과 결과물.(사진=김연수)


바느질은 여성의 작업?

흔히 조소과에서 하는 돌과 나무를 깎거나, 철과 동을 단조 혹은 용접을 하는 작업이 남성적인 작업이라면, 서해영이 선보인 태피스트리나 자수 같은 작업은 여성적인 작업의 전형이라 여겨진다. 그는 남성적인 작업으로서 남성과 대등함을 강조하기 보다는 여성성에 천착하며 정체성을 유지한다. 엮기, 꿰매기, 뜨기와 같은 행위는 행위가 만들어 낸 결과물 그 자체가 시간성을 함축하고 있다는 철학적 의미 말고도, 보호막(의류)을 만들고 그물을 만들어 식량을 공급하며 인류의 보존 역할을 해왔다는 의미 또한 있다.

서해영은 사회적으로 여성적이라 규정지어진 이런 행위를 협업을 통해 선보인다. 태피스트리 협업은 참여한 여섯 명의 여성이 작업에 필요한 도구-콤브(comb)의 손잡이를 직접 만들며 시작한다. 서로를 볼 수 있게 원통형으로 만든 태피스트리 틀에서 실을 한 올씩 엮어 도안 없이 릴레이 스토리 식의 그림을 그려내는 형식이다.

작가의 ‘여성성이란 무엇인가’로부터 시작된 질문은 이 작업을 통해 결국 차이와 다양성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한 틀에서 완성된 여섯 사람의 그림은 여성성을 떠나 각기 다른 개성과 성격이 뚜렷한 시각적 결과로 나타난다. 그의 이런 변화는 페미니즘 미술가 주디 시카고(Judy Chicago)의 ‘디너파티’를 지적하며 더욱 확고해진다.

삼각형 모양의 테이블에 여성성기 모양의 식기를 만들어 역사적으로 신화-역사적으로 유명한 여성 39명을 초청한 이 작업은 페미니즘 미술을 대표작이자 많은 설왕설래를 일으켰던 문제작이다. 서해영은 아름답지만 권위적이라고 했다. 작가의 자의적인 여성성을 끌어 모은 유명한 개인에 멋대로 삽입한 측면이 있다는 것.

▲'타피스트리, 협업의 도구' 협업 과정.(사진=서해영)


‘우리’ 전, ‘너와 나’의 목소리

전시장의 제일 안쪽에 펼친 오브제 설치 작업들은 이런 생각들의 결과물이다. 제목이 보이지 않도록 꽂힌 책들이 빈틈없이 꽉 차 있는 책장 위로 올라가 있는 소파, 이불 속에 숨겨진 채 이층 침대에 분리돼 있는 몸,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들이 뚫려있는 주기도문이 인쇄된 커튼 등. 이 공간에서 작가는 자신을 포함한 협업자 개개인의 개성과 성격을 은유하는 오브제들을 만들고 배치한다.

그 오브제들이 은유하는 것은 너무 쉽게 느껴져 차라리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작가가 그린 한 개인의 일부분이며, 작가의 자의식적인 해석이라기보다는 개인의 단면을 비춘 거울 역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작가 서해영은 “현재 우리 사회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닌,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함에도 똑같은 소리를 내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어설픈 기준으로 집단을 상정하고 프레임을 씌워 제멋대로 오해한다는 뜻이다. 개인의 목소리와 집단의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은 개인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실 그의 개인적인 정체성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는 이 전시는 여성성을 부정하지 않고 부드럽고 사적으로 펼쳐 나가며 사회전반에 관한 문제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을 비롯해 페미니즘의 정의에 관한 문제, 개인과 집단 등의 문제와, 덧붙여 조각가의 본능인 만드는 행위와 현재 제도권 미술계의 충돌까지. 앞으로 보여줄 것이 무궁무진한 젊은 작가의, 본인으로서는 할 얘기가 많아 부담스럽지만, 관객으로서는 작가의 미래가 궁금해지는 작업이다. 전시는 8월 26일까지.

▲서해영 작가의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 “너와 나의 협업의 도구"'전 일부. (사진=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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